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
안병길 지음 / 동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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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치학에 문외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때로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으로 외쳐대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가져왔다. 그 정확한 개념에 대해 솔직히 나 자신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아내에게, 우리나라에서 그 개념이 정립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쓰이는 건 대학 입시에 안 나와서 그럴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는 ‘자유민주주의란 바로 이것이요’하고 처음부터 답을 던지지 않는다. 마치 데카르트가 모든 것에 회의하고 백지상태에서 ‘나’를 정의해 나가듯, 필자는 자유의 개념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하지만 매우 설득력 있게 정의해나간다. 이런 신중한 접근을 통해 온갖 엉터리 자유민주주의로부터 진정의 의미를 구분해낸다. 엉터리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에서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 또한 다양하다.

   일단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을 온갖 엉터리 개념들로부터 구하고 난 필자는 정치사상에서 헌법,  게임 이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현실 속에서 그 이상을 잘 실현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촛불 시위와 같은 구체적인 사회 현상에 대한 시론과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방안에 대한 제언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 관련 부분은 필자의 오랜 경험이 잘 묻어나는 재밌는 내용이다. 단순히 예의를 지키자거나 무식하게 법으로 규제하자는 내용이 아니라, 자유주의에 입각하면서 적절한 전략을 통해 회원 스스로 악화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필자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일관된 논지를 여러 가지 일상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한편, 투표 제도와 남북한 문제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제언도 덧붙이고 있다. 선거에서 단순 과반수원칙을 지키기 위해 결선 투표제를 제안하고 실제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또한,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선거 제도 개선 방안을 비교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한다.  남북한 관계에 대한 분석과 평가 역시 관련 사안에 대한 필자의 전문적인 식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족으로 한때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걸고 진정한 자유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적이 있는데, 정치학을 공부하던 한 선배는, ‘그들이 자유주의에 대해 뭘 알기나 알아? 도대체 밀의 자유론도 제대로 한번 읽어보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무슨 자유주의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의 우려대로 그 단체의 핵심 구성원들은 국회에 입성하면서, 운동권 내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권력지향적임이 드러났고, 개인의 자유는 고사하고 온갖 권위주의적인 입법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그들이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앞부분만 일독했다면 부끄러운 마음에라도 자유주의를 전면에 내걸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르며 남의 자유를 심각하게 해치는 권위주의자들이 이 책을 통해 뭔가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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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길 2010-04-05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필자 안병길입니다.
좋은 서평을 올려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졸고가 자유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저도 기쁩니다.
항상 건승하시길 빕니다.
 
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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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과 마리아 부부는 북미에서 보기 드물게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생활한다. 그들이 차 구매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걸어서 출퇴근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생기는 유혹의 고통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십수 년 간 경제학 교육을 받고,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최고 저널에 이론 경제학 논문을 출판하는 이들 부부에게서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어긋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비단 이들 부부의 예가 아니더라도, 경제학을 접한 사람이라면 '합리적 경제 주체'의 가정에 대한 의문을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필자 역시 '나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 같은데' 혹은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 전 출간된 이준구 교수의 '36.5℃ 인간의 경제학'은 이런 의문에 답하고자 노력하는 '행태 경제학'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적절한 예를 통해 행태 경제학의 결과물을 제시함으로써, 자칫 지루하거나 어려운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신생 학문의 소개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또한, 실제 행태 경제학의 실험에서 가져온 질문을 독자에게도 던져 어떤 맥락에서 독자나 일반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지 생생하게 전해준다. 아울러 기존 행태 경제학 방법론이 실험에 기초한 사례 연구 중심이다 보니 다양한 결과물이 산만하게 존재하는 편인데,  '36.5℃ 인간의 경제학'은 주먹구구식 의사 결정에서부터, 의사결정 과정의 다양한 심리적 효과, 서약(commitment)의 필요성과 근시안적인 판단, 기존 경제학 이론에 배치되는 할인율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을 매우 통일감 있게 잘 구성해 놓았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잘 조직된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날줄과 씨줄을 엮기 위해 저자가 들였을 시간과 노력이 상당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 나같이 게으른 독자도 아주 작은 노력으로 유익한 내용을 단숨에 습득할 수 있었다. 아울러 책 말미에 첨부된 참고문헌 각주는, 개별 실험 사례와 그 결과를 연구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 같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행태 경제학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을 보이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차원에서, 기존 경제학과 행태 경제학이 잘 어우러진 한 가지 예를 제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서두에 예로 들었던 서약(commitment)의 필요성에 대한 행태 경제학의 발견은, 굴(Gul)과 페센돌퍼(Pesendorfer)가 Econometrica에 출간한 논문 "유혹과 자기 통제 (Temptation and Self-Control)"에서 매우 정치한 수학적 모델로 발전된다. 이 논문에 제시된 특이한 효용함수 형태는, 크러셀(Krusell), 쿠르스쿠(Kuruscu), 스미스(Smith)의 "유혹와 징세(Temptation and Taxation)" 라는 논문에서 거시 모델에 적용됨으로써 행태 경제학이 경제학의 기존 방법론에 접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사례는 기존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성이 옳지 않으니 그동안 쌓아놓은 모든 논의가 틀렸다거나, 행태 경제학은 일반적 이론으로 발전되기 힘든 개별 관찰에 불과할 뿐이라며 서로를 폄하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학문 발전의 양상이라 여겨진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난 수십 년간 주류 경제 이론을 연구해온 저자의 행태 경제학 입문서가 더욱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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