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맛있어서 잠 못 드는 화학책 잠 못 드는 시리즈
라파엘 오몽 & 티에리 막스 지음, 홍은주 옮김, 안승현 감수 / 생각의길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일단 책에 소개되는 음식 개를 나열하자면 이렇습니다. 퀘백 푸딩, 아이스크림, 캐러멜, 머랭, 초콜릿 무스, 줄기콩, 마카롱, 수제 생치즈, 바닐라 막대 사탕. 이것 말고도 많지만 추려서 적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책은 차라리 과학을 빙자한 디저트 주전부리 조리서였던 겁니다. 초등학교 과학잡지에서 처음 봤던분자요리라는 개념을 확대하고 전문적으로 정리 요약한 느낌 입니다. 그런데 대상이 마카롱, 퀘백 푸딩 입니다. 정말 달달하이 먹고 보기는 힘듭니다.


같은 경우는, 기숙사라 직접 시도를 해보지는 못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자기 전에 침대에 엎드려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하나씩 읽어가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그도 그럴 것이 책의 문체 자체가, 눈은 과학적인 단어들, 이를테면 중탄산나트륨, 계면활성 이런 단어들을 읽고 있는데, 머리 속으로는 슈크림이 맛있게 익어가는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겁니다. 밀도가 높아진 시럽이 가라 앉으면서, 밀가루 반죽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구요. 정말 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소한 상식들도 정말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건데, 저지방 우유를 보면 그냥 우유랑 오묘하게 색이 다르잖아요? 뭔가 맑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유가 지방이 없는 우유에는 카세인 분자가 주를 이루게 되는데, 걔는 파란 파장을 반사한다고 해요. 그래서 저지방 우유는 빛깔이 다르게 보이는 거라고 합니다. 

하나 하자면 식이섬유 많이 들어가 있는 채소를 다이어트 용으로 많이 먹잖아요? 그런데 식이섬유 자체는 고농축 탄수화물이라고 합니다. 충격. 그런데 살이 찌냐. 식이섬유는 셀룰로오스라는 친구로 짜여져 있는데, 우리 몸에는 셀룰로오스 분해효소가 없답니다. 그래서 식이섬유는 분해되지 않은 , 우리 몸을 프리패스 하게 되는 거죠.


심지어 , 끝내는 말조차 없습니다. 요리서나 백과사전이 그렇듯이요. 그렇네요. 책은 요리서이자 백과사전 같은 입니다. 배가 고파져서 라면을 먹어야겠습니다. 라면은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 찾아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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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의 두 얼굴
앨리슨 셰이퍼 지음, 윤승희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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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첫 챕터에 내가 되는 법을 제시한다. 내가 되는 법.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일단은 지금 네가 정말 행복한지 먼저 짚고 넘어가자고,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 그 하루하루는 정말 자신에게 어떤 감정과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 마치 유체이탈을 하듯이 한 번 훑어보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그렇게 거품처럼 솟아있던 자신에 대한 왜곡을 깨뜨려 버린다. 자신에 대한 확실한 이해. 이것이 전제하는 것은 곧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모든 이미지보다, 자기가 느끼고 반응하는 것에 중점을 두자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 책의 신선한 점 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 후로,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다. 여기서도 기존에 세워졌던 아이의 행동에 대한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는데, 너무 감성적이거나 냉소적이지 않게, 다만 아이들의 행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에 대해서 기술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독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의문을 품게 한다. 아이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혹시 이런 무의식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였는가 하고 말이다. 아이의 속사정은 그 다음이다.

이제, 내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계속 아이의 요구에만 끌려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나는 부모니까. 단, 주의할 점! 이 책은,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과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떼쓰면 혼내는 건 쉽다. 그러나 그 방법은 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 대책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바로 ‘권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말이다.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들을, 본능적인 아이들의 권력쟁취를 위한 투쟁으로 보고, 엄마가 그 힘겨루기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때론 단호하게, 때론 그 힘겨루기에서 손을 떼기도 하면서, 아이를 굳이 이기지 않고도, 아이가 스스로 못된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지 기술한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탐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지 제시한다. 놀이와 교육이라는 수단을 제시하는데, 그 적정선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보다,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책임질 수 있고, 또 어느 정도까지만 간섭해야 하는지, 아이의 능력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제시해 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아이와 자신간의 경계를 다시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굳이 지금 부모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많은 힌트를 주고 있으니, 혹시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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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대하여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김수진 옮김 / 문학테라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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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튀르는 무엇을 사랑했으며, 쟈닌과 테레즈는 무엇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책은 묻는다. 진짜 사랑, 그리고 진짜 삶에 대한 물음. 비극은 스스로 내포하고 있는 비극성을 무기로, 도저히 없는 삶의 아이러니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다.


아르튀르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였나?

흔히들 안에는 영혼이 있다고 말한다. 영혼. 영혼은 순수한 자기로써 어떤 것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육체 안에 갇혀있으면서 영혼은 끊임없이 샘솟는 욕망과 결핍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영혼은 본질적인 것이 되고, 육체는 이를테면 비본질적인 것이 된다.

그렇다면, 절정의 순간에, 육체 속에 가려져 있는 쟈닌이 아닌, 스칼렛을 외쳐버린 아르튀르는 진짜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테레즈는 진짜 삶을 것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지나가는 현재를 지나보내며 산다. 현재라는 시간동안 나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무너지며, 이렇듯 생동하는 현재가 끊어지는 순간, 우리는 삶이 끝났다고 말한다. 현재는 삶의 본질이고, 지나간 순간들은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느와이야의 죽음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로 현재의 삶을 채워나갔던 테레즈는 가짜 삶을 것이다.


쟈닌은 진짜 자기를 적이 있었나?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관계 속에서 서로의 정체성이 규정된다. 그렇기에 속에서도 우리는 타인의 부족한 조각이라고 것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진짜 자기가 된다.

그렇다면, 쟈닌은 아르튀르와의 관계에서마저도 진짜 자기를 살지 못한게 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아르튀르는 결국 쟈닌 혹은 스칼렛이 찍은 영화들을 보며, 거기서 쟈닌 혹은 스칼렛을 발견한다. 테레즈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느와이야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던 개들 혹은 공포가 만들어 허상을 잠시 잊는다. 쟈닌은 아르튀르와 함께 하면서, 아르튀르의 표면적 사랑 혹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것을 느꼈다. 적어도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느꼈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순간, 본질이 스스로를 드러냈던 것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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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표현의 기술> 출간 기념 토크쇼"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있는, 갓 스무살된 따끈따끈한 대학생 입니다.

저는 앞에 계시는 세 분의 작가님들처럼, 제 내면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뜨겁게 논의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저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살아가면서 가감없이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직 한국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표현의 기술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작가님들이 내면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시는 과정에서, 그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스스로 억누르신 적이 있으셨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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