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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건이다. 분석해 보자.




1. 필체에 대한 분석 


나는 국립과학수사원과 같은 필체 분석을 할 수준에는 전혀 못 미치지만 약간의 논리적 분석은 할 수는 있다. 


우선 '208동' 부분은 누가 봐도 필기체처럼 약간 날린듯 보인다. 

'20'를 연결한 모습과 8은 마치 한붓그리기처럼 썼다. 

동 부분도 약간 필기체와 같이 날림과 한붓그리기처럼 보이고 호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1혹은 /' 부분과 '303'부분은 덜 필기체처럼 보인다. 

그리고 '208'과 '303'를 비교해보면 각각의 0가 약간 다르다. 

앞 부분의 0은 필기체 흐름에 영향을 받은 듯 보이고 뒷 부분은 필기체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은 듯 하여서 

둘을 직접 비교하는 건 약간 무리지만 

두 개의 0은 서로 같은 사람이 썼다고 보기가 힘들 정도로 모양이 조금 다르다. 

그 점을 고려해보면 어떤 상황이든 숫자를 항상 일괄적이게 쓰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특히 '303호'에서의 3을 한 번 보라

두 개의 3은 아랫부분이 서로 조금씩 유사해 보이나 윗부분과 전체적인 크기가 조금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1의 크기가 비정상적이기때문에 저건 1일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에서 나열한 이유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단 한 장의 자료를 가지고 이 사람의 보편적인 필체를 판단하고 

이 사진이 1번과 2번 중에 어디에 더 근접한지 구분하는 일은 약간 비논리적으로 보인다. 

물론 논리와는 별개로 단순히 저 숫자가 우리의 시각적 인지능력을 사용했을 때 

보편적으로 어떻게 보이냐고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결론에는 논리적 타당성은 부족해 보일 수 밖에 없다.




2. 문법을 이용한 분석 


숫자와 /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는 따져보기 너무 쉽다. 

날짜, 분수, 나눗셈을 표현할 때 보편적으로 /를 사용한다. 

문자와 /를 사용하는 경우는 약간 복잡해 보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어는 매우 간단하다. 

한국어는 보편적으로 /를 권장하지 않는 듯하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간혹 보이지만 실생활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본인은 군대에서 암구호를 암구호 판에 쓸 때나 /를 써보았다. (예를 들면: 화랑/담배) 

또 칠판과 계획표에 /를 종종 사용한다. 

문법적인 부분을 조금만 찾아보면 한국어에서는 /보다 가운뎃점을 쓰길 권장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권장하는 가운뎃점도 현실에서는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문법적인 면을 고려해도 모든 사람이 문법에 꼭 맞게 언어를 사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단순히 이 사진이 어떻게 보이냐는 직관적인 질문에는 답이 존재해 보이지만 

논리적인 평가를 통해 누구의 잘못인지 구별하기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3.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기울어진 사진?


이 사진은 원본 사진을 살짝 회전시킨 사진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맨 위 사진보다 이 회전시킨 사진이 원본처럼 보인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필기 된 종이를 원래 상태보다 약간 회전시켜 글을 올린 건 아닌가 싶은 느낌까지 든다. 


하나의 사진만 보고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된 객관적 사실들을 도출할 할 수 있는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래도 누군가 내게 답을 무엇인지 묻는다면 내 생각에는 1번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시각적인 인지능력과 일상에서 문법을 경험한 보편적 지식을 고려해보면 1번을 고르는 편이 가장 편할 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작은 부탁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전부 잊어주길 바란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심지어 이 사진을 여러가지 부분으로 논리적 검토를 하느라 30분 가량을 쏟았다.

그럼에도 부디 잊어주길 바란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쓴 글을 잊어주길 바란다. 

사실 지금까지 쓴 부분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동떨어진 글이었다.


좌뇌 우뇌 사용을 감별하기 위한 회전하는 여성 그림처럼 

이 사진도 어떤 것을 인식할 때 감각적 인지능력을 사용하는지 논리적 분석을 사용하는지와 관련이 있어보일지도 모르지만

(심지어 그 착시 사진에 대한 해석도 코슬린은 자신의 책 상뇌하뇌에서 비판적으로 다룬다.) 

위의 글은 복합적 연속성을 무시하는 전형적인 흑백 논리 구조로 논점을 흐리는 수법이다. 

오컴의 면도날이 아무리 뛰어난 개념이라도 이 논쟁에서 만큼은 아니다.

이 글을 올린 남편분은 타인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여 자신의 무고함과 상대방의 오류를 증명하고자 했고 

심지어 대부분 사람들이 여기에 걸려들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위 문제는 절대, 전혀 저 메모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했던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런 문제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면 한 번 따져보자. 




1. 배달하는 곳, 부인이 써준 메모 

두 개의 단서가 보인다. 그걸 토대로 생각해보자. 


-부부가 함께 자영업 

-부부가 같은 가게에 취업

-남편만 가게에 취업했고 부인은 가끔 와서 도와줌

-부인만 가게에 취업했고 남편은 가끔 와서 도와줌


모든 경우의 일반적인 분포를 고려해볼 때 부부가 운영하는 자영업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또 10만 원을 내기로 걸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계가 힘든 자영업은 아니라는 단서가 될 수 있고 

아파트와 같은 곳으로 배달을 하는 가게라면 수많은 자영업 중에서 음식 관련 자영업일 가능성이 가장 압도적으로 크다. 

종합하자면 부부가 소유한 음식가게에서 함께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나머지는 사실 단서가 별로 없어서 합리적인 추론을 해볼 수밖에 없다. 

한국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그리고 대부분 음식가게에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배달하는 점을 교려해보면 

남성이 배달을 맡는 경우가 가장 보편적이다. 

일반적으로 주문은 부인이 받고 배달은 남편이 한다. 

물론 역할이 반대이거나 혹은 배달을 하는 직원이 따로 있을 수도 있다.

배달 직원이 하필이면 그 날 다른 배달로 바빴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나오지 못해서 

남편이 배달을 대신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의 분포와 균형을 고려해보면 대체로 부인이 주문 남편이 배달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결국 부부가 운영하는 자영업에 주문은 부인이 배달은 남편이 맡으리라 추정하는 편이 가장 타당하다.




2. 얼마나 함께 일했는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서로 얼마나 함께 일했는가? 

앞에서 고려한 가능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지만 서로 얼마나 함께 일했는지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함께 일한 시간이 길수록 서로에 대해서 서로가 일하는 방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위 사진이 제시하는 정보는 거의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 




3. 누가 보편적인 규칙을 깼는가? 

이 점도 중요하다. 

사실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글쓴이는 언어 사용과 인식의 문제를 마치 객관적인 단편으로 사람들이 판단 해주길 원했지만 

사실 저 문제의 핵심은 그러한 단편적인 단면이 아니라 삶의 연속이라는 복합성에 달려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일하는 장소와 역할 그리고 서로 함께 일한 시간은 삶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지표들이다. 

마치 모두가 사과라고 부르기로 약속했기에 우리가 동그랗고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식물을 사과라고 부르듯 

저 메모가 1303호인지 303호인지는 그 메모를 해왔던 부인분께서 어떠한 언어를 꾸준히 사용해 왔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남편분께서는 "눈이 있으면 좀 봐라 이게 어떻게 1303(혹은 303)으로 보이냐?"라고 당당하게 말했겠지만 

핵심은 부인분이 항상 저렇게 언어를 사용해 왔는지 아닌지가 이 문제의 핵심인 셈이다. 

그렇기에 내가 앞에서 저러한 핵심 사항들 하나하나의 가능성을 따져본 것이다. 

만약 서로가 익숙해질 만큼 정해진 역할과 노동시간을 함께 보낸 상황이라면

누구의 잘못인지 판단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항상 /를 사용하지 않다가 그 날 하루만 딱 /를 사용했다면 부인 잘못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평소에 /를 사용한 적이 없는데 그걸 /로 해석했다면 잘못 해석한 남편의 잘못에 무게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결국 저 글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한 질문은 다른 사람이 저 메모를 어떻게 인식하고 보느냐가 아니었어야 한다.

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내가 고려한 부분들에 대해서 소상히 서술했어야만 했다.

누가 평상시에 불규칙적으로 메모를 해왔고

얼마나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 알아왔으며

일상생활에서의 장면들을 얼마나 시각적으로 잘 인지하고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위 글에서는 내가 언급한 그 어떤 부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저 질문을 통해 누구의 잘못인지 가려내려는 시도는 전혀 타당하지 못한 글이다.

사실 저 부분이 가장 서글프고 슬프다.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혹은 얼마나 많은 인간관계에서 저런식으로 단편적으로 잘잘못을 따져왔을까?

여태까지 우리들은 정말 타당하면서 논리적이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을까?

내가 늘 복합성과 섬세함을 추구하는 건 별다른 이유가 없다.

우리가 그러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부부가 이후에 어찌 해결하고 합의를 보았는지 알 수 없지만 부디 현명하게 해결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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