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어릴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터라 다윗왕의 업적 중 가장 첫번째로 언급되는 블레셋의 거인 전사 골리앗을 무찌른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친절하게도 당시 다니던 주일학교에서 기독교 만화까지 보여줬기 때문에 성경에 언급된 골리앗의 생김새를 상상하지 않아도 되었다. 털북숭이에 키와 몸집이 크고 목소리가 걸걸한 골리앗의 모습이 아직도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년 다윗의 모습은 정반대로 아름다운 미소년의 모습이었고.

13살이 되던 해에 주일학교 행사에 참여했는데 동화구연에 일가견이 있다는 선생님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동화구연으로 풀어냈고 다들 깔깔대고 웃는 와중에 조숙하게도 나는 골리앗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키가 그렇게 크다면서 어린애 물맷돌을 이마에 정통으로 맞을 수 있나? 그렇다고 맥없이 쓰러질 수 있나? 그 조그만 아이가 자기 몸에 칼을 대는데도 깨어나지 못했을 수가 있나? 무엇보다 골리앗이 한 건 몸집이 크고 소리지른 죄 뿐이잖나?


톰 골드의 <골리앗>은 주일학교에서 알려주던 골리앗의 모습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원래는 정적이고 서류를 만지는 걸 좋아하고 작은 조약돌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의 방패지기 또한 찌질한 하급 병사가 아니라 아직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골리앗과 감정적 교류를 나누기까지 한다. 마치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돕는다며 제 힘에 부치는 짐을 들어주고 이것저것 어른들의 말을 전하는 모습 같았다.

13살의 나였다면 궁금했을 모습마저도 그 소년은 나를 대신해 물어봐 주기까지 했다. 세간에 떠돌던 소문에 대해서. 방패지기를 소년으로 설정한 건 그런 소문을 있는 그대로 옮길 수 있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물음에 아무런 적의없이 대꾸해주는 골리앗의 대답이 쓸데없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효과를 지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톰 골드가 그린 골리앗을 보면서 그는 어쩌면 시인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전지의 최전방에서 하루에 두번씩 큰 키와 몸집으로 상대방을 도발하는 대본을 읽고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지만 조용한 밤과 이따금씩 다가오는 노인과 곰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다 생각했다. 방패지기 소년이 곁에 있지만 그는 점점 더 외로워졌던 게 아니었는지. 말 안 통하는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고 그를 죽이려 다가오는 물맷돌 소년이 외치는 소리도 좀 들어보자던 그였으니까.

아마도 얘기를 들어보려던 물맷돌 소년의 돌덩이가 자기 이마를 맞추고 목이 잘리는 걸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예상했던 전쟁이란 거기까지가 아니었을테니까.

하나님의 역사라 치장하는 소년다윗의 공적은 그렇게 인간 톰 골드의 상상력 안에서 비극적인 사내의 전쟁중 참사기가 되고 말았다. 성경의 한 인물을 따온 거지만 최근 이슬람 전사들의 문화재 훼손과 이방인 참사를 보면서 편견에 사로잡히는 인간의 행동이야말로 비극이 될 수 있겠다는 걸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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