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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잎사귀처럼 - <사이보그 선언문>의 저자 다나 J. 해러웨이의 지적 탐험, 다알로고스총서 2
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다나 J.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 갈무리 / 2005년 4월
평점 :
이 대담집은 페미니스트 과학자 다나 J.해러웨이가 생물학, 철학, 문학 등을 전공하고 이를 결합시킴으로써 동시대에 가장 독특한 이론을 만들어나가게 된 사유의 궤적이다.
먼저 해러웨이는 면역체계에 대해 이를 전쟁터로 묘사하는 냉전 수사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면역체계를 침입자 담론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자기-인식(self-recognition) 장치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실제로 감염이 되기 위해서는 공격을 당하는 세포들이 증진되는 박테리아들을 실제로 도와주어야 하는, 즉 몸이 아프기 위해서는 한 개의 박테리아와 "친근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을 이를 '실수'라 여길 뿐이지만 해러웨이는 이를 통해, 타자(박테리아)와 나(체세포)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면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질병은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라고 정의한다.(p.129)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사유는 다음과 같은 인식론으로 확장된다.
나는 모든 시각의 체현적 성질을 주장한다. 무소(no/where)로부터 바라보는 정복적인 시선으로의 도약을 의미화하는데 사용되어 온 감각 체계를 재주장하기를 원한다.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p.338)
'목격'이란 보는 것이고, 증언하는 것이며, 서서 공공연하게 자신이 본 곳과 기술한 것을 해명하는 것이며, 이에 대해 심적으로 상처받는 것이다. 『한 장의 잎사귀처럼』(p.246)
즉 모든 앎은 앎의 주체의 영향력, 한계, 권력 등에 한계지워질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인식주체는 전지자(全知者)가 아니라 목격자이다. 그리고 이 목격은 알지 못했던 기존의 자아에 균열을 내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다. 알기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전혀 다른 자아이고, 이 상처와 균열로부터 새로운 앎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지막에 해러웨이는 비판이론의 방식과 학문적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데, 비판은 이론의 결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러 주장들을 해체하고 권력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아는 것, 그래서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학문하는 과정에서 종종 드러나는 부정적 비판성은 난잡함, 더러움, 결함까지 포용하기를 꺼려하는 두려움에 뿌리박은 결과라고 해러웨이는 지적하고 있다(p.185).
이 책은 질병, 고통, 상처, 타자와의 관계성에 대해 기존의 우리가 아는 앎에 '상처'를 내며 완전히 다른 방식의 인식론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과학적인 언어들과 학문간 경계를 횡단하는 사유로 인해 이 책을 읽는 것이 녹록치는 않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사상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이 놀라운 인식론적 전환에 깊은 심호흡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