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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이런 말이 있다.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실제로 인생, 삶의 여정은 끝없는 선택의 반복과정이다. 당장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부터 어떤 사람을 만날지, 가깝게 지낼지 따위를 정하는 일이 모두 선택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삶은 선택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끝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당연하게도 대가가 따른다. 사소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세상의 이치 중 하나이다. 우리, 모두는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대가를 치른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이 명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나’는 약간 특별하다. 좋은 의미는 아니다. 심각할 정도로 말을 더듬는 탓에 학교에서 마음을 둘 곳이 없다. 그에게 관심이 없는 선생은 “야, 가봐.”로 일관된 거리감을 보이고 아이들도 다를 구석은 없다. 사실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에게 아이들은 가혹하게 굴고는 한다. 여기서도 그랬다. ‘나’는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집 밖에서 그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집 안이라고 사정이 변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생물학적, 경제적인 기능만 수행할 뿐 나머지 부분에서는 실격이었고 그가 데려온 새엄마인 ‘배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대화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는 꼭 인간이 아닌 것처럼 묘사된다. 그래서 ‘선택’하지 못하고 언제나 남의 행동으로 인해 내몰린다. 반강제적으로 집을 떠나는 모습이 그랬다.
가끔 빵을 사던 제과점으로 도망친 일, 거기서부터 ‘나’의 삶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반은 파랑새로 있는 소녀와 정체불명의 점장이 있는 가게였으나 ‘나’의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며칠이었다. 어쩌면 말을 더듬게 된 후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장소는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서는 그랬다. 밖에서처럼 그의 말을 자르거나 하지 않았다. 몽마에 붙들린 점장을 구하기 위해 무모한 행동을 한 나중에도 점장은 그와 눈을 맞대고 대화한다. 그리고 ‘나’는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손님 응대가 아니라 컴퓨터로 주문을 처리하는 일을 맡긴 건 ‘나’를 배려한 점장의 행동은 아니었을까.
특별한 마법의 빵, 과자를 파는 제과점은 선택의 무게가 강조되는 장소다. 이곳에서 파는 제품은 놀라운 마법적 효과를 불러오나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구매자에 달려 있다. 맥없이 하는 소리가 아니다. 여기서 파는 제품은 귀여운 구석이 거의 없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좋은 꿈을 꾸게 해주는 에그타르트’나 ‘사이가 좋아지는 크로켓’ 이런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다. 무서운 물건들이 한가득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힘을 남용한 이들도 등장한다.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교복’이나 한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놀던 여자가 제품의 힘을 남용하고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간과한 이들이었다. 점장 또한 그런 적이 있었다. 마치 빅터 프랑켄슈타인처럼 자신의 힘을 과신했던 과거와 그로 인한 후회를 맛본 지금 점장은 누구보다 선택과 그 책임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가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나’에게 준 것은 의미심장하다. 곁에서 지켜본 결과, 그 삶을 넌지시 파악하고 한 번쯤은 ‘선택’의 기회를 줘도 되겠다 싶었던 걸까.
제과점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시간을 되돌릴지 말지를 두고 갈등하는 ‘나’의 모습에서 그는 비로소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거듭났다. 자기 삶의 선택권을 가지고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된 인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되돌리는 것과 되돌리지 않은 것, 두 갈래의 미래가 모두 제시된다. 이 점이 흥미로웠다. 마치 책을 읽는 사람에게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저울질해보라는 것만 같았다. 만약 나더러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되돌리지 않은 쪽’, ‘N의 경우’라고 써진 이야기를 고르겠다.
선택의 이유를 나름 써보자면 Y의 경우, 시간을 되돌린 쪽은 ‘배 선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아버지의 운명과 ‘나’가 겪은 운명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을 되돌려 제과점에서 겪은 소중한 기억은 잊은 채 우연히 마주친 소녀를 보고 정체 모를 아련함을 느낀다. 이에 반해 N의 경우는 ‘나’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과 결말을 모두 견뎌내고 나중에 다시 그 제과점을 향해 달리는 장면이 마무리를 장식한다. 이 장면은 작품 초반에 ‘나’가 갈 곳이 없어서 제과점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면서도 모든 게 반대다. 예전에는 내몰리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다면 지금은 제과점으로 향하는 게 ‘나’의 ‘선택’인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선택에 이어 다시금 그 제과점을 찾는 선택을 한 셈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를 선택과 대가에 집중해서 읽게 된 나로서는 ‘N의 경우’가 더욱 와닿는 결말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다시 찾아간 그곳은 이름만 같은 다른 업체일 수도 있고 파랑새나 점장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가 선택한 미래에서 그는 분명히 한 사람의 어른이자 인간으로 거듭나 있었다. 이 이야기가 ‘청소년’ 소설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내 ‘아이’가 ‘어른’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선택과 대가의 무게가 더해져야 함을 일깨워준다. 꼭 잘 구워진 반죽이 오븐에서 빵으로 변화하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