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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ㅣ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평점 :
SF가 상정하는 배경에는 현실의 모순이 숨어 있다. 『멋진 신세계』의 통제된 사회가 그러하고, <인터스텔라>의 기후 위기가 그러하다. 독자 혹은 관객이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작품의 상황은 사실 작가가 비판하고자 던지는 화두이다. 천선란의 신작 『이끼숲』은 황폐화된 지상을 피해 지하 도시를 구축한 미래 인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에도 역시 수많은 겹의 모순이 자리한다. 기후 재난과 산재 사고, 가난의 고통과 정부의 통제는 촘촘히 얽혀 지하 도시를 이루는 기제로 형성된다.
이 죽은 도시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은희’의 목소리에서 별을 떠올리는 ‘마르코’(「바다눈」), ‘치유키’와의 소통을 통해 언어를 배우고 등록되지 않은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조’(「우주늪」), 산업사고로 죽은 ‘유오’의 클론을 훔쳐 그에게 살아 있는 식물을 보여 주고자 지상으로 오르는 ‘소마’(「이끼숲」)가 그들이다. 구원은 없다고 말하는 듯한 지하 세계에서 그들은 끝내 서로를 구원한다. 결코 현실과 분리된 세계도,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소설로부터 삶의 뒷면을 보고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뚜렷하게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머리를 맴돈다. 내가 읽어 온 천선란의 작품은 늘 누군가를 구하고 격려해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였다. 경주마 ‘투데이’와 호흡하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천 개의 파랑』), 행방불명된 ‘원우’의 전말을 찾아 나서는 외계인 ‘나인’(『나인』)은 늘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끼숲』의 인물들은 천선란 유니버스에서 가장 뚜렷하고 벅차게 희망을 전한다. 조급하고 초라하고 두려운 세계(p. 83)에서도 모험과 발견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의 손을 잡고 나도 더 나은 세계로 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