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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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의 저자 정성문 작가와 도서출판 예미의 황부현 대표가 최근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황부현 대표(이하 황) : 발간을 축하한다. 근래 들어 노인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고 최근에는 정치권도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 등으로 시끄럽다. 언제 집필한 것인가.

 

정성문 작가(이하 정) : 소설을 구상한 시점은 십 년 전쯤이다. 당시 회사에서 하던 업무가 자금 운용이었다. 기관투자가였는데, 소위 말하는 큰손이었다. 당연히 여러 증권사로부터 이코노미 리뷰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 봤다. 그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고령화와 채권 투자 전망이던가, 그런 제목의 리포트였다. 그리 길지 않은 보고서였는데, 자료를 읽는 순간, 앞으로 산업과 투자 방면에서 어마어마한 실버 마켓이 열리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 사업할 재주는 없어서 대신 글로 써보자는 생각을 했지만, 시놉시스만 써두고 있었다. 집필을 시작한 것은 퇴직하고 나서다. 2년 전이다.

 

: 소설 속에는 최근 화제가 되는 노인복지 문제뿐만이 아니라 노인의 성(), 황혼이혼, 노인범죄, 존엄사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이 각 챕터의 주제로 등장한다. 자료 수집을 꽤 많이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던데.

 

: 구상을 하고 바로 소설을 쓰진 못 했지만, 그때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도서를 구입하고 자료 수집도 시작했다. 소설 속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사실에 기반한다. 가령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소주를 훔치고 6개월 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벌금을 선고받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기사를 참조했다. 우리 사회의 우울한 실화를 각색한 것이다.

 

늙어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꼰대가 늙은 꼰대되는 것

 

: 노인들을 직접 만나서 취재하지는 않았는지.

 

: 어떻게 만나지 않았겠나. 주변이 노인인데. 작가들 모임에 나가더라도 전부 노인뿐이다. 일가에 어르신들도 많고. 아파트 경비분들도 전부 노인이지 않은가. 일부러 만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겉은 추레해 보여도 젊었을 때 잘 나가던 분들도 많더라. 잊고 지내는 진실이지만, 노인은 젊은이들의 미래다.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지금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노인이라고 해서 다 꼰대는 아니더라. 사고가 젊은이들보다 열린 분들도 계신다. 여러 어르신을 만나고 깨달은 점은 늙어서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꼰대가 늙은 꼰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 노동 문제를 다룬 전작 <욕망의 배 페스카마>도 그렇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 소설은 자기 내면의 거울일 수도 있지만, 사회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를 치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도 못 하는 일을 어떻게 소설로 하겠는가. 다만 소설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문제 제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문제는 문학뿐만이 아니라 여러 예술 장르의 훌륭한 소재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53일 마드리드라는 작품은 프랑스군의 마드리드 양민학살을 증언한 작품이다. 피카소도 6,25를 배경으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고발 작품을 남기지 않았는가. 사회 문제란 결국 인간의 문제다. 예술은 인간을 다루는 것이 아닌가.

 

: 문학을 통해 사회 변혁을 꿈꾸는가?

 

: 아니다. 말한 바와 같이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를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문학 순수주의자라 문학을 그 어떤 가치보다 높이 친다. 내 문학의 소재로 사회적 현상을 다룰 뿐이다.

 

: 스스로 사회파 작가라고 하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를 사회과학소설이라 부르던데.

 

: 극단적으로 자기 내면세계를 파고드는 작가들도 있지만 사실 나 말고도 많은 작가가 작품 속에서 사회 현상을 다루고 있지 않은가. 알고 보면 거의 모든 작가가 사회파다. 나는 그렇게 본다. 데뷔 이후 발표한 두 작품집이 공교롭게도 사회의 부조리를 다뤘지만, 계속해서 이런 류의 소설만은 쓸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주보다 깊은 것이 한 치 인간의 내면이다. 인간의 내면을 다룬 작품도 쓰고 싶다. 원래 그렇게 시작하기도 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가 사회과학소설인 것은 맞다. 소설이 과학이라는 말이 아니다. 사회과학적 소재로 쓴 소설이라는 말이다. 사회과학소설은 올더스 헉슬리나 조지 오웰 등에 의해 오래전부터 서구에서는 하나의 장르다. 하지만 신문학 역사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보기 드문 장르다.

 

: 그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가.

 

: 우리의 불행한 과거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소설 속에 사회적 현상을 담으려면 정치, 경제, 사회의 어두운 면을 피할 수 없는데, 우린 오랫동안 정치적 소재가 금기였다. 정치적 문제를 다룬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확산되지 못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문제를 쉽게 쓸 수 있는 문학적 환경은 아니다. 경제적 현상은 조금 다른데. 작가들이 이 방면에 전문성이 없다 보니 쓰기 어려운 것이다.

 

: 우리 문학의 사소설적 경향과도 관계가 있는가.

 

: 물론이다. 말한 바와 같이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를 다루려면 이 방면에 대한 경험과 아주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소설을 쓰려면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보니 자꾸만 소재를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를 주인공으로 한 1인칭 사소설이 우리 소설의 주류가 된 것이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로 다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보자. 노인 문제는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이기도 한데, 30여 년 후의 근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했는가.

 

: 이제는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떠들고 있다. 그런데 당면 과제라는 건 지금까지 이 문제를 방기했다는 말과 같다. 오래전부터 인구 추이를 보고 이에 대비했다면 노인 문제가 지금의 당면 과제이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잘 준비해야 30여 년 후에 소설 속의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30여 년 후의 세상을 그렸지만,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다. 30년 후의 일이라고 해도 결국은 지금의 세상을 그린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알레고리다. 사실 이 소설을 처음 준비할 때는 40년 후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변하는 게 하나도 없더라. 30여 년 후가 멀리 있을 것 같지만, 사회적으로는 순식간이다.

 

국내 최초의 뮤지컬 소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를 읽어보면 1970, 80년대에 젊은이들의 마음과 귀를 사로잡았던 여러 히트곡들이 나온다. 각 노래 마다 사연이 있던데.

 

: 소설 속 인물들이 1980년대에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과거 장면에서 그런 노래들이 쓰였다. 소설을 쓸 때 뮤지컬 제작이 가능하도록 그렇게 했는데 그러다 보니 노래 저마다의 의미가 소설의 진행과 맞아야 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1987년에 영국 밴드 커팅 크루(Cutting Crew)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I Just Died In Your Arms’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찾아왔답니다 / 주변에는 상심한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 난 여기서 빠져나갈 쉬운 길을 알지 못해요이 가사는 주인공 김한섭의 심경과 고민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제목을 번역하자면. ‘난 방금 당신의 품에서 죽었어요정도가 되는데 김한섭의 연인인 권선희가 마지막에 김한섭이 품에서 죽지 않는가. 이 곡은 이 소설의 주제가나 마찬가지다.

 

: 많은 고민을 하며 곡 선택을 했겠다. 다른 소설에도 노래가 가진 의미를 메타포로 사용한 사례가 있는가.

 

: 솔직히 말하면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노래를 먼저 생각하고 소설을 지은 것이 아니라 소설을 써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부분에 어울리는 곡들이 떠올랐을 뿐이다. 나는 학창 시절 빌보드 차트를 줄줄 외우던 빌보드 키드였다. 차트 순위뿐만 아니라 노래의 가사 등도 알고 있어 자연스럽게 매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가요 역시 사회의 거울이 아닌가. 다른 소설에 이런 사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소설 가운데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는 국내 최초의 뮤지컬 소설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소설의 생명은 고유성과 독창성

 

: 굉장히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존엄사 문제를 다룬 쳅터 고통 없이 도와 드립니다는 방송 대본 형태로 썼다. 이유가 있는가.

 

: 존엄사 문제를 다루려면 소설이라도 죽음의 의미에 대한 지루한 설명이 들어가야 한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또한 이 챕터는 하나의 독립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설 전체에서 보면 이질적인 부분이다. 노인들이 방송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형태로 구성하면 죽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고 이 챕터를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끼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게 무슨 소설이냐는 평을 받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 영어로 소설을 뜻하는 ‘novel’은 새롭다는 의미를 가진 형용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novelist’란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소설의 생명은 고유성과 독창성이다.

 

: 등단하고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창작집을 두 권이나 발표했다. 다음에 계획하는 소설은?

 

: 퇴직하고 2년 정도 시간이 있을 때 200자 원고지 분량으로 2,500매 가까이 쓴 것 같다. 지금은 다시 직장을 얻어 그렇게 쓰지 못하지만 늘 꿈을 꾸고 산다. 소설은 결국 꿈을 쓴 거 아닌가. 아주 많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꺼내 달라고 꿈틀대고 있다. 글쎄, 언제 다 끄집어낼 수 있을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도 전에는 한낱 막연한 꿈에 불과했다. 사회파 작가답게 사회적 문제를 다룰 소설도 있고 역사 소설, 판타지도 있다. 특정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 순문학? 이런 말은 정신 승리일 뿐이다. 모든 소설은 재미있게 잘 쓴 소설과 재미도 없고 못 쓴 소설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 둘이서 커피를 네 잔이나 마셨다. 인터뷰 감사하다. 이제 소주를 마시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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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 성공한 근대화, 실패한 근대화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총서 99
김석균 지음 / 예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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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을 한번 보자. 하고 있는 헤어스타일을 보자.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 또는 배운 것을 돌이켜보자.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과 하고 있는 헤어스타일과 배운 학문은 전부 원래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양의 의복을 입고 있으며, 그들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고 있으며 그들의 학문을 배우고 있다.

 

서양의 제도를 따라하고 문물을 배우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동양의 3국은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화에 흡수되었는가.

 

한서대학교 해양경찰학과 김석균 교수가 지은 해금’(도서출판 예미)은 서양은 개해(開海)의 역사이고 동양은 해금(海禁)의 역사라고 말한다. 즉 서양은 바닷길을 개척해 적극적으로 상행위에 나선 결과 창출된 부를 기반으로 정치와 사회 변혁을 이루어 내 세계 질서를 바꾼 반면, 동양 3국은 바다로 나가는 것을 막고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를 고수한 결과 서양에 뒤처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바다에 대한 인식과 접근이 서양과 동양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그렇다면 한때 쇄국을 고수했던 중국, 조선과 일본 3국의 운명이 바뀐 것은 어떤 이유일까.

 

놀랍게도 중국은 송원 시기만 하더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해양강국이었다. 송나라 때 해양무역 기지였던 항저우는 인구 70만의 대도시였다. 명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정화(鄭和)는 영락제의 명으로 길이 138미터, 60미터의 대형 선박 60여 척에 무려 27,000명의 원정대를 싣고 멀리 아프리카의 동쪽 케냐 해안까지 원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가장 큰 배는 8천 톤급 선박이었다고 하는데, 훨씬 뒤에 콜럼버스의 함대가 250 톤급이었음을 감안하면 당시 중국의 선박건조 기술과 원정대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강대했던 중국이 세계사의 뒷 장으로 처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원인은 해금정책이었다. 후세의 황제들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하는 해로를 통한 이와 같은 대규모 원정이 유교적 가치관에 반한다고 보았다.

 

반면 서양은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상업적 이유로 적극적으로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향신료와 차, 면직물 등을 싣고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하였으며 항해술과 선박 건조 기술의 부족으로 사고가 잦았다. 그래서 투자의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주식회사와 회피할 수 있는 선물(先物) 제도가 생겨나고 보험산업이 발달했다. 무역업이 자본주의 발달의 촉매제가 된 것이다.

 

자본주의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더 많은 자본의 축적을 요구했다. 그래서 유럽국가들은 앞다퉈 신항로를 개척하고 무역기지를 건설했다. 동인도회사다. 무역을 하기 위한 항로의 개척과 동인도회사의 설립은 19세기 제국주의로 이어진다.

 

반면 15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항해술과 선박건조 능력에 있어 서양을 압도했던 중국은 명청시기 강력한 해금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청나라는 나뭇조각 하나라도 바다에 띄우는 것을 금한다고 할 만큼 강력한 해금령을 시행했다. 중국이 이처럼 문을 걸어 잠근 건 무역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경제였기 때문에 서양과의 소통이 중화주의와 황제의 권력 유지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호혜 원칙에 기반한 무역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중화주의에 입각한 조공만을 생각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후 일본도 쇄국을 고수했다. 서양의 기독교를 위협 세력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해외에서 입국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강력한 해금령을 공표하고 기독교 금지령을 내렸다.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확산되던 기독교에 고민하던 에도막부는 나가사키 앞바다에 5천평 규모의 인공섬인 데지마를 건설했다. 오직 그곳에서만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인들이 상주할 수 있도록 하고 접촉하게 했다.

 

서양과의 교역 창구였던 데지마는 일본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데지마를 통해 들어온 난학(蘭學)이라 불리던 서양학문은 일본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중화를 자처하며 유교 이념에 빠져 있던 조선은 해금을 넘어 공도 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조선 조정은 섬을 왜구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삼남의 섬 대부분을 공도화했다. 태종 때 시작된 조선의 공도정책은 1882년이 이르러서야 폐기되었다. 무려 4백여 년 간이나 조선은 세계사에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이다.

 

김석균의 해금은 앞부분에서 서양의 개해사(開海史)를 다루고 뒷부분에서는 중국, 조선, 일본 등 동양 3국의 해금의 역사를 서술한다.

 

바다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며 바다는 땅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바꾼다. 중국은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그저 서양의 앞선 기술과 무기만 받아들이고자 했다. 조선은 동양 3국 가운데 가장 늦게 빗장을 풀었지만, 정치와 경제 등 서구식 제도에 대한 철학 없이 왕권 유지를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이 점이 막부를 타도하고 사회 질서를 지탱하던 사무라이의 특권을 과감히 폐지했으며 서양식 입헌군주제를 공포하고 의회를 설치한 일본과 중국과 조선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 차이가 20세기 들어 3국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저자는 끝으로 말한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의 트렌드 속에서 과감한 도전과 혁신,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자세야말로 그 옛날 목숨을 걸고 거친 대양으로 진출한 것의 현대사적 의미라고.

 

과거는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의 나침판이다. 성공한 근대화와 실패한 근대화의 원인을 담담히 써 내려간 김석균 교수의 해금을 읽고 보이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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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홀로 떠난 미국 횡단 자전거여행 - 브라보 YOLO!
민병옥 지음 / 시타델퍼블리싱(CITADEL PUBLISHING)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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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의 은퇴 은행원이 태평양을 등 뒤로 하고 대서양을 향해 달렸다.

 

56kg, 자그마한 체구의 사내가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서 애리조나의 사막을 건너고 로키산맥을 넘어 캔자스의 대평원을 지나 토네이도와 맞닥뜨리면서 동부의 버지니아까지 9개 주를 거치는 동안 힘겹게 끌고 간 것은 자신의 체중보다 더 나가는 자전거와 짐의 무게뿐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현대는 모순의 시대다.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고 체력은 좋아졌지만 은퇴 연령은 과거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기 퇴직자들이 마주치는 것은 그들이 매일같이 오르는 산의 높이 보다 높은 삶의 높이다. ‘60대에 홀로 떠난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의 저자 민병옥씨가 어느 날 마주친 현실의 높이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남산에 오르거나 도서관에서 소일하던 저자는 그의 나이 60에 이르러 하고 싶었던 것, 마음속에 꽁꽁 감추어 두었던 것을 풀어 놓는다. 그것은 자전거로 미국 대륙 횡단하기였다.

 

언제부턴지 자전거로 레저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정부와 지자체에서 자전거 길을 내면서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완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며 실제로 국토종주길이라고 하는 이 길에 도전하고 완주하는 라이더가 속출하고 있다.

 

체력에 따라 짧게는 2박3일부터 보통 5박6일 혹은 그 이상이 소요되는 국토종주도 쉬운 일이 아니며 대단한 체력과 열정이 필요한데 국토종주의 대략 열 배의 거리에 이르는 미국 대륙을 자전거를 타고 횡단하는 일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일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미국 횡단에 도전하기 전에 유언을 예약 발송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남들에 비해 안정적인 삶을 살던 저자를 모험으로 이끌어낸 것일까?

 

어쩌면 이러한 궁금증은 저자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저자의 나이쯤에 은퇴를 하거나 황퇴를 당할지도 모를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의 삶의 흔적은 퇴직과 더불어 모조리 지워지는 것이 아닐까? 60대의 초라한 사내가 세상에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있기나 한 걸까?

 

앞으로도 살아온 만큼을 더 살게 될지도 모를 인생 그렇다면 인생 리셋이다.

 

미국을 횡단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동에서 서로 횡단하거나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는 것이다. 그 중 모험 자전거 협회(ACA : Adventure Cycling Association)의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Trans America Trail)처럼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미국의 역사가 동부에서 서부로 개척되었기 때문에 그럴 것으로 본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자는 반대 방향인 서부를 출발하여 동부에 이르렀다. 대륙 횡단에 앞서 캘리포니아의 해안을 먼저 종단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부에서 서부로 달릴 경우, 오후에는 해를 마주보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온도가 낮은 오전에 해를 마주하고 오후에는 등지기 위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제주도 일주시 시계 방향으로 달려야 하나요? 아니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하나요?’ 라든가 ‘동해안 종주시 위로 올라가야 하나요? 아니면 아래로 내려가는 게 좋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라이더들도 많은데 혹시 미국 횡단을 꿈꾸는 라이더들이라면 한번 쯤 해보았을 동진 혹은 서진? 이라는 질문에 참고가 될 것이다.

 

다만 바람의 방향, 이것은 대기 상태라는 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코스를 선택하는데 바람이 불어올 방향까지 고려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라이딩을 하다보면 국내에서도 진행 방향에 따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데 상대는 대륙이다.

 

저자의 경우, 84일 동안 미국대륙을 두 바퀴로 누볐지만 실제 횡단 기간은 LA에서 버지니아의 요크타운에 이르는 70일 간이다. 약 보름 간 900km를 넘게 캘리포니아를 종단하고 누적거리 6,100km를 찍었으니 5,000km 넘게 대륙을 횡단했다는 말이다.

 

저자의 기록은 일기체 형식이다. 즉 매일의 라이딩을 그날 달린 거리, 숙소와 함께 기록했다. 여행의 단상은 물론이다. 저자는 84일 동안 모텔에서 27일, 웜샤워 하우스에서 26일, 야영 17일, 소방서 6일, 교회 5일, 한인 가정집에서 3일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웜샤워란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자신이 사는 지역을 지나는 다른 라이더들에게 무료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굳이 우리식으로 이해하면 잠자리와 샤워 그리고 때로는 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웜샤워 사이트(www.warmshowers.org)에 가입을 하면 호스트도 게스트도 될 수 있다.

 

저자의 여행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웜샤워 숙박을 통한 현지 가정집 체류기다. 웜샤워야 말로 미국 문화와 인심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그것도 무료로) 기회 아닌가? 물론 저자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웜샤워 호스트에 줄 선물을 미리 준비하였으며 방문시에는 과일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끔 내 주변에서도 미국이나 일본에서 생활할 때 현지인들의 친절이 무척 감명 깊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저자 역시 여행 도중 현지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 저자는 책의 중간 중간에 현지인의 도움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고 있으며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은 국민들의 그러한 태도에 기인한 것 같다고도 한다.

 

독후감을 쓰는 이 자리를 빌려 쓰는 이도 한 마디 남기고자 한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좀 배려하자는 것이다. 가장 약한 탈것인 자전거를 즐기다보면 위협하듯 밀어붙이는 자동차 운전자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분명히 충분한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갓길에 바싹 붙어 달리는 버스와 트럭들. 한번은 체증이 심한 도로에서 유유히 갓길을 주행 중이었는데 할리 데이비슨 부대가 치고 들어오더니 내게 옆으로 더 바짝 붙어 달리지 않는다고 지랄을 하며 지나간 적도 있었다.

 

모든 폭력의 발생 원인은 결국 한 가지다. ‘나는 크고 너는 작다’는 인식이다. 오토바이는 승용차에 승용차는 버스나 트럭에 버스나 트럭은 더 큰 화물차에 위협을 당할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위협당할 것이다. 힘으로 이긴다면 그것이 정의인가? 서부 개척 시대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OK 목장의 결투’는 승자와 패자는 가려주었을지 몰라도 정의를 가리지는 못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서부는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서부의 역사를 이은 미국이 혼돈과 무법을 딛고 오늘날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건국 이래 그다지 정의롭지 못하고 오랜 기간 주먹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가 미국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할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처럼 이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하지만 저자의 미국 자전거 여행이 친절한 미국인들을 만나 순풍에 돛단 듯 풀린 것만은 결코 아니다. 여행 스타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여행이란 대자연과의 교감이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산을 정복한다고 말하지 마라. 그저 산이 길을 내어주었을 뿐이다. 여행을 통해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감으로써 극복에 이르는 것이다.

 

저자가 사막을 건너고 산맥을 넘고 대평원을 지날 때 그러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넓디 넒은 뜨거운 사막에서 폐쇄공포증을 겪기도 한 저자는 가슴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말한다. 미국 횡단이란 자연을 극복하는 과정이면서 자신과의 내적 싸움이라고.

 

이제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해 말해야 겠다.

 

무엇이 나이 60에 56kg의 사내를 미국을 횡단하게 만들었을까?

 

저자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이 바로 왜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60세’, ‘전환점’, ‘은퇴’ 등의 단어로 어설프게 설명을 해도 의도를 미국인들이 짐작했으리라고 한다.

 

그리고 여행 중에 만난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저자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책을 읽었으니 그 질문에 나 스스로 답해보고자 한다.

 

직장에 다니던 저자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미국 대륙 횡단기를 읽고 막연히 미국 횡단을 꿈꾸었던 것처럼 ‘60대에 홀로 떠난 미국 횡단 자전거여행’을 읽고 언젠가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쓰는 이는 이 책의 부제를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YOLO’, You Only Live Once.

 

사진 출처 : 민병옥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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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자전거
왕소수 (왕 샤오슈아이) 감독, 츄이 린 외 출연 / 영화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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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그 사회의 얼굴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전거는 이제 노동과 생활의 단계를 지나 레저용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자전거가 생계 수단에서 소비 수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던 자전거는 쌀 자전거라 부르던 짐받이 자전거였다. 당시엔 사이클이라 부르던 로드 자전거는 부의 상징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영화는 자전거로 일을 하던 시대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시대로 이전하는 전환기 사회의 이야기다.

 

시골에서 서울(베이징)로 올라온 구웨이(추이린)는 자전거 퀵서비스 업체에 취직을 한다. 조건은 자전거 가격 이상으로 회사의 수익에 기여를 하면 자전거의 소유권을 개인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열심히 일 한 구웨이는 자전거를 넘겨달라고 회사에 요구하지만 경리는 계산이 안 맞는다며 좀 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구웨이가 자전거를 가질 수 있게 될 무렵, 배송할 서류를 받기 위해 마사지업소를 찾은 구웨이는 일단 이 곳에 오면 목욕부터 해야 한다는 종업원의 말에 얼떨결에 목욕을 하게 되고 목욕비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자전거도 잃어버리고 서류 배송도 하지 못한다.

 

이 일로 회사에서 해고된 구웨이는 자전거를 되찾아 오면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회사 간부의 말에 베이징 거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자전거를 찾는다.

 

아주 우연히 자신의 자전거를 발견한 구웨이는 (우연이 아니라면 베이징에서 잃어버린 자전거를 어떻게 되찾겠는가?) 잠시 정차되어 있던 자신의 자전거에 올라 도망을 치고 얼마 전 이 자전거를 구입한 지안(리빈)이 뒤를 쫓는다.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위해 그리고 여자 친구인 지아오(고원원)와 사귀기 위해 자전거가 필요했던 지안.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자전거를 가질 수 없었던 지안은 동생의 학비를 훔쳐서 중고 자전거를 마련한 것이다.

 

결국 서로 자기 것임을 주장하며 자전거를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던 구웨이와 지안은 타협을 하게 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빠져들게 된다.

 

북경 자전거’(十七世的單車, Beijing Bicycle, 감독 왕 샤오슈아이, 2001)는 한창 개발이 진행되는 베이징을 배경으로 현대 중국의 문제랄 수 있는 빈부격차 및 도시와 농촌 간의 경제적 격차 확대 그리고 농민공(農民工)이라 부르는 도시로 이주한 시골 농민들의 문제를 여과 없이 그린 수작이다.

 

오늘날 중국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는 마치 1960~70년대의 성장기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고질인 빈부격차라든가 지역적 불균형 발전 그리고 인구의 도시 집중 문제는 실은 이 시기에 생성된 것이다.

 

영화는 압축적 성장으로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자전거로 보여준다. 앞서 자전거가 노동과 생활의 단계를 지나 레저용으로 진화한다고 했다. ‘북경 자전거에서는 자전거의 용도가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으며 실제 쓰임도 다양하다. 예컨대 구웨이에게 있어 자전거는 생계용이지만 지안과 친구들에게 자전거는 놀이기구다. 그런가하면 구웨이의 자전거는 원래 배달용으로 제조된 고무페달이 장착된 철티비지만 지안은 이 자전거를 MTB처럼 즐기고자 한다.

 

급속으로 성장한 사회는 결과지상주의에 빠지게 되며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의 특징은 짝퉁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즉 급성장하는 과정이 부실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영화에서 구웨이가 훔쳐보는 고급 옷으로 치장한 이웃 아가씨는 알고 보니 그처럼 시골에서 올라온 가정부였다. 영화는 이와 같이 중국사회의 허영과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

 

영화의 원 제목인 ‘17세의 자전거’(十七世的單車)에서 17세의 나이란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전환기를 지나가는 2000년의 중국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다.

 

2001년도 베를린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 시내의 지저분한 뒷골목을 영화에 담았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상영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가지가지로 중국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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