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에 홀로 떠난 미국 횡단 자전거여행 - 브라보 YOLO!
민병옥 지음 / 시타델퍼블리싱(CITADEL PUBLISHING)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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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의 은퇴 은행원이 태평양을 등 뒤로 하고 대서양을 향해 달렸다.

 

56kg, 자그마한 체구의 사내가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서 애리조나의 사막을 건너고 로키산맥을 넘어 캔자스의 대평원을 지나 토네이도와 맞닥뜨리면서 동부의 버지니아까지 9개 주를 거치는 동안 힘겹게 끌고 간 것은 자신의 체중보다 더 나가는 자전거와 짐의 무게뿐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현대는 모순의 시대다.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고 체력은 좋아졌지만 은퇴 연령은 과거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조기 퇴직자들이 마주치는 것은 그들이 매일같이 오르는 산의 높이 보다 높은 삶의 높이다. ‘60대에 홀로 떠난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의 저자 민병옥씨가 어느 날 마주친 현실의 높이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남산에 오르거나 도서관에서 소일하던 저자는 그의 나이 60에 이르러 하고 싶었던 것, 마음속에 꽁꽁 감추어 두었던 것을 풀어 놓는다. 그것은 자전거로 미국 대륙 횡단하기였다.

 

언제부턴지 자전거로 레저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정부와 지자체에서 자전거 길을 내면서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완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며 실제로 국토종주길이라고 하는 이 길에 도전하고 완주하는 라이더가 속출하고 있다.

 

체력에 따라 짧게는 2박3일부터 보통 5박6일 혹은 그 이상이 소요되는 국토종주도 쉬운 일이 아니며 대단한 체력과 열정이 필요한데 국토종주의 대략 열 배의 거리에 이르는 미국 대륙을 자전거를 타고 횡단하는 일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일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미국 횡단에 도전하기 전에 유언을 예약 발송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남들에 비해 안정적인 삶을 살던 저자를 모험으로 이끌어낸 것일까?

 

어쩌면 이러한 궁금증은 저자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저자의 나이쯤에 은퇴를 하거나 황퇴를 당할지도 모를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의 삶의 흔적은 퇴직과 더불어 모조리 지워지는 것이 아닐까? 60대의 초라한 사내가 세상에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있기나 한 걸까?

 

앞으로도 살아온 만큼을 더 살게 될지도 모를 인생 그렇다면 인생 리셋이다.

 

미국을 횡단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동에서 서로 횡단하거나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는 것이다. 그 중 모험 자전거 협회(ACA : Adventure Cycling Association)의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Trans America Trail)처럼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미국의 역사가 동부에서 서부로 개척되었기 때문에 그럴 것으로 본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자는 반대 방향인 서부를 출발하여 동부에 이르렀다. 대륙 횡단에 앞서 캘리포니아의 해안을 먼저 종단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부에서 서부로 달릴 경우, 오후에는 해를 마주보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온도가 낮은 오전에 해를 마주하고 오후에는 등지기 위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제주도 일주시 시계 방향으로 달려야 하나요? 아니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하나요?’ 라든가 ‘동해안 종주시 위로 올라가야 하나요? 아니면 아래로 내려가는 게 좋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라이더들도 많은데 혹시 미국 횡단을 꿈꾸는 라이더들이라면 한번 쯤 해보았을 동진 혹은 서진? 이라는 질문에 참고가 될 것이다.

 

다만 바람의 방향, 이것은 대기 상태라는 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코스를 선택하는데 바람이 불어올 방향까지 고려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라이딩을 하다보면 국내에서도 진행 방향에 따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데 상대는 대륙이다.

 

저자의 경우, 84일 동안 미국대륙을 두 바퀴로 누볐지만 실제 횡단 기간은 LA에서 버지니아의 요크타운에 이르는 70일 간이다. 약 보름 간 900km를 넘게 캘리포니아를 종단하고 누적거리 6,100km를 찍었으니 5,000km 넘게 대륙을 횡단했다는 말이다.

 

저자의 기록은 일기체 형식이다. 즉 매일의 라이딩을 그날 달린 거리, 숙소와 함께 기록했다. 여행의 단상은 물론이다. 저자는 84일 동안 모텔에서 27일, 웜샤워 하우스에서 26일, 야영 17일, 소방서 6일, 교회 5일, 한인 가정집에서 3일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웜샤워란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자신이 사는 지역을 지나는 다른 라이더들에게 무료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굳이 우리식으로 이해하면 잠자리와 샤워 그리고 때로는 식사를 제공하는 민박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웜샤워 사이트(www.warmshowers.org)에 가입을 하면 호스트도 게스트도 될 수 있다.

 

저자의 여행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바로 웜샤워 숙박을 통한 현지 가정집 체류기다. 웜샤워야 말로 미국 문화와 인심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그것도 무료로) 기회 아닌가? 물론 저자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웜샤워 호스트에 줄 선물을 미리 준비하였으며 방문시에는 과일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끔 내 주변에서도 미국이나 일본에서 생활할 때 현지인들의 친절이 무척 감명 깊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저자 역시 여행 도중 현지인들에게 많은 감명을 받은 것 같다. 저자는 책의 중간 중간에 현지인의 도움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고 있으며 미국이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은 국민들의 그러한 태도에 기인한 것 같다고도 한다.

 

독후감을 쓰는 이 자리를 빌려 쓰는 이도 한 마디 남기고자 한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좀 배려하자는 것이다. 가장 약한 탈것인 자전거를 즐기다보면 위협하듯 밀어붙이는 자동차 운전자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분명히 충분한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갓길에 바싹 붙어 달리는 버스와 트럭들. 한번은 체증이 심한 도로에서 유유히 갓길을 주행 중이었는데 할리 데이비슨 부대가 치고 들어오더니 내게 옆으로 더 바짝 붙어 달리지 않는다고 지랄을 하며 지나간 적도 있었다.

 

모든 폭력의 발생 원인은 결국 한 가지다. ‘나는 크고 너는 작다’는 인식이다. 오토바이는 승용차에 승용차는 버스나 트럭에 버스나 트럭은 더 큰 화물차에 위협을 당할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위협당할 것이다. 힘으로 이긴다면 그것이 정의인가? 서부 개척 시대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OK 목장의 결투’는 승자와 패자는 가려주었을지 몰라도 정의를 가리지는 못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서부는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서부의 역사를 이은 미국이 혼돈과 무법을 딛고 오늘날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건국 이래 그다지 정의롭지 못하고 오랜 기간 주먹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가 미국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할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처럼 이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하지만 저자의 미국 자전거 여행이 친절한 미국인들을 만나 순풍에 돛단 듯 풀린 것만은 결코 아니다. 여행 스타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여행이란 대자연과의 교감이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산을 정복한다고 말하지 마라. 그저 산이 길을 내어주었을 뿐이다. 여행을 통해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감으로써 극복에 이르는 것이다.

 

저자가 사막을 건너고 산맥을 넘고 대평원을 지날 때 그러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넓디 넒은 뜨거운 사막에서 폐쇄공포증을 겪기도 한 저자는 가슴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말한다. 미국 횡단이란 자연을 극복하는 과정이면서 자신과의 내적 싸움이라고.

 

이제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해 말해야 겠다.

 

무엇이 나이 60에 56kg의 사내를 미국을 횡단하게 만들었을까?

 

저자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이 바로 왜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60세’, ‘전환점’, ‘은퇴’ 등의 단어로 어설프게 설명을 해도 의도를 미국인들이 짐작했으리라고 한다.

 

그리고 여행 중에 만난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저자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책을 읽었으니 그 질문에 나 스스로 답해보고자 한다.

 

직장에 다니던 저자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미국 대륙 횡단기를 읽고 막연히 미국 횡단을 꿈꾸었던 것처럼 ‘60대에 홀로 떠난 미국 횡단 자전거여행’을 읽고 언젠가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쓰는 이는 이 책의 부제를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YOLO’, You Only Live Once.

 

사진 출처 : 민병옥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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