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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생활자 -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유성용 지음 / 사흘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이보게 친구,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우리는 영혼의 은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작은 인형들 같으오. (p.357)
소탈한 모습을 한 유성용을 처음 본 것은 다큐 프로에서였다.
선한 미소를 한 중년 남자가 팔도를 돌면서 외모보다 더 소박한 식성을 보여주더니
가끔씩 잊고 지내던 어린시절의 기억들까지 흔들어 놓고 가곤 하였다.
그가 여행작가인줄은 근래에 알았다.
그의 몸에서 왜 군불에 밥짓는 냄새가 뭍어 나는지도.
빽빽한 활자만큼 꽉찬 선명한 사진들.
평범한 사진 속엔 삶이 그대로 녹아있고,
시선을 맞출 때면 절로 마음이 숙여진다.
여행은 자주 인생의 여정에 비유되지만, 여행의 끝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고 다만 여행의 끝이다. 말하자면 여행은 액자소설처럼, 생 속의 생이다. 여행하다 보면 자주, 한 생에서 여러 생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생이 꿈이라면, 여행은 꿈속의 꿈인 셈이다. (p.360)
지도에 없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닌다.
여행자를 위한 편의 시설이 없는 곳이 태반이다.
그곳의 삶에 슬쩍 들어갔다 내색없이 나오면서 그는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그에게 여행이란 우리의 일상적인 '하루'와 같은 것인건가?
생활이란 어쩌면 꿈도 약속도 필요치 않은 무엇일지 모르겠다.
다만 하루하루 차곡차곡 사는 일이다. (p.362)
책을 반쯤 읽었을 무렵에야
그가 실연을 했을거라 짐작을 하게 되었다.
사랑을 잃고 그 상처를 어쩌지 못해 보통의 생활에서
여행의 생활로 궤도를 옮겨 탄 것이리라.
파울로 코옐료의 '순례자'를 읽었을 때의 생경한 느낌과 더불어
군불 피워 밥을 짓던 어렸을적 저녁 풍경을 떠오르게 하면서
고즈넉하고 애처롭게 평화로운 기억을 모아보게 만든다.
봄비가 자주 내리는 요즘
처지는 마음을 오롯이 따듯하게 감싸준 책이다
나는 왜 떠나는 자가 되었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 내 입으로 할 수 있는 몇 마디 말은,
상처란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나의 자리를 상처에서 비켜 다시 마련하는 일.
이 말을 의심하지 마라. 그 속에 혹은 그 밖에서 치열함을 묻지도. (p.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