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지음 / 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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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지만 TV는 잘 안 보는 관계로 정애리라는 배우를 화면으로 본 적은 거의 없다. 그저 오랜 기간 활동한 연기자라는 정도만 알뿐인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는 선한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연기자 정애리가 쓴 에세이다.

에세이지만 문장이 길진 않아, 시와 산문의 중간 형태의 글들이 대부분인 아포리즘 수필이다. 여기에 본인이 직접 찍었다는 사진과 알려진 시 10편이 곁들여져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연기 생활 40년 이상이라는 그의 눈에는 세상에 하찮은 게 없고, 현재 누리는 모든 게 감사하다. 그의 시선에는 개망초, 담쟁이, 가시나무, 전봇대 등 모든 존재에는 의미가 있다. 특별히 자랑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에 행복이 있으며, 거기에서 소중함과 감사함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이 본문 내용을 채운다.

이 책은 전작 <축복>에 이어 7년 만에 나온 에세이인데, 역시 제목에 "축복"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저자는 인생을 축복이라 여기며 산다.

저자의 가치관은 제목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에 거의 드러난다. 뭔가를 채우려고만 드는 현대인에게 배우 정애리는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이만큼 해낸 것도 대단한 것이라고, 우리네 평범한 인생은 그 자체가 축복이라고 조용히 설파하며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아니 어쩌면 죽어라 했는데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지요.

지금 서 있는 자리도 최선이 아닌

차선의 자리가 이어진 것일 때도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내비게이션이 가르쳐준 길을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그럼 또 다른 길을 통해 목적지에 다다르지요.

조금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우린 결국 도착하니까요.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그거면 된 거지요.

우린 또 길을 걸어가면 되니까요."

- P 72~73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는 임종을 지키지 못한 딸이자, 딸 지현이의 엄마이고, 잘 알려진 연기자이고, 얼마 전까지 EBS FM 「정애리의 시 콘서트」를 3년간 진행했었고, 드라마가 인연이 되어 취미로 금속공예를 하고, 틈틈이 본인 이름으로 된 책도 낸다. 그 바쁜 와중에 정애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봉사다.

매년 여름 월드비전과 아프리카 오지를 다닌 지 17년, 한국생명의 전화 홍보대사로는 20년, 연탄이 필요한 계층에 연탄을 배달하는 연탄은행... 그저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한 훈장 같은 봉사가 아니라, 오랜 활동 기간이 보여주듯 봉사는 그녀 삶의 일부분이다. '바쁘다, 여력이 안 된다, 나중에~' 이런 핑계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정애리는 행동으로서 동참을 촉구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일단 시작하자!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도 없더군요.

지금 겪어내는 내가

처음 당하는 것뿐이죠."

- 지혜를 더하는 길, P 129

 

에세이다 보니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2016년 난소암으로 투병한 경험이 담담히 기술된다. 큰 병을 앓고 나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고들 하는데, 난소암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또 내면의 변화가 있었으리라.

'내려놓음, 비움, 나눔과 봉사' 이런 키워드에 공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주파수가 잘 맞는 행복한 힐링의 시간을 보장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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