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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어 그리고 내가 사랑한 거짓말들
케이트 보울러 지음, 이지혜 옮김 / 포이에마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죽어가고 있는데 다 이유가 있다고요?”
이번 미션 책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어≫는 탄탄대로를 걷던 번영 신학 연구자(&신봉자) 케이트 보울러가 갑작스레 4기 암 진단을 받고 느낀 괴리감과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분투를 담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프라윈프리가 추천한 ≪시크릿 The Secret≫ 열풍이 불었다. 그 책에도 담긴 번영 신학은 정말 솔깃하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생하게’ 믿기만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도 달콤하지 않은가.
번영 신학은 있는 그대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한 가지 해법을 약속한다. 믿기만 하면 언제나 방법이 있다고 보장하는 것이다. 내가 번영 신학에서 찾아낸 것들이 너무나 낯설고 끔찍해서 그것이 번영 신학을 멀리하라는 경고처럼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친숙하면서도 매우 달콤했다. 그것은 내가 내 인생을 관장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성공에 우뚝 설 수 있다는 약속이었다. 나는 그 신념의 터무니없는 확신을 의심했던 만큼 그것들을 갈망하게 되었다. p10
이제 더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p11
번영 신학이 계속해서 확장하는 이유는 삶의 고통과 우리가 품은 회복에 대한 갈망을 철저히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쇠약한 육체나 어긋난 관계, 자신의 삶이 절대 온전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스러운 가능성에 발목 잡힌 사람들은 ‘굳은 결심만 있다면 고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메시지에 귀 기울이게 된다. p15
≪시크릿≫의 비밀이 ‘긍정적 생각’이듯이, 영적 법칙들은 불공평이라는 문제에 고상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 세상의 혼돈이 단순한 인과로 축소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뉴턴 우주를 창조한다. p42
저자가 암에 투병했을 때 만나는 이들마다 대부분, 신께서 그를 위해 세운 계획과 그 이유가 있다고 믿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작 그 이유가 뭔지 물었을 때는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다.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성장한다. 하지만 번영 신학이 요구하는 ‘긍정적 생각’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화가 났다. 나는 괜찮지 않은데, 지금 겪는 고통에는 이유가 있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마치 구세주가 뿅!하고 나타날 것인 양, 모든 게 해결될꺼라고? 번영 신학에서는 부정적 언사를 너무도 철저히 금지하기에, 반성하기 위해서 상황을 냉철히 판단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렇게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버티는 것은 자기기만이며 가학에 가깝다. 오히려 겟세마네에서 올린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고통의)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기도에서는 솔직함이 느껴진다. 번영 신학에서는 그 뒤에 이어지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며 처참히 ‘맡기는’ 구절을 뒤틀어서 극도로 편리하게 해석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은 순전한 내 상상이다.
저자는 이제 암이 줄어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동시에 더 악화되지 않는 상태에 감사한다. 면역요법으로 삶이 두 달씩 연장될 때마다 순간들에 더 집중한다. 그는 ‘더 이상 죽어가지 않는다’라는 진실을 깨달으며 죽기 일보 직전인 상태에서도 밤을 지새운다. 계획은 더 이상 그가 행동하는 토대가 아니며 단지 그의 꿈과 행동과 바람이 아들과 남편을 위해 흔적을 남길 수 있기를, 그래서 자신의 길이 어디로 이어지든지 간에 그들이 찾는 것은 다 사랑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더 이상 그가 하는 일이 ‘신께서 그를 위해 계획한 중요한 일’인 줄은 모르지만,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므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책의 반어적인 제목은 마치 현실과는 맞지 않는 믿음 때문에 분투하던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에 애정을 보내는 듯했다.
저마다 고통의 형태가 다르고, 오늘이 ‘그 날’이 아닐 뿐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이므로 저자가 심신으로 분투하는 모습을 우리의 삶에도 비춰 볼 수 있지 않을까.
삶이 힘들 때는 건전한 신앙에 의지할 수 있고 필요할 때 의술이 삶의 질을 높이거나 생명을 연장시켜주지만 이 책은 진정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오늘’은 보상이 아닌 특권이라는 말에 한 층 더 공감하게 되었다. 저자는 글쓰기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해준 사람들, 즉 가족과 친구들 덕분에 살아있다고 믿는다. 우리도 그 근원적 힘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면서 매일을 특권처럼 살아가면 행복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