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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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S는 하나의 주제 subject를 둘러싼 참신하고 다양한 이야기 story로 구성된 시리즈다. 7번째 책으로 '팬데믹 테마 소설집' <쓰지 않을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200여 페이지의 아담한 포켓 사이즈로 참여 작가는 조수경, 김유담, 박서련, 송지현 4명의 여성 소설가다. 이중 얼굴을 익힌 작가는 <체공주 강주룡>으로 만나 본 박서련뿐이고, 나머지 작가들은 처음 만난다. 신진 작가들이 '팬데믹'이라는 주제로 발 빠르게 움직여 집필한 단편들인데 각각 50여 페이지 분량이다. 비슷한 시기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SF 앤솔러지' <팬데믹>도 출간되었는데, 소설은 동시대를 가장 빠르게 포착하는 장르이니만큼 팬데믹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신속하게 만나 보는 건 무척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거다.

책을 읽기 전 당연히 '팬데믹 = 코로나'로 정의했는데, 수록작들은 반드시 그렇지마는 않다. 코로나를 직접적으로 연관 지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건 앞선 두 편 조수경의 「그토록 푸른」과 김유담의 「특별재난지역」이다.

「그토록 푸른」은 실제 상황이다. 왜냐면 모 택배사의 물류센터에서 감염자가 실제로 발생해서 큰 뉴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꼼꼼한 취재에 힘입어 우리는 새벽 배송 물류센터의 진실을 알게 된다. 편한 택배 배송 시스템 덕분에 우리가 사는 이 나라가 "아! 대한민국"이 되었지만, 정작 물류센터 근로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지 않았나. 소설의 주인공은 금번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계 근로자로 설정되어 있고, 어쩔 수 없는 호구지책으로 엄마에게 실직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이들과 함께 물류센터로 흘러들어온다. 절대로 확진자가 나와서는 안되는 이곳의 암묵적인 정서는 주인공이 신체 변화를 느끼는 와중에도 파운데이션의 커버력으로 손색깔을 숨긴다. 아마 십자가를 지기 싫은 다른 근로자들도 똑같은 행위를 했으리라.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바지를 찢고야 만다.

택배 · 물류업체는 호황인지 모르나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은 그만큼 대접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업계의 과열 경쟁으로 택배비는 올리기 힘들다고 하고 이런 수레바퀴 속에서 어려움을 토로한, 대형 업체와 계약했던 소장 한 분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오늘 신문 경제면 머리기사다.

"택배기사 잇딴 사망, '무법지대' 결국 터졌다"(10월 23일 금요일 중앙일보 중앙경제)


「특별재난지역」 역시 현실에 뿌리를 대고 있다. 코로나 초기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며 연일 매체에 등장했던 청도 대남병원이 언급되며, 소설의 무대는 바로 그 청도다. 치매가 있긴 하지만 먹성 좋은 92세 아버지는 코로나 시기 별다른 대처도 못해보고 사망하고, 자식들은 병원에서 임종을 지켜보기는커녕 고인의 가는 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망한 마지막을 맞이한다. 민감한 시기 장례식장은 텅 비었다.

여기에 곁가지로 손녀의 일탈이 나오는데, 이건 n번방 사건의 연결고리로 읽힌다. 결국 코로나라는 자연재해나 n번방이라는 사회적 병증이나 팬데믹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체공주 강주룡>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질을 드러낸 바 있는 박서련의 단편 「두」(痘, 천연두 '두')는 한적한 시골 분교에 처음 부임한 생초보 여교사의 이야기다. 순진한 아이들에게 도는 수상한 증상, 이건 여학생에게만 발병한다. 그 원인 제공자는 남자들이다. 5학년 오빠, 삼촌, 할아버지... 역시 n번방 사건의 여파가 느껴진다. 놀라운 건 2명의 여교사도 안전지대에 놓여있지 않다는 점이다.

"강간까지는 아니었어···.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 P 142

오지 학교에 부임한 여선생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가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편이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 보이는 송지현의 표제작은 아쉽지만 특별한 감상이 없다. 어디까지가 사적인 영역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내밀한 개인사가 펼쳐진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라는 팬데믹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 잡았다. 금방 끝나지 않을 듯하고, 끝난다 하더라도 많은 생채기를 남길 수밖에 없다. 촉수가 예민한 소설가들의 분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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