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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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다룬 많은 책들이 있지만, 권성욱이 쓴 책은 약소국의 관점을 들고 나왔다. 그동안의 관련 주제를 다룬 상당수의 책들이 강대국 중심의 서사를 답습하고 있고, 극소수의 전쟁 당사국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저자의 문제 의식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세계대전이라고 지칭하는 것들이 단지 지리적인 범위에서 그러한 것인지, 혹은 서구 유럽이 가지고 있는 어떤 '중심주의'로서의 세계인지를 따져본다면, 그 안에서 누락된 행위자로서의 국가들을 조명하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은 단지 행위자의 관점을 역전 시켜보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강자의 이야기를 단지 약자의 시점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기존에 자리 잡고 있는 중심적인 서사가 흔들리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행위자 관점의 전환이 반드시 역사를 읽어내는 관점의 전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 책이 중요한 것을 누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관점의 전환 및 수정을 내세우는 책들은 특정한 개념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다. 나는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이 약소국의 정의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약소국으로 에티오피아, 핀란드·발트 3, 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 소국, 벨기에·네덜란드 등 저지대 국가, 그리고 그리스·유고슬라비아·동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사례별로 제시하고 있다. 허나 기존에 나온 주요한 제2차 세계대전 통사들을 읽어본 나로서는 이 사례들이 그저 기존 통사에서 상세하게 다루지 않은 전역에 대한 상세한 서술 이상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가령 1935년의 에티오피아 전역이나 1940년의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스 전역을 다루고 있는 대목들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런 마이너한 전역들에 대한 소개는 일부 전쟁사 마니아들에게는 흥미진진하게 읽힐 것이다. 허나 우리가 잘 몰랐던 전역에 대해 아는 것과 약소국의 비애를 깊게 파고드는 일인 별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군사사적인 흥미를 자극할지는 모르나 그 약소국들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로 몰고 가기 쉽다.

 

 

내가 볼 때 이 책에서 제시되는 약소국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공유한다. 1)군사력이 강대국에 비해 현저히 열세 2)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완충지대에 위치 3)강대국 외교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 4)전쟁 이후 일부 국가는 자율성이 제한. 허나 핀란드, 스웨덴, 유고슬라비아를 예로 들면, 이들은 모두 약소국으로 묶이지만, 스웨덴은 중립을 유지했고, 핀란드는 소련과 제한전을 수행했고, 유고슬라비아는 내부적으로 붕괴했다. 국가들이 결과가 각각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약소국은 능력(capability) 기준인가, 혹은 특정한 체제 내 위상이 기준인가, 혹은 전쟁의 결과가 기준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허나 이 책은 이런 분석들을 수행하지 않고 그저 정치적, 군사적 취약성에 약소국의 의미를 한정하는 것처럼 암묵적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것의 결과는 약소국을 그저 1940년대 세계질서 혹은 유럽질서에 종속된 존재로 읽히기 쉬우며, 단지 군사적 약자로 환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 약소국들이 국제질서의 행위자로서 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이는데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유고슬라비아나 헝가리 같이 구 합스부르크 제국의 소속된 나라들의 경우는 소련의 위협보다 내부의 민족구성이나 종교, 정치갈등이 더 심각했다. 이들은 외부의 위협보다는 내파된 경우에 가깝다. 군사적 약소국, 지정학적 완충국, 체제 종속국 등을 약소국이란 개념에 집어넣기엔 이 개념의 외연은 지나치게 넓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한계는 군사사적 관심에 대한 한정이나 약소국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만큼이나 도드라지는 것이 논증의 부재다. 95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각주나 인용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저자의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논증을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저 주장으로 그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스탈린이나 동유럽 공산화와 관련해서 편파적인 인상을 주는데, 가령

 

동유럽의 공산화는 전적으로 스탈린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당사자들에게 어떤 체제를 고를지 선택권 따위는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유럽 국가들이 하나 같이 전통적으로 반공성향이 강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강제가 없었다면 공산화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956p

 

같은 대목은 최근에 나온 냉전사를 다룬 책들을 보면 저자의 억측이라는 것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동유럽의 공산화는 스탈린이라는 변수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 게다가 뮌헨협정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위선에 대해서 일관되게 언급한 저자가 얄타협정과 같은 전후처리 문제에서 보인 서방의 암묵적 동의에 대해서는 왜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 게다가 이 대목은,

 

“...(중략) 소련을 배제하고 장막을 친 것은 서방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묵인 아래 세력권 굳히기가 계속되었다” 707p

 

라는 대목과 내적으로 모순이다. 게다가 저자는 상반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을 언급하면서 그들과 논쟁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 마디로 일축하는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도 각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대한 분량에 비해 참고문헌은 얄팍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원서의 경우 밀리터리 관련 도서로 유명한 출판사들의 책을 상당수 수록하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의 관점이나 태도의 한계를 짐작하게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존 키건이나 리처드 오버리와 같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연구가들조차 그동안 빠뜨렸던 거대한 빈 공간을 내가 채워 넣는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적었지만 독자로서 그 자부심을 인정하는 일은 별개가 아닐까 싶다


-출판사의 도서지원으로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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