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극단주의의 실체
김태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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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김태형 지음 / 을유문화사


최근 들어 극단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이나 집단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깝게 한국 안의 여성(혹은 남성) 혐오 집단에서부터 멀게는 서양의 뿌리깊은 이슬람 혐오까지.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나서 기존 심리학에 대한 회의로 학계를 떠난 뒤 현재는 '심리연구소 함께'라는 장소를 운영중인, 소위 '재야고수'류의 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극단주의의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배타성, 혐오, 광신, 강요가 그것이다. 네 가지 요소가 모두 합쳐졌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병리적이라고 일컫는 극단주의라는 개념이 성립하게 된다. 그는 기존의 심리학 이론들을 종합하며 이 네 가지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다. 배타성이란 사람들이 외집단과 내집단을 구분하고, 외집단을 배척하려고 할 때 나타난다. 이처럼 외집단을 배척하려는 동기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는데, 이 두려움이 혐오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사람들은 혐오를 표현할 확률이 높다. 광신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합리성이 결여된 신념이나 믿음을 말한다. 저자는 나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직면할 때에야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부정이 결국 광신을 야기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처럼 배타성과 광신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 혼자만 그러한 믿음에 빠져 있다면 극단주의라고 보기 힘들다. 저자는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과정이 관여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여기까지 보면 이 책이 단순히 기존의 심리학 이론을 먹기 좋게 요약해 놓은 책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의 진짜 목적은 현대의 주류 심리학계가 극단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주류 심리학을 인지주의(혹은 인지-행동주의) 심리학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인지주의 심리학이란 "인간을 본질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로 간주하는 ... 즉 인간을 '지적 능력이 있는 동물', '머리에 컴퓨터가 달려 있는 동물'로 바라보는 인간관"(85p)이다. 인지주의 심리학은 집단 극단화라는 이론으로 극단주의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이론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보자면, "사람은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90p)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신념이나 감정, 성향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인지주의적 관점에 걸맞게) 정보의 편중화가 극단화를 더욱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편향적인 정보를 주고 받는 행위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줌으로써 기존의 성향을 더욱 강화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 따르면 극단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사람이 보다 많은 접촉을 할 수 있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집단 극단화 이론은 여러 가지 난점을 가진다. 첫째는 그것이 극단이라는 개념을 질적이 아닌 양적인 차원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들끼리 모이면 나쁜 신념이 확산되는 만큼, 좋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좋은 신념이 확산될 확률도 그만큼 크기 때문에 단순히 양적 확산을 가지고만 설명하는 것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지주의 심리학이 지나치게 정보의 편중화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정보라는 것은 실제로 기존의 감정과 신념 등에 영향을 받아 구성되고, 어떤 경우에는 감정이 정보의 가치를 결정하기도 하는데, 집단 극단화 이론은 이러한 감정적인 차원의 역할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접촉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반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름을 지나치게 강조한 다문화 교육의 실패 사례, 정당의 다양화 또는 이분화가 오히려 사회 분열과 정쟁을 야기함으로써 통합을 방해하는 등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오히려 사회에 필요한 것은 통합과 "공유된 목표"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책은 이렇게 전반부를 지나가면서 비로소 저자가 진정 하고싶은 주장을 향해 간다. 저자는 왜 이런 심리학의 조류가 발달하게 됐다고 생각할까? 그는 심리학이 기본적으로 민중 혐오를 촉발시킨 기폭제로 역할했다고 하면서 나름의 계보학적 분석에 따라 이를 논증하고자 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서구 사회는 지배층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피지배층을 광신적인 집단으로 규정해야만 했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집단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발달하게 된다. 멀리는 독일 농민 전쟁과 프랑스 혁명, 노예 해방운동과 여성 해방운동에서부터 가깝게는 반이슬람주의에 이르기까지, 지배층은 언제나 피지배층을 예속화하고, 분열시킴과 동시에 그들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인간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저자는 심리학의 발달이 인간의 주체성을 폄하한 역사들로 점철돼 있다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은 인간을 본능과 욕동의 노예로, 따라서 초자아라는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무력한 인간 존재로 바라본다. 이는 정신분석학을 극복하고자 했던 인지심리학도 마찬가지다. 그는 밀그램의 복종 실험과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을 언급하면서, 이 모든 이론이 권력과 시스템 앞에서 무력하고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관을 양상한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관은 필시 민중의 예속화를 정당화하고, 민중으로 하여금 그런 것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하게 만든다.


사실 책의 전반부는 내용을 쉽게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그렇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책은 점차 자의적이고 다소 지엽적인 분위기를 띤다. 자연스럽게 이론적인 엄밀성이 떨어지게 되고,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흐르게 되는데, 이것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에 이르면서 극에 달한다. 그래, 극단주의가 뭔지 알겠고 그것의 배후에서 누가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지 나는 알겠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자녀에 대한 학대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국가 차원의 공동체를 재구성함으로써 다양한 집단 간에 피상적인 아닌 의미 있는 관계와 연결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지면이 많이 할애되지 않아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해결책이랄 것이 결국 문제제기를 또다시 번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앞서 '재야고수'라는 단어를 언급했는데, 이게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선생님이 자신만의 언어로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변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나열되고, 말하는 사람의 주장에 강세가 놓인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의 강의라는 게 그런 것처럼, 과장이 섞여 있으며 학문적 엄밀성은 다소 부족해보인다. 가령 정신분석학이 인간을 단순히 동물적인 존재로 보았다거나 심리학이 정보의 개념에만 편중한다고 말하는 부분은 좀 걸러서 읽을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심리학 특유의 개념주의적이고 인지주의적인 관점(심리학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가령 유럽의 철학적 전통의 사유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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