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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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은 한 글자인 단어를 주제로

일상을 좀 더 농후하고 심도있게 표현하거나

비틀어서 사회적 통념을 뒤집어 표현한 산문집이다.

한 글자 단어는 총 69개로 순우리말과 한자, 의성어와 의태어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익숙한 단어의 의미부터 작가만의 의미를 품은 단어들,

작가의 진솔한 경험과 지혜가 담긴 것을 알 수 있다.

 

 

 

 

한 글자에 담긴 '나'와 '너', 수만 글자를 품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한글자는 제목 바깥의 '수만 글자'와 함께 살고 있다.

 

"사건과 배경이 어떠하든 주인공은 늘 당신입니다.

문장에 등장하는 주인이 나였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나라는 주어를 빌려 썼을 뿐, 흑백원고지를 관통하는 빨간 외투의 소녀는 당신입니다.

내 글의 주인공은 늘 당신입니다. 그대이고 귀하이고 연인이고 이웃이고 동료입니다.

아들이자 딸이고 아내이자 남편입니다.

내 글 속의 당신은, 밤새워 이력서를 쓰는 절박함이고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애틋함입니다."

 

일상을 확장시켜 삶의 전반을 담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의 이야기도 맞고, 너의 이야기도 맞고,

하다보면 우리의 이야기가 되듯이.

 

작가가 겪은 사건들도 다시금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장애인에 대해서라든지, 진짜 정의가 무엇인지,

가족의 애틋함 또는 삶의 원천, 현실을 맞닥뜨린 작가의 고뇌 등

진실로 우리가 어디에 가치를 추구해야하는지를

작가의 입장에서 작가의 말로 나타내고 있다.

 

 

고향갑 작가님은 글을 쓰기위해 평소에도 많은 생각을 한다는게 느껴졌다.

엉뚱한 발상부터 비틀기, 사회적 통념 뒤집기 등

작가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부분에서 '앎'에 대해 얘기를 했다.

"앎이 뒤집힌 세상에서는 막 태어난 아기일수록 세상살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해박한 지식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까먹게 된다..."처럼

뻔한 생각이 낯선 생각으로 바뀌는 과정도 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그리고 작가가 왜 한 글자 단어로 산문집을 적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도 있었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부터 한글자씩 차례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한 글자로 이름 붙여진 것 가운데서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숨'을 꼽는다.

숨은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있다. 숨을 쉼으로 삶이 시작되고 숨을 멈춤으로 삶이 마감된다."

 

'숨'을 쉬어야지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에서도

이분은 진짜 작가구나했다.

가족을 벽으로 비유한 것도 참신했다.

"방을 이루는 네 개의 벽이 우리 가족 같다. 가족 누구든, 지친 몸을 기댈 네 개의 벽이 이 방에는 있다.

무너지는 마음을 맡길 수 있는 벽이 네 개나 있다. 기대 보면, 각자의 벽마다 등에 닿는 애틋함이 다르다.

벽 너머에서 전해오는 두근거림이 다름다. 달라서, 가족이라는 네 개의 벽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방안에 앉아서, 나를 보듬은 네 개의 벽을 바라본다.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네 개의 벽이 없다면 분명 방도 무너지고 집도 무너진다.

이미 각각의 벽이 서로를 위해 존재했기에

방도 존재하고 집도 존재하는게 아닐까.

정말 소중한 벽들이고, 가족이다.

살아야 하는 의지와 애틋함이 묻어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3장 그늘에 핀 꽃에 <법>이란 대목이다.

너무 가난해서 굶주리고 있는 손자들을 위해 슈퍼에서 빵을 훔친 할머니가 있다.

슈퍼 주인은 딱한 사정이었지만 본보기를 위해 처벌을 원했다.

판사는 법에는 예외가 없다며 할머니에게 1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방청석이 요동쳤다. 돈이 없어 빵을 훔친 할머니에게 10만원의 벌금형은 가혹한 처벌이 아닌가.

 

그러고 판사는 나머지 판결문을 읽었다.

"배고픈 이웃이 거리를 헤매는데, 나는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죄로 10만원의 벌금형을 나 자신에게 내립니다. 아울러 본 법정에 있는 검사와 변호사, 교도관과 방청객 모두에게도 5천원의 벌금형을 내립니다. 생존을 위해 빵을 훔쳐야 할 만큼 어려운 이웃이 있는데,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슈퍼주인도 5천을 냈고 그렇게 걷힌 돈은 57만 5천원이었다.

판사는 벌금 10만원을 제외한 47만 5천원을 할머니에게 드렸고,

그 순간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 얼마나 따뜻한 이야기인가. 이 시대의 정의는 진정 무엇인가?

아직까지 정의가 살아있어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 정의가 있을지 걱정도 된다.

먼저 나부터 이러한 정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함께 정의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은

일상에서 소외되고 외롭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나,

세상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

그늘 속에서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고 삶을 꾸려나가는 존재들에 대해 알고 싶고,

인류애의 불씨를 다시금 타오르게 하는 열정과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저자
고향갑
출판
파람북
발매
2022.01.26.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지만 솔직하고 진심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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