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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의 정석 - 승리를 위한 전투력 운용의 원리
B. A. 프리드먼 지음, 진중근 외 옮김 / 길찾기 / 2023년 9월
평점 :
7~8년 전 나는 경기도 OO군의 어느 산속을 헤메고 있었다.
RCT 훈련으로 파견나온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암흑 속을 헤매며 진군하고 있었다. 어느 연대 모 중대로 파견나온 나는 굴러들어온 군식구와 유사한 취급을 받은 걸로 기억한다. 하루종일 밤을 새며 뻘뻘 돌아다녔던 그날 나는 내가 어떤 결과를 냈으며, 내가 어떻게 기동했는지. 왜 이렇게 작전을 냈는가의 의문만을 남기고 전역을 했다. 물론 나는 파견 나온 간부에 불과하여 타부대의 계획이 어떤가에 대해 세세히 알아보는게 오히려 그 부대에 민폐일 수 있지만 지휘관과 더 심도깊은 이야기를 그때 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든다.
전술의 정석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이 19세기 클라우제비츠의 역작 "전쟁론"에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 생각했다. 실제로도 "전쟁론"에 대한 여러 글귀에 책에 쓰여져 있고 그리고 "전쟁론", 그리고 클라우제비츠의 의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곳곳에서 드러나 있으나 말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은 단순하게 "전쟁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싸우는가를 넘어 왜 싸우는가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책이기도 하다.
서두에서는 작가 본인이 이렇다 확언하지 않았지만, 전술을 예술(術, art)로 전술가를 artist라고 언급하며, 이것이 이론화되고 성문화되기가 어려움을 토로한다. 결국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전술이란 영역에서 다양한 전술적 요소들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준칙(tenet)들이 전장 환경에 맞춰진 상태에서 전술가의 경험과 전쟁사의 기록이 전장의 승패를 가려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동, 수적우세, 화력, 기만 등등, 승리를 향한 여러 전술들과 그것에 맞는 다양한 전쟁사의 기록들이 예시로 남았지만 가장 내 인상에 남던 내용은 도의적 단결력이며, 이것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 중 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이 왜 싸우는가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책이라고 언급했다. 장(章) 시작에서 저자는 비엔비엔푸의 승장이자 베트남전쟁의 주역이던 보응우예잡 장군이 했던 말을 올려 놓았다.
"전쟁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바로 인간과 무기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인간이다. 인간! 인간이다!"
역사상 가장 강대국이던 페르시아와 남북조 시대의 전진, 아프간전쟁 당시의 소련과 베트남전 당시의 미군 등등 왜 싸우는 지의 중요성이 결여된 채로 싸웠던 군대들은 자기보다 하찮게 봤던 군대에게 허무하리 만큼 무너졌다. 싸우는 이유가 없는 군대는 결국 무너지며, 무너질 때는 싸울때보다 몇배의 인명피해가 난 채로 끔찍한 최후가 눈 앞에 기다리게 된다. 그렇기에 22년 미국이 엄청난 거금을 투입하며 만든 아프간군도 미군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탈레반군에 무너지며, 23년 자신들도 왜 가는지 몰랐던 우크라이나 전쟁의 러시아군도 우크라이나군의 재블린 타겟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무인기와 드론, 각종 원격조종 전략 무기들이 등장하는 시대에서도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매 챕터 마다 언급된 명장들의 어록을 읽을 때마다 나는 저자가 책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로 뽑은 요소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게 저자가 마찰(이 말은 클라우제비츠가 처음 사용했다.)이란 용어를 통해서 아군 뿐만 아니라 적군도 전쟁에 따른 스트레스와 압박감, 그리고 조직문화로 인한 경직성을 충분히 받고 있음으로 적이 자군 내에 이러한 요소에 온 정신을 투여하도록 만들어 적의 엔트로피(에너지의 양)를 가중시켜야 한다는 부분을 언급한 것에서 나는 조지 패튼의 "나라를 위해 죽지마라, 적이 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라는 말을 뛰어넘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정신적인 것만 언급한 것도 아닌, 물질의 중요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협상국의 무지막지한 폭탄에 그 무적의 독일제국군도 쉘쇼크를 받아 이런 저런 혼란이 일어나고, 케산 기지 전투 당시 아크라이트 작전으로 대표되던 미국의 막대한 폭격 세례 앞에 정신무장이 잘된 월맹군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을 못하다 결국 폭격에 산화되는, 물질을 등한시한채 가미카제와 반자이로 대표되는 일본제국군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작가는 정신적인 면에 대해 강조도 하지만 그런 정신도 물질의 힘 앞에서는 덧 없는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이렇듯 어느 하나를 강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완벽한 파훼법을 보여주어 읽는 사람에게 정신만이 중요한 게 아니야, 물질만이 중요한게 아니야 임을 상기 시켜 준다.
마지막에 언급되는 CoG(역자는 중심重心/中心이란 표현이 너무 중의적이라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중심이란 표현도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는 이 글 주제의 전체 적인 중심인 왜 싸우는 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CoG를 설명하면서 여러 예시등을 언급하며 CoG의 다양한 방향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CoG는 일종의 블랙홀이라 읽는 나는 생각한다. 만약 어떤 한 목표에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군사적이든 어떤 하나의 CoG가 생기면 국가와 군대의 막대한 역량이 그곳에 집중된다. 그 집중이 성공하면 전쟁에서 유리한 점을 차지하겠지만, 만약 집중한 CoG가 헛된 것이 되어버리거나 혹은 그 자체 부터가 무의미한 것임이 밝혀지면 목표는 흔들리고 결국 전쟁에서 전술적으로는 모르지만 결국 전략의 측면에서는 패배함을 암시한다.
결국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일시적 군사적인 성공이나 애매한 목표 달성은 전쟁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CoG와 도의적 단결성을 보듯이 목표가 애매하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에 임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수단을 쓰더라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으며, 작가의 글귀에서 보듯이 그렇게 된다면 전투는 그저 인간을 학살하는 행위에 불과할 따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