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깔 있는 개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산도르 마라이님의 책을 찾았다. 가끔씩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해야만 하는 것인지 모를 때, 산도르 마라이님을 만나면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쇠고랑이 서서히 풀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조금씩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으로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번 소설 <성깔 있는 개>에서는 한 신사가 등장한다. 부유하지 않은 소시민이며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는 마라이님의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은 신사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위해 크리스 마스 선물을 고르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가지고 있는 쩐은 풍족하지 못하나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고, 부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신사는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추토라라는 이름의 반 풀리종인 개를 선물로 결정한다. 제목에서도 보면 눈치챘겠지만, 추토라는 호락호락 온순한 개가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추토라가 신사의 가족과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마지막까지 벌어지는 광경에 대한 묘사는 단순한 상황이 아닌,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번 작품에서도 진하게 느껴진다. 

추토라와의 만남을 신사는 이렇게 표현한다. 같이 지내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개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뒤를 쫄쫄 따라다니는 게 어이없으면서도 그야말로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56p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아가나 그 자유속에서 자신이 만들어 낸 어떤 규율의 틀 안에 갇혀 있거나, 그 규율을 지키려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때가 많다. 신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오랜시간 지켜오던 규율이 있고, 그것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허나 이렇게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추토라라는 존재로 인해 신사의 규율은 깨지고 만다. 어쩌면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추토라의 모습에 자극을 받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사는 추토라를 위한 노력의 시간에 서서히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추토라는 사람을 무는것을 시작으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본색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표현해야 할 듯. 신사는 추토라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보려 노력했고 받아들여 보려했지만, 종국에는 사생결단을 내려야 하는 선택의 시간까지 가게 된다. 초반의 넘김은 매끄럽게 넘어가지가 않는다. 헌데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고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가면서 감정이 고조되고, 아린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 어린시절부터 함께하고 있는 우리집 강아지 앞에 앉아 아무말 없이 눈을 쳐다보고는 했다.

서로 다른 개체가 만나 서로 융화되는 과정에서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결코 그것이 서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향한 마음이 크기게 더 서로를 강렬하게 물어 뜯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물어 뜯고 피 흘리는 과정에서 오버랩되는 일들.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추토라와 피를 흘리며 그것을 바라보는 신사를 볼 때, 어쩐지 내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서서히 경험을 쌓고,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고, 때로는 넘어지고, 실망을 대가로 배우면서, 우리가 보통 아름답고 선하고 고결한 것만이 아니라 억눌리고 완전하지 못하고 분노에 차 이를 갈며 싸우는 것, 풍습과 화의가 아니라 오점과 항의를 뜻하는 것도 사랑하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은 대단한 교훈은 아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독자여,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이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여하튼 개에게 한번쯤 물려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278p

 

소설의 끝자락에 나오는 구절이다. 읽은지 좀 지났는데도 여운이 남는 책.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살아간다는 것에 위로가 되었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