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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 추천! ㅣ 스타 라이브러리 클래식
다자이 오사무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5년 9월
평점 :
기억의 저편으로 흩어져 버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을 다시 읽어 본다. 소설 속 오바 요조는 순수하지만 병약하고 슬픈 영혼을 가진 주인공이다. <인간 실격>은 요조라는 독특하고 난해한 성격의 인물을 표면적으로 내세우면서 인간의 존재의 본질 그 내면의 심연 속에 깔려 있는 어둠과 공포를 지극히도 섬세하고 담백하게 쓰고 있다.
주인공인 오바 요조는 유복한 가정에서 머슴과 하녀를 두고 물질적으로 풍족함을 누릴 수 있는 집안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어린 시절 겪은 그의 병약함 그리고 소설에서 짧게 언급되는 하녀와 머슴에게서 받은 성적 학대, 어른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은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에 대해 혹은 인간에 대해 유연성을 가질 수 없는 근간이 된다.
오바 요조가 유년 시기 때 부딪힌 정신적 학대와 결핍은 자연스레 인간의 대한 사랑보다는 공포로 연대되어 그가 자연스러운 자기 자신으로 성장하는 것, 즉 세상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주체적 자유와 결정을 앗아간다. 늘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가며 익살이라는 본인만의 무기로 연기를 하는 것은 타인의 사랑 혹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순수하지만 용납될 수 없는 마음, 세상에 대한 환멸을 숨기기 위한 혹은 복수를 위한 이중장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서로 속이고,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상처 입는 사람도 없이, 서로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정말로 완벽한,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예가, 인간 생활에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인간 실격> 소설 28p. 인용)
요조의 아버지의 연설에 대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구 욕하던 어른들과 하인과 머슴들이 얼굴을 바꿔 정말로 기쁜 듯한 얼굴을 하면 말하는 장면을 통해 느끼는 세속에 대한 아이러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번 즈음 느껴본 세상의 모습의 미미한 일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요조라는 인물에 동의하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주 어렸을 적 일화이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일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라 어렸을 땐 느꼈고 내가 더 강하고 밝은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언제부터 아팠냐 왜 아프냐 하는 둥의 질문을 예의 부드럽고 걱정되는 말투로 하시는 어른들을 보면서 그때는 왜 어른들은 이 모양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들을 마음을 모르는 인간이란 존재는 심히 무섭다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그 말의 포장된 의도는 걱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그런 얘기는 가족인 우리도 상처가 될까봐 잘 하지 못하는 것인데 왜 매번 따듯한 얼굴을 하면서 아픈 이야기를 하게끔 하는 건 왜 그런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고 그 질문에 한숨 쉬며 답하는 어머니를 볼 때면 타인의 마음은 알지 못하고 사사로운 호기심을 채우는 그들이 무례하다고 생각되었다. 이것은 아주 작은 일례이고 무서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어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은 나도 그런 어른이지 않을까 늘 경계하기도 한다.
요조는 커서도 본인이 꿈꿨던 화가가 되지 못하고 호리키라는 친구에게서 배운 술, 담배, 매춘부, 전당포, 좌익 사상 등으로 다소 어느 정도의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여자와 술에 빠지고 결핵에 걸려 병원에 가야할 상황에도 가족들의 판단 아래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그것으로서 그는 인간실격, 이미 완벽한 인간이 아닌 것이다라는 거부할 수 없는 자의 불행의 끝으로 이어진다.
오랜만에 순수하지만 약한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세상에 소리내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고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자격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지 회고해보는 시간이었다.
Ps. 초등학교 이후로 <죄와 벌>은 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최근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를 미뤄보아 죄와 벌은 그리고로 연결된 유의어가 아니라 반의어로 추측해본다. 벌은 잘못의 인식 혹은 인정과 지각이라든지 반성이라든지 하는 등의 부분 연관이 있기 때문이리라.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