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무한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양명수 옮김 / 다산글방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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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철학은 가깝게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고 멀게는 서양철학 전체가 추구하던 존재론에 대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근대 데카르트가 물꼬는 트고 칸트와 키에르케고르 그리고 그의 스승인 훗설의 철학의 중심 주제인, 주체의 문제를 다룬다. 이 주체가 도대체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를 문제삼았는데 이는 그의 스승인 훗설이 던진 질문이다. 이것을 이어받아 세계 내적 존재-현존재를 분석하여 기초 존재론을 구성한 것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다. 이것은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의 중심주제인 이성 혹은 주체에 대한 분석이며, 키에르케고르가 던지 질문인 실존의 의미분석이며, 하이데거의 스승이 기초를 놓은 현상학적 해석학에 의한 분석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이데거의 철학은 주체와 이성 중심적 철학이며 이것은 철저히 서양철학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반성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철학이다. 그의 철학은 두 가지 커다란 특징이 있다.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주체중심의 철학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이라는 점이다. 그의 철학은 전통적으로 본다면 이성중심의 존재론에 집중하는 희랍철학 전통에 대한 헤브라이즘적 반동으로 볼 수 있다. 희랍철학은 존재의 문제를 중심에 둔다. 그러나 헤브라이즘은 관계의 문제를 중심에 둔다. 희랍철학이 공간(존재)에 집중한 반면 그는 또한 시간의 문제를 통해 실존을 해석한다. 이러한 경향 모두 헤브라이즘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철학은 서양의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전체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다룬다. 서구의 우월주의 혹은 닫힌 세계관을 해체하고 세계 전체를 향한 열린 주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의 유령의 지배를 받는 우리에게는 사뭇 그의 책임윤리와 얼굴의 철학은 의의가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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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갈등 한길그레이트북스 128
폴 리쾨르 지음, 양명수 옮김 / 아카넷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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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갈등은 폴 리쾨르가 현상학자를 넘어 해석학적 현상학자임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의 철학의 출발점은 인간의 주체이다. 주체는 근대이후 철학의 중심주제이며 주체(이성)을 중심으로 모든 철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리쾨르는 인간의 주체에 대한 해석의 방식을 하이데거처럼 빠른 길을 택하지 않는다. 리쾨르에 의하면 하이데거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해석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직접 인간의 주체를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리쾨르는 이런 직접적인 길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 먼길을 택한다. 먼 길이란 신화나 사상의 표현들을 해석하는 길이다. 그는 신화나 사상적인 글들이 인간주체의 반영임을 전제하고, 이것을 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주체를 해석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주체에 대한 연구가 객관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띠게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주체를 연구의 핵심 대상으로 삼으나 그 방법은 텍스트의 해석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는 현상학자이면서 해석학자인 이유이다. 이로써 그는 하이데거라는 거장과 기존의 해석학을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리쾨르는 인간의 주체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에 대한 철학적 재해석을 통해 인간 주체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정신현상학, 기독교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흐름과 도전을 수용하고 이것들을 배타적인 태도가 아니라 수용적이고 발전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여 인간 주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그는 다양한 철학과 사상을 변증법적으로 조화시켜 인간 주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더욱 온전하게 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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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몰락 1 범우고전선 35
오스발트 슈펭글러 지음, 박광순 옮김 / 범우사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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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t Spengler, 1880-1936))는 독일의 역사학자였다. 그의 주저인 <서구의 몰락>이 1995년에 한글로 번역되었다. 토인비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학자이지만 토인비가 그의 역사학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슈펭글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토인비의 역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슈펭글러의 역사학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명한 토인비의 역사 공리인 '도전과 응전으로서의 역사'는 슈펭글러의 숙명론적 역사학에 대한 반기라는 점을 알아야한다. 이 공리에서처럼 토인비는 철저히 슈펭글러로부터 그의 연구를 이어받았음을 알아야한다. 그러면 슈펭글러의 역사학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일단 그는 그 이전의 역사학계의 전통을 거부했다. 그래서 그는 초기에는 역사학계에서는 이단자로 여겨졌다. 그의 연구 방법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역사학계의 자극으로 역사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박학다식 여러 분야에 대한 엄청난 독서를 통해 역사연구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는 니체와 괴테의 영향을 받았다. 니체 당시에 독일에는 헤겔과 쉘링의 철학이 휩쓸고 있었다. 이에 대해 니체는 철학자의 논리적인 체계가 아무리 엄밀하고 정확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학자의 논리일 따름이다. 헤겔과 쉘링의 철학이 제아무리 논리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은 관념의 산물이지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 자체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닌데 사람들은 그것에 속는다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니체는 철학의 논리 자체보다는 그 논리를 바깥에서 관찰하고 철학의 문제를 문제삼았다. 이렇게 논리 안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 자체를 문제삼는 방법을 슈펭글러가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역사방법을 수용하지 않고 방법을 문제삼아 방법을 새롭게 정리하였다. 괴테는이 세상의 모든 것은 너무나 그 의미가 깊어 직설적인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은유를 통해서 이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받아들여 그는 역사를 모두 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괴테가 세상을 은유로 표현하듯 역사를 Group이론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슈팽글러는 역사를 8개의 단위로 구분하여 연구하였다. 그리고 각 역사의 단위를 수학적인 방법인 'Group이론'으로 연구하였다. 'Group이론'이란 간단히 말하면 역사 내에서 변하는 것(Transformation)과 변하지 않는 것(Invariant)을 각각 찾아내는 이론을 말한다. 한 역사와 다른 역사를 비교하는 것도 자기의 것을 중심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의 변하는 것(Transformation)과 변하지 않는 것(Invariant)을 각각 찾아내어 그것의 완성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슈펭글러는 자기중심적인 역사연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

역사는 하나의 생물처럼 탄생, 성장, 쇠퇴 그리고 종말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이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슈펭글러는 현재의 서구문명도 지금의 문명이 고도로 발전하면 결국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래서 그의 역사연구의 저서명이 <서구의 몰락>(The Decline of the Wes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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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1 홍신사상신서 43
아놀드 조셉 토인비 지음 / 홍신문화사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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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인비는 그를 앞선 역사학적 연구를 딛고 자신의 연구를 수립하였다. 그의 역사학을 한마디로 말하면 '깊이의 역사학(Historiography of Depth)'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역사학은 과거의 역사학자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가하면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일면이 있다. 일맥상통하는 면을 살펴보면, 그는 오스발트 슈팽글러의 역사방법론 중 그룹 이론을 수용한다. 즉 역사를 단위별로 구분하여 연구하는 방법은 수용한다. 물론 슈팽글러가 8개의 역사의 단위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것과는 달리 그는 26개의 역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26개 단위의 역사를 그룹 이론을 통하여 비교 연구한다.

토인비는 앞선 연구자인 슈팽글러의 숙명론적 역사학을 뒤집는다. 슈팽글러는 역사가 생물체와 같은 숙명적인 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하였다.그러나 토인비는 여기에 반대한다. 역사도 그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토인비에 의하면 역사는 어느 시대건 당면한 도전이 있다는 것이다. 원시인들은 원시적인 상황 자체가 일종의 도전이라는 것이다. 이말을 우리 상황에 적용한다면 지금 우리의 상황(한계)이 역사의 도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적인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적인 도전 뿐만아니라 외적인 도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외적의 침입이나 압박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하는 역사는 쇠퇴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예를 든다면 우리가 6. 25 전쟁 이후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한다. 하나는 경제적 빈곤이다. 또 하나는 주변 강대국으로 말미암은 주권의 회복이다. 전자는 성공적으로 응전하여 경제적인 부를 어느 정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국의 주권침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남북의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외적인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지 못한 결과이다.

역사의 발전은 단 한번 도전에 적절히 응전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를들면, 추운지방에 사는 에스키모인은 추위라는 환경적인 도전에 적절히 응전한 결과 추운 지방에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의 새로운 도전이 없었다. 그 결과 더 이상의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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