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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 1 ㅣ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6
김민서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여, 오라, 내게는 내가 책임지고 나를 책임져주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 모두가 삶 앞에서는 동맹군이다. 이들이 있는 한, 나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p298(2)
주인공 유민의 시점으로 쓰여지는 이 소설은, 유민과 그녀의 주위사람들을 통해, 현재의 20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유민은 남들이 한번씩은 다하는 휴학과 어학연수를 거치지않고, 아무런 스펙도 준비하지 못한채 스트레이트로 대학을 졸업했다.
남들 다아는 대학의 연극영화과를 졸업했고, 객관적으로 외모되고, 성격도 괜찮고,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정의내린,목동에 살지만 강남에 사는 것을 꿈꾸는 스물네살의 여성이다. 낙하산으로 방송국 시사프로의 막내작가로 취업했고 한달 월급은 100만원이 안된다.
그리고 유민의 같은 대학 연극영화과 동기들로 유민보다 예쁘고 클럽 죽순이인 혜지, 유민보다 돈이 많고 뉴욕 유학을 준비중인 민희, 유민보다 똑똑하고 계약직 은행 텔러로 근무중인 수진, 이렇게 4명의 여성이 이 소설의 중심에 있다.
네명은 연극영화과에 아웃사이더로 학교보다는 클럽이나 카페에서 우정을 쌓았고, 모두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졸업했으며, 4명 모두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졸업후에도 여전히 클럽을 통해 어울리며 살아간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우정이라 믿는 민희에 의해, 남자관계, 취업, 관심사등을 공유하며, 베스트프랜드라는 이름으로 어울리는 사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24살의 생활이, 1년도 안되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2권으로 이루어진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를 통해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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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하지만 남자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경제적 조건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유로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냉혹한 여자들의 머릿속을 가장 크게 차지하는 것은 얼굴조차 모르고 만날지도 불확실한 새 애인의 차와 생일선물로 받을 가방이 아니다. 거실에서 마주칠때마다 한 숨을 푹푹쉬는 엄마의 얼굴이다. x염색체로 태어난 해야 할 효도를 외면하고 있다는 원인 모를 죄책감이다.p60
유민은 남자친구를 좋아하지만 외제차를 가지고 있지, 아니 차가 없다는 이유로 괜찮은 직업은 커녕 취업을 준비해야 할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매번 모텔에 가는 비용까지 그녀가 내야한다는 이유로 그와 헤어진다.
헤어짐에는 그녀가 현재 사는만큼도 누리지 못하고 살까하는 두려움도 존재하지만 더불어 친구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 특히 억단위를 들이며 키운 부모님의 고생을 모른척 할 수없다는 생각도 한 몫한다. 아직까지도 여성은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 만큼이나 괜찮은 조건(특히 외형적으로 보이는)을 가지는 남성과의 결혼이 성공한 인생, 부모에게는 성공한 자식농사가 되기도 하는 이유이다.
인생의 패자와 승자가 결정되는 순간은 스무 살 겨울 방학이 아니 대학 졸업 이후부터일까. 나는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나를 위한 자기계발을 시작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대책 없는 희망.p182
세네카는 "미래에 대한 낙관에는 위험스런 순진함이 들어있다." 고 말했다. 이 말을 인용해보자면 남자에 대해 알 만큼은 안다는, 순진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삶만큼은 미래에 대해서는 이상스런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본 적도 매 학기 500만원의 등록금을 내는것이 힘든 적이 단 한번도 힘든적이 없었다. 남자에 대해서는 14살을 시작으로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지만 그녀는 경제적, 특히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배울기회가 없었다. 용돈 달라하면 주는 부모가 있었고 몇번의 투정만 하면 명품 백을 사주는 부모가 있었고, 그녀 주위의 친구들 또한 모두 그랬다. 특히 그녀 스스로 행복의 기준을, 앞으로의 미래의 기준을, 배우자의 기준을, 경제적 능력에 큰 가중치를 두고 있으므로 매달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면서 그제서야 진짜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사실이 슬프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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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2)
결국 남은 것은 불확실뿐이다. 하지만 인생의 불확실함이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아이러니한 인생이라니. p303
친구의 결혼과 이혼, 죽음, 친구의 성공과 갈등등을 겪으며 소설의 종반에 다달아 그녀는, 낙하산으로 들어간 방송작가일을 엄마에게 선전포고식으로 그만둔다고 말하고 독일로, 유럽의 중심으로, 삶의 중심으로 여행을 가고싶다라고 이야기한다. 목적없이, 바라는 것없이 살던 그녀에게, 바람이 생긴것이다.
작가는 해피앤딩으로 마무리짓지않는다. 하지만 희망은 던져준다. 지금 우리가 놓여진 상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므로, 그녀의 말대로 스탑버튼이 없는 런닝머쉰을 뛰는 기분이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왕이면 온전히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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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릿소설의, 20대 여성의 물질적 바람의 대표격인 마놀로블락닉과 스타벅스가 나온다. 그리고 맞닥트리고 싶지않은 현실이 나온다. 작가의 말대로 된장녀의 머리와 심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20대 여성이 나온다.
이 책을 읽을 생각이라면, 가볍다 여기고 그만 덮을까 갈등하면서 50페이지 정도만 넘기면 된다. 50페이지부터는 현실이 나올테고 그러면 책을 덮을 수없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고, 20대라면 말이다.
작가는 읽는 이에게 생각할 여유따위는 주지않고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읽는 이는 의견을 피력하기보다는 그냥 공감하면 된다. 유민의 생각에, 그녀들의 대화에...
그리고는 나의 모습은, 내 친구들의 모습은 소설속에 나오는 누구의 모습일까? 생각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질투심이든, 박탈감이든, 수취심이든, 친한 친구에게조차 드러내고 싶지않았던 여성들의 미묘한 감정을 소설 속 그녀들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을것이다.
모두 다르지만 결국은 같다는 것을, 나 또한 그 사실이 참 큰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