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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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록된 독서 목록을 살펴보니 적어도 3년간 읽었던 흔적이 없다.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책이 10여 년 전 읽은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라는 사실만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에 읽는 일본 소설인데, 그 작가가 오래전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의 작가라니 반가웠고 내심 기다렸던 손님을 맞이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심지어 <제노사이드>를 읽어볼까 하던 차였다.)

<건널목의 유령>에 등장하는 유령이 유령을 가장한 함정(독자들을 유인하는 장치)이 아니라 의외였다. 기자인 마쓰다라는 인물의 시점으로(화자로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유령을 중심으로 나아간다. 유령이 가진 목적에서 정체까지 모든 초점이 마쓰다가 아닌 신원미상의 유령에 맞춰져 있다. 
시대가 1990년대로 설정되어 있어 이야기 진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취재가 대부분 아날로그 형식이라는 점이 유령을 증명하고 설명하는 장면에서 유용하게 작용했다.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재와 책 속 시대배경을 비교했을 때, 전혀 변하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게 도드라진다는 점 역시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을까? (여성 착취, 정치와 폭력의 유착, 부패 등) 

마쓰다는 사랑하는 반려자(여성)가 죽은 뒤, 전국 일간지 사회부 기자를 그만두고 여성 월간지 계약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죽은 반려자를 몇 년째 그리워하는 마음과 새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로 계약 만료가 다가오는 상황이 마쓰다 인생이 얼마나 황폐한지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어느 건널목에서 찍힌 심령사진 취재를 맡게 되고, 조용히 잊혀 가던 살해된 여성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열정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실마리를 손에 쥐고 찾아낸 유령의 정체를 알고 나니, 이 책이 결국 기득권 세력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권력으로 착취당하는 소외되고 멸시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재로 만들어진 집에서 들을 수 있는 나무 뒤틀리는 소리 같은 소음이 들리면 어김없이 유령이 등장한다. 메마른 나무가 내는 기괴하고 으스스한 신음은 가정으로부터 사회까지 보호는커녕 목이 졸린 채로 웃어 보여야만 했던 사람이었던 유령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아니었을까. 



*몽실북클럽을 통해 황금가지 [건널목의 유령]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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