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기억 - 가든디자이너 오경아가 들려주는 정원인문기행 오경아의 정원학교 시리즈
오경아 지음 / 궁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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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이 되고서 우연찮게 반려식물을 키우게 되었다. 뭣도 모르고 키우기 시작한게 벌써 3년이 되었고, 하나씩 들이던 식물은 벌써 6개가 되었다. 조선의 법궁이라고 하는 경복궁보다, 후원이 있고 또 그 지리적 특성에 맞게 궁궐을 배치한 창덕궁이 오래 전부터 좋았다. 연초 해돋이, 연말 해넘이를 굳이 보러 다니지는 않지만 일상 속에서 가끔 만나는 일출과 일몰을 볼 때면 경이로움을 느끼며 가만히 쳐다보다가 결국엔 사진을 찍는다.
나 스스로가 자연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은근히 자연의 경관을 좋아했다. 아니, 어쩌면 도시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그런 것들을 놓치며 살게되어 자연의 경관에서 주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살다보니 잘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다.
사진이 취미인 나는 때때로 시간을 내어 사진을 찍으러 이곳 저곳을 다닌다. 그곳은 랜드마크 일 수도 있고, 주위에 아무 것도 없고 해변가만 덩그러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30분을 넘게 헤매며 올라가야 서울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사진을 찍기 시작한게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눈에만 담기에는 아쉬운 풍경들이었다.
자주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점점 많아지기도 한다. 보고 듣는 것들이 많아지니 그 안에서의 호와 불호가 나뉘며 그렇게 몰랐던 나의 취향도 알아간다. 여행지에서 나는 늘 서점을 찾고, 그 여행지에서 책을 산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을 만한 카페에 가서 그날 산 책을 읽는다. 여행지에서의 나만의 루틴이라면 루틴이다. 그런데 꼭 여행지에서의 코스에서는 공원이 들어있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든, 인공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든 구분 없이 그 동네에서의 유명한 곳에 늘 검색하면 나오던 곳이었다. 내게는 맛집탐방보다는 이런 것들이 더 좋았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찾아간 그들의 정원, 공원이 함께 나왔다. 평소가 보고 싶었던 곳, 과거에 내가 가봤던 곳, 앞으로 가봤으면 하는 곳,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나눌 수 있겠다. 오랜 종갓집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친구와의 기억을 서로가 죽고 난 후에도 기억될 수 있게 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그 공원을 보며 그들이 우정을, 사랑을 기억하고 있으며, 한 나라의 왕실에서 가장 보물이 숨겨져있기도 하며 아픈 역사로 인해 그 빛을 바라지 못해온 것을 우연히 그 진가를 발견한 누군가의 오랜 노력으로 다시 그 빛을 찾기도 했다.
내일이면 오래 미뤄두었던 호주 여행을 떠난다. 1달 이라는 짧고도 긴 일정이지만 내가 주로 찾고자 하는 곳들을 추려보니 대부분 자연 풍광이 멋진 곳이었고, 크고 작은 공원들이 늘 있었다. 풍경 사진을 주고 찍는 내게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다시 리스르를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공원, 정원이라는 개념을 좋아한다.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그보다 더 평온한 순간이 없을거다. 나중에 먼 훗날 오랫동안 꿈꿔왔던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용 공간을 만든다면 고즈넉한 정원은 앞에 꼭 두어야겠다.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자리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더라도 아주 작아도 좋으니 편안한 암체어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고개를 들면 푸릇한 무언가가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도 정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가는 중이다.
시드니의 첫 일정은 Sydney Observatory Hill Park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다가 천천히 걸어와 Barangaroo까지 와봐야겠다. 10년 전에 스냥 스쳐가듯 가본 곳은 이제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 그 변화를 빨리 느껴보고 싶다.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걸 받았는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곧 멀지 않은 날, 모로코 야자나무 아래서 당신과 다시 만날 겁니다.
_p.30

오래된 건물, 오래된 터, 정원에서는 수백 년 동안 쌓아온 기억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의 기억을 땅과 나무과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거죠. 오래된 고택에 서면 바로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만나 듯, 묘한 시간의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_p.85

지금이나, 그리고 우리의 문명은 지금 어디쯤, 어떤 모습으로, 어떤 길을 지나고 있는 중일까? 그게 지금의 우리가 과거를 자꾸 만나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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