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뭐할까?

비바람 치는 날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69
바바라 리만 글 그림 / 마루벌 / 2007년 11월

비가 오면 따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누워 책보는 재미가 그만이다.

그러나 그건 허구헌날 돌아다니는 아이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날이면 날마다 혼자 집에서 맴맴거리는 아이에겐

비오는 날이 더 처량맞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주인공 또한 그렇다.

우중충한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의 뒷모습은 참 쓸쓸하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일지 짐작이 간다.

그런 아이가 열쇠를 발견하고 상자속 세상으로 내려간다.

(우리 아이는 보물 상자라고 했다.)

거기는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이 펼쳐진 섬나라의 등대였다.

낯모르는 아이들과 친구가 된 주인공은 아주 행복한 얼굴로 돌아온다.

다시 비오는 날. 이번에는 등대의 친구들이 주인공의 집에 와서 재밌게 논다.

이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글자 하나 넣지않고 그림으로만 풀었다

그런데 얼마나 꼼꼼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았는지 단편 소설이라도 읽은 느낌이다.

집에서도 신발을 신고 넥타이를 매고, 수 많은 장난감은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커다란 식탁에 앉아 시중을 받으며 거창하게 식사하고...

그림은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답답하게 살고 있는지 순간순간 캐치하였다!

그와 비교하여 등대의 삶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바람을 맞으며 연을 날리고, 맨발로 달리고, 모래성을 쌓고, 밝은 표정으로 웃고

아이는 장난감없이도 행복하다. 친구와 자연이 있어서.

난 우리 아이에게 아무말도 설명하거나 묻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는 안다. 손톱만큼 나온 강아지도 잘 찾고 주인공의 표정도 잘 읽는다.

글자가 생각을 가로막는 경우도 많은 법이다.

먹으면 먹는대로 읽으면 읽는대로

모두가 책을 사랑한 세상 - 마루벌의 0100 갤러리 022 ㅣ 0100 갤러리 22
스티븐 팔라토 지음, 신윤조 옮김 / 마루벌 / 2007년 11월

먹으면 먹는대로 변하기 마련이다.

햄버거를 한달간 먹으며 신체의 변화를

영상으로 기록한 영화가 있어서 화제를 일으킨 적도 있다.

먹는 것 뿐이랴?

인풋 아웃풋

귀로 욕을 자주 듣는 아이들은 입으로 내뱉는다.

눈으로 폭력을 접해본 아이들은 손과 발이 거칠다.

머릿속에 집어 넣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저분한 걸 읽으면 머리에 똥만 가득차기 마련이다.

이 책의 남자는 꽃을 읽었더니 머릿속이 꽃으로 가득찼다.

당연하지!

책의 등장인물인 말도 마찬가지다. 물고기를 읽었더니 온 몸이 물고기 투성이다.

그럼 이렇게 심오하고 철학적인 내용을 어떻게 담아냈을까

와우! 대단히 파격적이다. 유아 그림책에도 이렇게 신선한 시도를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잡지에서 오려내어 붙였는지 색감이 현란하고 무늬가 다양하다.

작가의 이력을 보았더니 영재를 대상으로 교육을 한단다.

흠, 그래서 이렇게 깜짝 놀랄만큼 기발하고 독특했나?

책을 사랑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놀라운 일들이

현대적인 퍼포먼스처럼 한바탕 벌어졌다.

그냥 눈으로만 봐도 아이들과 이야깃거리가 많은 책이다.

덤으로 책이 주는 영향에 대해 아이들에게 살짝 귀뜸하는 것도 좋을듯!!!

어린이 그림책의 고전

더벅머리 페터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예순일곱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67
하인리히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 지음, 엄혜숙 옮김 / 마루벌 / 2007년 6월

백년도 넘게 아이들에게 읽혀 온 이 책은 무슨 내용일까?

호기심에 책을 넘겨보니

지금흔히 보는 어린이 책과는 사뭇 다르네요.

그림도 단순하고 다소 촌스러우며

내용도 아주 직설적이에요.

전래동화가 충격적이며 사실적인 내용이 많듯이

이 책도 고전답게 솔직하며 엽기적인 부분이 눈에 띄입니다.

에둘러말하지 않고 가식을 벗어던진채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책.

떼쓰고,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이 죽을!!!정도로 혼나는 책.

예전에도 지금처럼 아이들은 말을 안들었나봐요.

우리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정도로 나쁜 애는 아니니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을까요?

아이랑 주거니 받거니

동물 친구들은 밤에 뭐해요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7
이은숙 글.그림 / 마루벌 / 2007년 3월

아이들이 세상으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바람은 왜 불어오는지?
구름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러다 나와 세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강아지는 맨발로 다녀도 괜찮을까?
나무는 밥을 먹지 않아도 쑥쑥 자랄까?
바로 이런 질문을 하는 아이에게 딱 좋을 책이다.

<<사자도 잠을 자요?
그럼, 그런데 엄마 사자는 자지 않고 식구들을 지킨대.>>
아기 곰의 첫 번째 질문에
아빠 곰이 다정하게 대답하는 부분을 읽어주자
우리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엄마 사자가 잠을 안자?”
그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엄마는 왜 자?”(-_-*)
아이의 질문과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엄마 사자는 언제 자느냐, 아기 사자는 하나도 무섭지 않겠다, 등등.
얼룩말이 서서 자는 다음 페이지에서도
아이는 계속 종알거렸다.
다리가 아프겠다, 아기 얼룩말은 엄마 얼룩말이 업고 자냐? 등등.
고양이가 배를 드러낸 채 떡 하니 드러누워 자는 장면에서는
아이도 나도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동물 친구들은 밤에 뭐 해요>는
단순히 아이들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해주는 책이 아니다.
사고를 확장시키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는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이 책의 그림은 예사롭지가 않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놓인 그림은
밤이 주는 느낌처럼 몽환적이다.
아이들 꿈속의 세상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이 책을 일백프로 활용하는 법!
몇 번을 읽어주었더니 아이가 책의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그러다 ‘뱀’ 글자를 가리키며 소리 내어 말했다.
아마도 뱀의 강렬한 모습이 옆에 적힌 글자와 연결되었나보다.
혹시 백 번쯤 읽어주면 글자를 떼려나?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는 책.
독특한 감각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책.
아이와 엄마가 주거니 받거니 즐거워지는 책이다.

마음을 사로잡다

소녀의 눈동자 1939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1939년에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히틀러가 폴란드를 점령했다. 그리고 폴란드에 사는 유대인을 게토로 몰아내고

다시 아우슈비츠로 쫓아낸다. 그 당시 10대 소녀였던 샤나는 유대인이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두눈으로 아빠가 총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엄마와 여동생을 떠나보내야 했고 할머니와 둘이서 아우슈비츠의 참혹한 생활을 견뎌야 했다.

샤나의 아픈 기억이 어느날 힐러리의 기억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자신의 아버지가 유대인때문에 죽었다고 믿는 힐러리는 신나치주의에 가입한다.

유대인을 괴롭히는 일에 앞장서던 힐러리는 오토바이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놓이고

병상에서 처음보는 할머니를 만나면서 유대인 소녀 샤나의 삶을 경험한다.

작가는 신나치주의 소녀인 힐러리와 2차대전 당시의 유대인 소녀 샤나의 삶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새로운 역사적 진실을 전달한다.

유대인의 고통은 단순히 한 민족이 특별히 겪는 역사적 아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힘있는자가 약한자에게 가한 폭력이었고

부당한 행위였다.

가족을 잃고 인간의 모습을 상실하고 자신을 부정해야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나치의 만행은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저들은 우리를 때리며 비웃지만, 그리고 우리의 헐벗고 굶주림을 조롱하지만

나는 저들의 뚱뚱한 몸 속에 있는 헐벗은 영혼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샤나의 할머니는 인간의 고귀함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설명한다.

샤나의 몸을 빌어 유대인의 참상을 경험한 힐러리는

마침내 역사의 진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힐러리는 자신의 앞에 자꾸만 나타났던 병상의 할머니가

바로 샤나였음을 알게된다.

샤나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힐러리에게 유대인 소녀의 고통을

약자의 고통을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알려준것이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청소년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때가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역사의 진실이다.

책표지에 쓰여있듯이  기억해야한다.

그것만이 비뚤어진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역사적인 진실과 문학적인 향기에 취해보길 바란다.

샤나와 힐러리라는 시대를 뛰어넘는 교감은 새로운 문학적 경험이었다.

작가는 전쟁과 역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문학적으로 멋들어지게 승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