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명관의 아코디언
어른들이 버린 아이들의 지옥, 한국은 가면사회인지도. 탈만 다른 것으로 바꾸어 썼을 뿐 민낯은 여전히
천명관은 왜 한국전쟁이후 버려진 아이들, 앵벌이의 삶을 조명했을까?
소설 「아코디언」에는 제대로 된 어른은 없다. 제대로 된 아이는 있을지언정. 어쩌면 작가는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현실 세계를 비판하며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아이들과 청년들의 목소리를 빌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아름답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책을 덮고 나서 하염없이 천명관은 왜 앵벌이의 삶에 조명했을까 생각했다.
소설 「아코디언」은 한국전쟁 이후 버려진 아이들이 앵벌이가 되는 과정,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아름답지 않다. 어른들의 탐욕으로 인해 아이들은 앵벌이의 수단으로 활용되지 목적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한다. 칸트는 인간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지 수단으로 활용되어선 안 된다고 했던가. 한 철학자의 명제가 무색하게 눈이 멀쩡한 아이는 두 눈을 멀게 하고. 다리가 없는 아이는 일찍 철이 들어 사악하고 매서운 아이가 되고, 살아남기 위해 배신을 밥 먹듯이, 마약 중독자로 중독시켜 아름답지 못한 아이로 내몬다. 사지가 멀쩡한 아이도 신체가 불편한 장애아로 둔갑시킨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이끌어내고 구걸 사업을 이끌어간다. 혹 아이의 사지가 멀쩡하면 외화 벌이의 수단으로 입양 보내어진다. 세상에 태어나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어른들의 탐욕과 욕망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아이들.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아이들을 구걸의 수단으로 한 앵벌이들의 삶을 작가는 현미경 보듯 묘사하여 그들 안에 믿음과 배신, 우정과 탐욕과 사랑을 그려낸다. 그리하여 구정물 안에서도 아름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눈으로 보아서 아름다운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며 아름다운 것의 가치를 찾아내어보자고 한다. 빅토르 위고나 어른을 위한 우화를 쓴 생텍쥐페리 작가도 말했던가. 고전 대열에 오른 작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던 목소리가 현대 작가 천명관에게도 유효한 것을 보니 세계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갖고 있는 이들이 드문가 보다. 어쩌면 이곳도 마찬가지.
한국전쟁이후 미군이 주둔한 용산이 있는 곳 인근 이태원에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 활동이 왕성했다. 이태원동의 작은 산은 도심에서 쫓겨나 빈민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어디나 그렇듯 어렵고 힘들고 험악한 곳에 빈민들이 내몰렸다. 이곳에서 신분, 빈부차별 없이 모든 이에게 사랑과 구원을 준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믿음과 맹신을 이끈 사이비 양목사가 있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면 지독하게 나쁜 인간이면서도 지독하게 불쌍한 인간으로 어른들이 어떻게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끌어 앵벌이 활동을 이끌어 갔는지, 인간에게 사랑과 배신이 얼마나 종이 한 장 차이인지 가늠하게 한다.
한국전쟁이후 세계 어느 빈민국보다 가난했던 한국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했다. 고도의 발달된 정보 기술 문명국으로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여전히 천명관이 소설 「아코디언」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196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나 2026년 한국사회나 외형만 다를 뿐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나 돈과 탐욕을 위해 인간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씁쓸한 모습이 여전히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가면사회인지도. 탈만 다른 것으로 바꾸어 썼을 뿐 민낯은 여전히
서울에는 여전히 어른 앵벌이가 있다. 길을 가다보면 어른 앵벌이는 지친, 삶의 의욕조차 없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다.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시대이다. 먹을 것이 없는 시대가 아니라 물질 잉여의 시대이다. 길에서 앵벌이를 보면 간혹 자발적 앵벌이인지, 여전히 어딘가 소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힘없는 앵벌이인지 헷갈린다. 앵벌이의 눈동자에는 슬픔도 동정도 없다. 앵벌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들도 동정심을 잃었다. 동정심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산업화가 되어버린 시대이다. 불신의 시대이다. 고독한 이기주의 시대이다. 다행이 아동의 인권과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가 생겨나 소설 「아코디언」에서처럼 앵벌이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한편 다른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달느 방식으로 아동을 착취하고 활용하여 돈벌이로 또는 욕망의 수단으로 삼는 나쁜 어른이 존재 중일 것이다. 여전히 세계는 긍정적 세상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구조에서 기생하며 부와 욕망과 명예를 채우고 사는지도.
천명관의 문장은 짧고 강렬하다. 그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문장의 힘은 단어의 힘에도 느껴진다.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게 서사를 밀고 가는 힘, 상황을 드러내는 문장마다 삶과 내공이 묻어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영상을 떠올렸다. 이창동의 소설과 이창동의 영화를 떠올리면서 그 매력에 흠모했던 자로서 천명관의 소설과 천명관의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한 우물만 파는 작가이기보다 소설과 영화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도권에서 흔들리지 않고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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