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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평점 :

한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렸어요.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로부터 지워진 혹은 스스로 짊어진 삶의 역할과 무게 때문이었지요.
결혼하고 육아를 하는 입장에 대해 후회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같은 입장의 엄마들과 만날 때는 씁쓸한 현실과 더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어서 자신을 지켜내기가 어렵거든요.
그럴 땐 내가 결혼을 할 자격이 있었던가,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잘 하고 있는건가 하는 의문도 들고 뭔가 잘못 살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해요.
사회학자 오찬호는 한동안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이러이러한 고민이 있지? 뭔지 알 것 같아.' 라는 논조로 말합니다. 사랑했고, 결혼했고, 출산한 당신 괜찮냐고요. 그러면서 사회 곳곳에 교묘하게 도사리고 있는 함정들에 대해 짚어줍니다. 결혼할 때 시댁에서 '조금' 도움을 받는순간 똑같이 일하면서도 남편은 가부장의 당연한 권리획득이 되고 시어머니는 '아들집에 내맘대로도 못 오냐'며 시도때도 없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드나드는 존재가 되며 피곤해 죽겠는 주말마다 시댁에 가야 하는 현실을요. 또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다는 이유로 육아를 전적으로 전담해야 하는, 안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주변인들의 무심한 '폭력'에 대해서도 꼬집습니다.
-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은 엄마들은 주로 이렇게 반응한다. 자기 탓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모들은 "부모 때문에 걸리는 병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의사 앞에서 자신의 부모가 폭력적이었다, 학창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는 등 "자신의 과거사를 쥐 잡듯 찾아내어 그때의 잘못으로 마치 신이 큰 저주라도 내리는 것처럼 여긴다." p.122
-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가정교육에서 찾는 한국인들의 일관된 나쁜 버릇은 부모들 스스로 제일 잘 안다.p. 123
사회와 자신이 강요하는 '엄마다움', '모정' 때문에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만 붙들고 살게 된 엄마들은 그래서 워킹맘을 공격하는 '전업맘'이 되기도 하는 불합리한 현상을 보여줍니다. 사회적으로 해고를 자처한 엄마들이 마지막으로 믿을 건 '자식 잘 키운 엄마'라는 타이틀이고 그것만이 극단의 자아실현이 되는 거니까요.
사교육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데요. 죽어라 노력해야 평범하게 살수 있다는 요즘, 사교육을 안 하고 살기는 너무나 안일하고 힘들다고 인정합니다. 사교육의 유해성을 알아도 유용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요. 그러면서 자신도 평범한 이시대 부모들과 다르지 않다고도 고백합니다.
- 참고로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서 불안의 세상에 태연하게 살지 못한다. p.223
아이들을 낳았고, 키우고, 사랑하는 엄마들은 그 이유때문에 자기 자녀를 소유하려는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는다고 해요. 그야말로 자녀에게 '올인' 했기 때문인데 자녀는 보호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기대와 닦달로 어른이 될 때까지 경쟁에 내몰려 불안한 사춘기를 계속 살 게 할 것인가, 일찌감치 정신적인 자립을 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고요.
작가 자신도 아직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말로 책은 마무리됩니다. 별일이 없는 한 우리나라에서 부모로 살아야 하고 현실이 이런 것을 사회학자라고 해도 명쾌하게 결론짓기는 어렵겠지요. 어찌보면 독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선택권을 부여받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한숨 나오는 현상을 직시했으니 그 다음 행보는 제가 딛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