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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1 - 유럽의 등불이 꺼지다 ㅣ 궁극의 전쟁사
곽작가 지음, 김수박 그림 / 레드리버 / 2023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 1차대전은 우리에게 있어 지옥같은 참호전과 사라예보 사건, 솜 전투, 베르됭 전투, 배틀필드1 같은 몇몇 요소를 제외하면 라이트한 밀리터리 매니아들이나 일반인들에게는 2차대전 만큼의 매력이 끌리지 않는 요소이다. 하지만 지금의 신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1차대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역사적인 예시로 본다면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바바라 터크먼이 쓴 "8월의 포성"을 읽으면서 그 역시 알려지지 않은 초강경 매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최악으로 가는 걸 막기위해 최대한 노력했고 전세계를 핵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게 한 큰 공로를 세웠다. 지금에 와서도 몇몇 정치 분석가들과 사학가들은 1차대전의 교훈이 현재에도 유효함을 주장하면서 계속해서 1차대전을 연구하고 있다.
책의 시작은 1917년 11월 캉브레 전투에서 시작된다. 캉브레 전투를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이제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근대적인 전투의 종말과 더불어 제대로된 현대전이 시작됨을 알린다. 바로 그 다음에는 1914년 발칸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되면서(이번에 꺼무 보면서 놀란 사실인데 황태자 루돌프의 자살 이후로 공식적으로 황태자 자리가 공석이었고,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서열 상으로 계승 1순위에 불과했다.) 1차대전의 발단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본격적인 전투가 나오기 까지 꽤 많은 페이지를 거쳐야 한다. 아직까지는 왜 서로가 전투할 수 밖에 없는 가를 여러 사건을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배로 고조시키고 있다. 투키티데스의 함정 마냥 세계 1위 국가 영국에 도전하는 독일 제국과 그런 독일제국에 이를 갈면서(당근 빠따로 1871년 보불 전쟁이 원인임) 러시아와 영국과 동맹을 맺으며 칼을 가는 프랑스, 일본에게 뼈 아픈 일격을 맞고 점점 안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곪아가는 러시아 제국,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도전자 독일 제국에게 자신의 우위를 넘기지 않을려고 하는 대제국 대영제국과 어떻게든 자신의 세력과 이권을 넓힐려는 이탈리아등 다양한 열강들이 업보의 굴레에 제대로 씌워진 거 마냥 서로에 대한 악감정과 경계, 공포와 두려움으로 끝없는 군비경쟁과 세력 확장을 이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군비의 확장과 제국주의의 광기가 확산 하는데 단순히 정치가들이 주도한 것이 아님은 이 책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는 벨 에포크를 만끽하는 시민들의 모습의 뒷면에 제국주의와 복수가 생각의 기저에 기초한 국민(인민이란 표현을 쓰기에는 철저하게 국가의 일부분이 되어 있다.)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예시로 책 중간에 나오는 "국가를 소유한 군대(=프로이센)"라는 말이 그 시대의 광기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본다. 심지어 독일의 사민당의 경우 책에 나온 당수(아우구스트 베벨)도 우리 사민당원들은 나를 쏘라고 명령이 내린다면 얼마든지 쏠 수 있을 것이란 반응과 "7월의 광기"로 대표되는 프랑스에서 벌여진 반전론자에 대한 린치(대표적으로 장 조레스)는 확장과 정복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함을 준다.
이제 다시 책으로 넘어가서 전쟁은 결국 시작되고 말았다. 영국의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책 표지의 '유럽의 등불이 꺼지다'란 말을 한 사람)는 최후까지 전쟁을 막을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오헝제국과 독일제국의 무반응(=고틀리프, 베르히톨트)과 독일이 먼저 반응 해야 가능하다는 러시아 제국의 반응(=사조노프)으로 끝끝내 무산되고 전쟁은 수많은 국민들의 환호 속에 시작되고 만다.
전투로 넘어가면 주요 전투에 대한 내용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전쟁의 첫 시작인 리에주 전투, 국경전투, 탄넨베르크 전투, 마른전투 순으로 1914년에 벌어진 주요 전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전투 당시 지도에 각군의 위치 및 기동을 표시하여 이해도를 넓힌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림체는 아동 만화 처럼 가볍게 데포르메 된 형태(그렇다고 고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전쟁 당시 각 나라 군대의 군복은 딱 알아보기 쉽게 잘 표시하고 그렸다.)로 그렸지만, 그림에서 보여주는 살육은 단순한 선과 색의 표현이라 해도 참혹함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국경 전투 당시에 산처럼 쌓인 프랑스군의 시체 그림은 전쟁의 잔혹함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제 정물화 수준은 아니지만 전쟁 당시 주요 정치인이나 군인, 국가원수의 초상화는 보고 누군지 알 정도로 잘 묘사했다.
그리고 각 챕터 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빌헬름 2세 등 대전을 주도했거나 혹은 각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의 사진과 그 옆 챕터 시작 시에 챕터에 어울리는 그때의 인물이나 무기(ex 빅 베르타)의 그림은 세세하게 잘 그려서 또하나의 재미를 준다. 또한 나는 1913년 세기의 여름이란 제목의 소설을 몰랐는데, 이 소설을 통한 스탈린과 히틀러가 만났다면(?) 이란 드립을 통해 빈이란 도시의 국제적인 면도 잘 표현해서 좋았다. 작가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 책을 참고하고 공부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군데군데 작가가 달은 주석을 통해 해당 인물, 그리고 사건에 대한 짤막한 정보를 참고로 넣어서 좋았다.(나는 이걸로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사냥광임을 알게되었다. 짧은 생애에 27만점이란 표본을 가질줄....)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물론 사라예보 사건 이외에도 당시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당대 열강이 어떻게 전쟁에 대한 열망이 뜨거웠는지에 대한 설명은 잘 되어있지만, 또하나의 당사국인 세르비아의 전쟁 전 광기(알렉산다르 1세 암살)나 혹은 1차 대전의 예고편인 발칸전쟁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쉬웠다. 물론 그걸 넣었다면 분량은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 두께로 이야기할 것이 많으니 아쉬움을 접어야 겠다. 또한 탄넨베르크 전투 파트에서 참모장 호프만이 당시 러시아군 장군인 삼소노프와 렌넨캄프가 서로 싸웠다고 하는데 나는 이 이야기가 신빙성 낮은 이야기로 알고 있어서 이런 루머를 넣어도 될까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완전히 무시할 내용은 아니라는 것과 작가도 이를 인지해서 인지 가볍게 이런 루머가 있었다는 식으로 넘어가서 일정 편으로 넘어가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잘 중립을 유지했다.
1차대전 자료 하면은 존 키건이나, A.J.P 테일러, 피터 심킨스가 쓴 두껍고 딱딱한 1차 대전 역사서 밖에 없는데, 라이트한 역사 유저를 위한 정말 좋은 책이 이번에 나와서 추천한다. 또한 군데군데 작품을 읽으면 작가가 쓴 유머나 알게 쉽게 풀어낸 설명을 통해 해당 전투나 작계(슐리펜 계획을 가상의 대화를 통해 잘 표현했다.)를 초심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한 것도 좋았다. 이런 퀄리티면 2권, 또는 3권도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