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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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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상 입문 - 데리다, 들뢰즈, 푸코에서 메이야수, 하먼, 라뤼엘까지 인생을 바꾸는 철학 Philos 시리즈 19
지바 마사야 지음, 김상운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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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결단은 그것으로 이제 아무 미련 없이 완료되는 것이아니라 항상 미련을 동반하는 것이고, 그러한 미련이야말로 바로타자성에 대한 배려입니다. 우리는 결단을 거듭 되풀이하면서 미련의 거품 속에서 다른 기회에 어떻게 응할 것인가를 계속 생각해야합니다. 탈구축적으로 사물을 봄으로써 편향된 결정을 하지 않아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항상 편향된 결단을 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잠재적인 virtual 아우라처럼 타자성에 대한 미련이 뒤따른다는 것을 의식하자는 얘기입니다. 그것이 데리다적인 탈구축의 윤리이며, 바로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친절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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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noza‘s conatus is the near equivalent of Tillich’s courage to be. Being is not something that just is; it must constantly strive to affirm itself against the threats posed by nonbeing. For both Spinoza and Tillich, this continuous affirmation of being is also the essence of each individual person. It is related to both Augustine‘s "restlessness" and Nietzsche‘s "will to power." From the tiniest insect to the entire cosmos, that which is must strive to maintain itself in being. For Tillich, this endless struggle is not something to be lamented. Without it life would be inert, not real life at all.
Hamlet‘s "To be or not to be" is indeed the question. It is every-one‘s question, and it is also the one that underlies all the questions asked by the various academic specialties. This explains why Tillich believed that an analysis of courage could help bridge the between philosophy, science, literature, and theology.
To today‘s reader, however, who rarely worries about bridging the chasm between disciplines but does muse, at least on occasion, about his or her own existence, this may all sound quaintly theoretical. For Tillich it is not. When he recalls that the word "courage" derives from the French word for heart, he also reminds the reader that the "heart" symbolizes far more than just the seat ofemotions. It has meant, and still means, the vital center of reality.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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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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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끝내 완전히 동일해질 수 없을 둘 사이의 상처와 고통의 불균형을 남은 생을 통해 가까스로 맞춰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저울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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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킬로스의 소위 ‘고통을 통한 배움(pathei mathos)’(아가멤논〉, 177행)이란 고통 뒤에는 깨달음이 있다는 뜻이지만 고통없이는 무엇도 진정으로 배울 수 없다는 뜻도 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같은 경험과 같은 고통만이 같은 슬픔에 이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참한 소식이다. 그런데 더 비참한 소식은 우리가 그런 교육을 통해서도 끝내 배움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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