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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의 놀라운 여행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3
댄 거마인하트 지음, 이나경 옮김 / 놀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 망가지지 않았다. 난 연약하지 않다. 그걸로 그만이다." (54쪽)
가끔 그런 애들이 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좀 되바라진 아이들, 그런 애들을 보면 '어쩜 저럴까?' 같은 의문이 들곤 했다.
책의 주인공인 '코요테'도 그랬다. 여정 내내 함께한 고양이, 아이반과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그랬다. 게다가 코요테도 이상했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로데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외모야 개인의 취향이니 그렇다 쳐도 코요테는 로데오 앞에서는 그를 아빠로 부르지 않았다. 아빠인 건 분명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저 로데오라고 부른다. 이상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저자는 독일 태생으로 미국에 사는 사람이지만 우리 사이에 있을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린 소녀가 자기 아버지를 아빠가 아닌 다른 호칭으로 아무렇게나 부른다는 사실에 위화감이 들었다.
의문은 스쿨버스가 길을 따라 굴러가는 동안 자연스레 풀렸다.
코요테와 로데오는 5년 전 사고로 가족을 잃고 집을 포함한 모든 걸 처분해버린 뒤 스쿨버스에 타 정처 없는 여정, 방황에 가까운 여행을 시작한 것이었다. 코요테가 말하길 출발하면서 '아빠'는 두고 가기로 했다. 그 이름을 들으면 가족이, 죽은 엄마와 언니, 동생이 아빠에게 떠오른다면서 말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로 한 약속이었어. 아빠라고 부르면 생각나니까. 그들이, 그러니까 언니랑 동생이. 로데오는 그걸 좋아하지 않다. 그래서 출발하면서 ‘아빠’는 두고 가기로 했어." (132쪽)
그렇게 이어진 방황이었으나 로데오는 정말 사랑하는 딸에 대해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추억의 상자, 그들이 살던 고향의 공원 어딘가 코요테가 엄마와 함께 묻은 추억이 깃든 상자가 있었다. 할머니로부터 공원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해 듣자 코요테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랬다. 난생 처음으로 그녀만의 목적을 갖게 된 것이었다.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로데오는? 등을 돌려 죽은 이들로부터 멀어진 로데오는?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로데오를 속여 대충 근처로 간다는 계획은 처음엔 잘 되는 것 같았다.
스쿨버스에 올라탄 사람들도 코요테의 계획을 듣곤 거기 동참했다. 물론 로데오는 빼고 말이다. 하지만 로데오는 코요테의 로데오다. 아마 세상에서 누구보다 그녀에 관해 잘 알 것이다. 목적지를 두고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해진 코요테의 행동,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변한 태도를 로데오는 귀신같이 읽어냈다. 그래서 들켰다. 하지만 코요테는 물러나지 않았다. 맞섰다. 로데오를 설득하고 대화했다.
결국 로데오도 가기로 했다. 스쿨버스의 브레이크가 고장 나는 난관을 겪긴 했으나 코요테의 기지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젠 로데오가 말썽이었다. 버스를 엉뚱한 곳으로 몰고 간 것이다. 그리고 술을 마셔 댔다.
그렇다고 로데오가 코요테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둘은 코요테 가족을 봤을 때 함께 눈물을 흘렸다. 지난 5년 내내 떨어지지 않은 두 사람이었다. 코요테가 주유소에 혼자 남자 부리나케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럼 왜 그랬을까? 왜 사랑하는 딸이 추억의 상자를 찾는 일을 방해한 걸까?
그는 두려워했을 것이다. 스쿨버스에서 5년은, 그가 선택한 방황이었다. 둘째 딸과 자기만 살아남게 된 슬픔이 그를 덮쳤을 것이다. 무력감에 젖고 고향에서 등을 돌렸다. 버스에 올라 보상으로 받은 돈으로 그는 어디든 다녔다. 그 고향만 빼고 말이다. 그런 삶이었다. 로데오의 머릿속을 지도로 그릴 수 있다면 미국 전역에서 고향만 불로 지진 듯 검게 그을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과거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진 못했다.
코요테가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그의 딸, 딸은 지금 추억을 향해 가고 있었다. 묻어버린 기억을 파내고 싶어했다. 로데오도 그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아내와 두 딸의 기억을 억지로 억누를 뿐, 잊지는 못 했다.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쉽게 흔들렸을 뿐이다. 어쩌면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그 상처도 그만큼 컸던 걸지도 모른다. 딸과 다른 점이라면 딸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 뿐이다.
여정의 끝에서 그는 코요테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나로서는 딸에게 버스 운전을 감행하게 하는 선택이 몹시 놀랐지만 그는 딸을 세상에서 가장 신뢰했나 보다. 수갑을 차면서도 암호로 코요테의 등을 밀듯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코요테는 달리기 시작한다. 추억을 되찾기 위해, 엄마와 언니, 동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
스쿨버스가 미국의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향하는 동안 많은 가족이 버스에 오르내린다.
서로를 너무 사랑한 탓에 갈등을 빚는 연인이 있었고 못난 아빠 때문에 성숙한 아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도 있었다. 레즈비언이라 가족과 찢어진 사람도 있었고 코요테가 주워 온 고양이, 누군가 맡긴 염소도 있었다.
숱한 관계는 모두 코요테와 로데오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여정의 중심에는 결국 두 사람이 있었고 버스는 과거를 잊고 도망치는 것과 그래도 그것을 마주하는 것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는, 조금은 뻔한 결말로 내달렸다. 청소년 소설이라 그런지 끝은 햇살이 가득 차오르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처럼 따뜻하고 마음을 데우는 감각이었다.
그런 내용은 없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천천히 머릿속에 떠오른 감상을 잡아다 머릿속 서랍에 넣는 동안 그런 상상을 했다. 언젠가 버스에 탔던 사람들, 이번 여정을 함께 한 이들이 모여 그 여정의 귀퉁이 한 곳에 서로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상자에 넣어 묻지는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엘라'라면 그럴 것 같다. 아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지.
5년 전에 시작된 정처 없는 방황은 끝내, 상실에서 비롯된 망각을 벗겨내며 끝났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건 뭔가로부터 달려가는 것보다 낫다. 훨씬 낫다." (3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