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세계 - 사랑한 만큼 상처 주고, 가까운 만큼 원망스러운
김지윤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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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엄마와 자연스레 잘 독립했다고 생각했고, 또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저는 김지윤 소장님이 쓰진 이 [모녀의 세계]에 크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미친듯이 웃고 공감하고, 정말 위로 받듯이 읽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 역시 여성? 아니 한 인간으로서 엄마에게 독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결혼'과 '출산'이었어요.

결혼은 만 31세, 출산은 만 32세에 했으니 정말 늦게 엄마에게 독립을 한 것이었죠.

그런데 [모녀의 세계]를 보면서 아직 완벽하게 엄마에게 분리되지 못했음을 깨닫기도 했네요.

(엄마는 아직 저를 못 놓고 계시는 듯 해 보이니까요..)

친정 엄마에게 이 책을 건네면 그녀는 어떤 생각이 드실지... 궁금해지는 시점입니다.

[모녀의 세계]는 총 3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Chapter 1. 애증: 사랑이라는 이름의 상처

- Chapter 2. 조율: 서로를 홀로 서게 하는 적정거리

- Chapter 3. 독립: 엄마를 넘어선 나다움을 찾아


[모녀의 세계]를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김지윤 소장님의 개인적인 엄마와의 관계 이야기와 기타 다른 사례들로 다채롭게 꾸며져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강도가 다르겠지만, 다른 딸들도 나와 이렇게 비슷한 모녀 관계가 있었다고 하니, '아, 나만 이렇게 살지는 않았구나'라는 못내 이상한 위안? 같은 것도 얻게 되니까요. 그러면서 이 고질적인 모녀의 관계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저도 딸이 있기에 말이죠.


"딸은 엄마의 아바타가 아니다. "


정말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더군요.

인생 100% 엄마의 아바타로 살진 않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저 또한 엄마의 아바타였음을, 그리고 지금도 아바타임을 가끔씩 강요받으며 엄마랑 지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 순간이었어요.

마흔이 다 된 저에게 저희 친정엄마 역시...

"옷이 이게 뭐니, 여자답게 입어라, 좀 꾸며라."

주방을 보시며...

"왜 살림은 이렇게 하니, 식기세척기 쓰지 않을 거면 갖다 버려라.

이 공간이 답답하잖니."

가끔씩 친구분들의 딸 이야기를 듣고 오실 때면...

"다른 집 딸은 엄마랑 같이 쇼핑도 잘 한다던데, 찜질방도 잘 간다던데...

아유~, 역시 딸은 둘이 있어야 하나보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며 엄마한테 잘한다던데.. 니 이모는 참 좋겠다. 딸이 둘이어서..."

알게 모르게 이 불편한 엄마의 정서들은 저에게 아바타를 기대하셨던 것 같네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엄마들에게는 딸 존재의 이유였던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저 또한 맞이한 것이죠.


사실 저 역시 첫째가 '아들'이었을 때, 딸을 가진 엄마들을 무척 부러워했거든요.

둘째가 생겼을 때도 딸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고, 딸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너무너무, 정말 정말 좋았는데..

그 이유는 자세히 몰랐지만, 저 역시도 딸은 뭔가 나의 친구, 나의 아바타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더군요.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서로가 살려면, 심리적으로 좀 떨어져 있어야 한다. ......

딸이 슬슬 서로의 독립을 준비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

엄마를 소비하는 일을 멈추자면 상당히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p168)

당신이 먼저 손을 놓아야 엄마도 겨우 그 손을 놓는다. (p175)


엄마에게 독립된 개체로 인정받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은 확실합니다.

김지윤 소장님의 말씀대로 "용기"가 필요하죠.

저 또한, 친정 엄마에게 1차 독립을 하고자 할 때 큰 용기를 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립할 수 있는 그 계기를 순간 놓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첫째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고 인테리어를 준비 하는데,

엄마의 강한 의견이 저희 부부를 난감하게 할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저희가 살 집인데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일까요?

한 겨울, 저녁 늦게 엄마를 엄마의 집으로 모셔다드리는 길에 정말 진지하게 말씀드렸어요.

"나와 나의 남편이 살 집이에요. 엄마의 의견, 고맙지만....

이제 우리도 나이가 있는데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엄마는 바라만 봐줘.

그게 또 엄마의 눈에 성이 안 차더라도 그 또한 우리의 결정이고, 우리의 취향이니 존중해 주면 좋겠어.

그 대신, 엄마는 엄마의 자신을 돌보는데 힘을 더 쓰는 게 엄마에게도 좋을 것 같아. 엄마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것도 하시면서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데 에너지를 더 쓰는 게 어때?"


저의 그런 말을 듣고 섭섭하셨던 걸까요? 아님 어떤 다른 무언가를 느끼셔서 였을까요? 집에 가시는 내내 맘은 그러고 싶지만 맘처럼 잘 안된다고 하시면서 펑펑 우시더군요. 엄마의 우는 모습이 좀 걸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하더군요.

저 역시 진짜 성인? 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그 후로 저희 엄마는 변하셨어요.

정말 자신의 인생을 즐기시고자 이것저것 활동적으로 변하셨지요.

골프며, 에어로빅이며, 줌바댄스며, 수영이며,... 주말에 엄마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엄마는 이제 바쁘십니다.

그리고 자식으로서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사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저는 참 감사함을 느낌니다.

물론 저의 육아에도 최소한으로 꼭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만 도움을 주시기 때문에제 몸이 더 바빠지고 노곤해 지지만 서로의 마음은 아주 행복하고 가벼운 것 같아요. 저희 집에 오시면 아직은 딸을 아바타처럼 생각하시는 말씀도 간간이 하시기도 하지만 이 또한 예전보단 많이 좋아졌기에 저 역시 발끈하기보단 웃고 넘어가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우리 세대의 친정엄마들에게 완전한 독립된 개체로 존중 받기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달라야 하겠죠.

김지윤 소장님의 말씀처럼 저하고 친정 엄마는 다른 역량이 존재하는 만큼 다른 인생을 살아야겠고, 다른 엄마가 되어야겠죠.






아이의 경계선, 결정권을 지켜주는 일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p182)





친밀감이란......

공유와 경계선이 균형 있게 지켜질 때 형성될 수 있다. (184)





이렇게 고마운 아이들에게 우리는 두 가지의 보답만 해 주면 된다.

첫 번째는 사랑이 담긴 시선이다. (p196)



또 하나는 무엇을 해주는 엄마가 되기 이전에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받아주고 담아내는 엄마가 되어주는 것이다. (p198)




아이들은 자라는 중이다. 인내는 어른의 몫이다.

아이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근력과 끈기 있는 대화가 훈육의 기본이다. (p230)





채소 반찬을 애써 만든 훌륭한 엄마 때문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젓가락질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

엄마의 정서와 목표만을 중심으로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가스라이팅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p260)




모든 것은 엄마 때문이 아닌 자신을 위해 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네가 네 인생의 주인, 책임도 너의 것'이라는 관점을 담은 화법의 표현이 필요하다. (p264)





딸에게, 아니 딸이든 아들이든 저의 정서와 감정을 먹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잘 발견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녀의 세계]의 마지막 파트인 '독립: 엄마를 넘어선 나다움을 찾아'에서 우리의 다음 세대인 아이들을 위한 육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저 개인적으로는 공감 가고 와 닿은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만약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 독자에게, 혹은 육아를 배제하고 나를 찾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지 다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만들어 낸 우리의 엄마상을 이해하고 우리의 모녀 관계에 조금이나마 공감받고 위로하기 원하는 이들이 있다면 추천해 주고 싶네요.

저는 이미 제 주변의 딸이 있는 친한 엄마들에게 추천을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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