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속성 - 사람은 어떻게 시장을 만들고 시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레이 피스먼.티머시 설리번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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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장을 가든, 백화점을 가든 아니면 손가락으로 온라인 쇼핑을 하든 인간의 상업적인 활동은 시장(market)을 통해 이뤄진다. <시장의 속성>(원제 The Inner Lives of Markets)은 최근 60년간 시장의 변화와 혁신을 이끈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창조적 이론을 일별해 보는 책으로 부제는 '사람은 어떻게 시장을 만들고 시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발표된 가장 중요한 경제학 논문들만을 엄선해, 거기에 담긴 획기적 착상들이 단순히 현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 시장을 설계해 실험하고 우리 삶과 세상을 변혁하기까지 이르렀는지 설득력 있게 입증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들의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포로들도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책의 서두를 여는 리처드 래드퍼드의 논문 <포로수용소의 경제적 조직>은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시장을 만들어내고, 시장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예시라 하겠다.

조지 애컬로프의 <'빛 좋은 개살구' 시장>에선 정보 비대칭 시장의 대표적인 예로 중고차 시장을 든다. 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고객들은 호구가 되기 쉽고, '혹시 속아서 사는 거 아닌가'하는 불안감을 지우기 어렵다.

최근 김하성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에 진출했단 뉴스가 들려왔는데, 5장 '경매 이론'을 통해 미국 포스팅 시스템의 변화를 소개한다. 초창기 과열에 따른 문제점을 시정한 결과 계약 규모는 김하성이 크지만 키움 구단은 과거 박병호나 강정호 때보다 적은 돈을 받게 된다. MLB 입장에선 보다 합리적인 지출 가이드라인을 만든 셈이다.

6장 '플랫폼 경제학'에서는 어떻게 VISA라는 카드계의 공룡이 탄생했는지, 왜 DVD 표준화 전쟁에서 승리한 소니가 치명타를 입고 가전 제국의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었는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들려준다. 현대는 플랫폼 기업이 굴뚝 산업을 완전 이긴 듯 보이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업계의 수위를 차지한 기업은 그 강력한 파워를 남용하기 쉽다는 유혹('갑질')을 피하기 어렵다.

7장 '시장 설계와 자원 배분'에서는 '학교 배정'을 예로 들어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자원 배분이 얼마나 이상향인지 논하며, 8장에선 신장 기증을 둘러싼 공정성의 문제와 공유경제 전성시대의 빛과 그늘을 살펴본다.

책에서 인용된 논문들은 대부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들이다. 이런 논문들을 일반인들이 접할 리도 없고, 구태여 찾아 읽지도 않겠지만 <시장의 속성>은 그런 이론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실증되었는지 잘 설명한다. 아무리 쉽게 전달한다 하나 내용이 마냥 말랑말랑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학문적인 경제 이론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그 속에 담긴 생각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생명을 이어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저자들의 노고는 매우 값지다.

교양 과목으로도 경제를 접하지 않은 내가 이 책을 온전히 다 이해했는가 다소 의구심이 들긴 한다. 다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언제나 시장은 최적화를 찾고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라는 진리와 '시장의 속성'에 대한 이해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인위적인 손길이 때론 필요하고, 정부는 무소불위의 통제를 통해 결과를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만 언제나 시장은 통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의 일독을 권하며, 이 책을 통해 "시장의 속성"에 대해 통찰력을 높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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