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날엔 아리스토텔레스 필로테라피 3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지음, 김정훈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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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어요.
낮은 자존감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누가 보면 비웃겠지. 이것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려우면 다른 사람들도 어려운 문제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붙들고 있느냐, 지레 짐작으로 포기하느냐가 결과를 가르는 중요한 선택이 되는데 그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저는 후자에 속했고 늘 포기하는 습관만 들이다보니 성취감보다는 자신을 비판하는 일이 더 쉬워진 것 같아요.

철학을 통해 문제점을 알아보고 직접 대면해볼 수 있는 필로테라피 시리즈 <무기력한 날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그런 자존감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알아보는 책이에요.  

 

 

 

 

 

저자는 철학교수 자격을 가지고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프랑스이 고교생들의 철학 이해도가 우리나라 대학생들만큼 높다고 하더니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읽기 쉽지는 않았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철인 정치'와 플라톤학파의 '동굴의 비유'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라 처음부터 이해하기는 무리였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필로테라피'를 지향하는만큼 실제적인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는 훨씬 이해하기가 편했어요.

-  목적이 행동과 별개로 떨어져있을 필요가 없고, 하물며 행동보다 우위에 있지도 않다. "실천은 사실 제작이 아니고 제작도 실천이 아니니까." 우리는 출판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글쓰기 자체를 즐길 수 있다. 메달과는 상관없이 수영을 하는 일 자체에서, 자신의 수영 능력이 점점 향상되는 것을 보는 일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응답해주리라는 희망과는 별개로 기도를, 그 느린 리듬을, 그것이 주는 평온함을 사랑할 수 있다. p.109

무기력함을 탈피하려면 일단 '행동하라'는 게 책의 논조였다. 수영선수가 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수영실력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작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자체의 재미를 느껴보는 것, 꼭 '이뤄주소서~'하며 뭔가를 부르짖고 신이 응답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리듬, 그 평온함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결과지향적인 한국사회에서는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빛 바랜 채 버려진지 오래인데 결국 그런 조급함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무기력함을 불러온 것이겠지요.

 

 

 

- 굶주린 사람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배고픔을 채우는 것만을 추구하기에 빵 덩어리 하나도 그에게는 진수성찬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운 삶의 계획에서도 우리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만족시켜주는 것의 질이 어떤지는 크게 가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정을 받고자 하는 강박적인 욕구로 일을 하는 공인은 명성을 얻을 수만 있으면 됐지 그 명성이 어디서 오는지 잘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p. 114~115

요즘 드는 생각은 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프라이버시까지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남에게 휘둘린다는 것이었어요. 어른이 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점들과 부딪히는데 그때그때마다 모면하듯이 살다보니 스스로에게 굴욕감을 느낄 때가 많았거든요. 남에게 그렇게 받은 인정은 때로 욕이 되기도 하니까요.
저자는 당장의 인정욕구 때문에 스스로를 내동댕이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고 해요.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는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는 거죠. 그러기 위해 과정을 중요시하고 누구보다 잘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요.

누구보다 잘 느끼려면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긴장한 채로 있는 몇 시간의 상황보다는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을 챙기라고 해요. 일상속에 배어든 습관이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게 되니까요.

-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호감을 사는 문제가 걸려 있을 때에는 주의력과 재능을 열심히 발휘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더 이상 외모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행위를 살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일상은 우리가 행동하기를 잊어버리는 첫 번째 영역이다. 그런데 일상은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영역이란 말이다!(중략) 습관은, 과장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마모시킨다. p.146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을 하되 탁월성을 가지고 하라고 조언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어디에도 겸손하라는 말이 없다고요. 그가 절도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지만 그건 겸손이나 중간만 가자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라고요.
너무 잘하려다 실패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서 절제하는 그만큼 탁월성을 발휘하는 게 절도라고 해요.

무기력을 떨치려면 일단 행동해야 하지만 그게 인정욕구에 목말라서 무작정 되는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책은 전제하고 있어요. 그리고 질적으로 나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열심을 낸다고 탁월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어요. 결론은 일단 행동하는 것이 낫고, 시작한 일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게 낫고, 인정욕구에 빠지지 말며 일상을 책임지는 습관을 챙기라는 것. 탁월하게 하되 자신의 능력을 냉정히 평가하고 그에 맞는만큼 탁월성을 발휘하라는 거였죠.

무기력은 결국 능력 밖의 일까지 다 떠안으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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