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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ㅣ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어릴적부터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보고 자란것 중 하나로 고부간의 갈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을 중심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전쟁, 현재 본인의 일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드라마를 통해서 자주 등장하는 일상적인 소재이다. <차가운 밤> 또한 전쟁을 배경으로 고부간의 갈등속에 아주 조금 남아있는 온기마저 차갑게 식어가는 한 인간의 고통을 처절하게 그린 것이다.
소설은 1940년즈음 일본이 중국을 서서히 좀먹고 있는 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적막함과 빈곤, 계속되는 경계경보와 공습경보, 긴급경보 속에 왕원쉬안을 중심으로 그의 어머니와 아내 수성이 있다. 왕원쉬안과 수성은 원대한 꿈을 그리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전쟁이란 황폐함 앞에 그것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번역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힘든 상황에서조차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은 쉬지않고 계속된다.
갈등의 원인은, 늘 왕원쉬안 자신에게 있다. 자신이 못난탓에.. 자신의 부족함에.. 끝도 없이 자신에게 보내는 자책과 질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서른 넷, 전쟁으로 사라진 아내의 밝은 청춘도 그의 탓이고, 어머니가 차가운 물에 손을 담궈야 하는 것도 그의 탓이다. 가정적이지 않은 신여성의 며느리가 못마땅한 것도 자신의 탓이며, 가부장적인 어머니를 감내하여야만 하는 아내의 고통도 자신의 탓이다.
방안은 춥고 어두웠다. 그의 마음은 어느 한 곳 머물 곳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워서 한바탕 울부짖고 두들겨 맞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불안하게 어머니 곁에 서 있을 뿐이었다.(51p) 하늘은 비가 올 듯 흐릿했다. 집으로 가는 익숙한 길이 길게만 느껴졌고, 울퉁불퉁해서 걷기 힘들었다. 주위의 뭇사람들은 모두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는 그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걸음을 끌면서 천천히 죽음을 향해 걸었다.(173P)
그렇게 어느 한 곳 머물 곳 없이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녀들의 관심과 연민이 아니라 화해와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이유를 그들만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전쟁과 가난이란 참으로 바닥의 고통을 맛보게 하는 지독한 것임을 소설에서 말해주고 있다. 소설의 초입 왕원쉬안의 우유부단함과 유약함에 나또한 그 모든 탓을 그에게 돌리고 싶었다. 헌데, 바진이란 작가의 힘은 가히 놀랍다. 한장 한장 마지막으로 가면 갈수록 그의 고통이 독자에게까지 전해져 와 가슴에 응어리를 지게 만들어 피를 토해내고 싶게 만들어 버린다.
자신의 곁을 떠나는 아내 -물론 다른곳으로 발령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를 보낼 수 밖에 없는, 그의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초월한 인간의 경지를 보았다. 마음은 그녀를 곁에 두고 싶지만, 병든 자신이 할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든 어머님을 돌보지도 못하고, 아들의 학비를 댈 수 조차도 없고, 생계를 꾸려 나가지도 못함에 그에게는 선택 없는 선택밖에 없는 것이다.
제목처럼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계속되는 차가운 밤, 죽음으로 향하는 주인공을 통해 드러낸 인간의 심리를 굉장하게 묘사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장 한장 빠른 넘김 속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고통을 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고부간의 갈등, 이라는 식상하는 소재만이 담겨있는 책이 결코 아니었다. 중국 문학을 접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바진이라는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다른 저서들 또한 찾아보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