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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ㅣ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https://blog.naver.com/gustn3377/222528969108
창비 블라인드 사전서평단으로 만나 본 K-영 어덜트 소설 < 나나>.
작가를 누군지 밝히지 않고 오로지 내용 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던 자신감이 돋보여 흥미를 끌었던 소설이었다.
이렇게 만나 본 소설은 재미있고 인상 깊었다.
두 명의 주인공이 있다.
한수리와 은류.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러다 버스가 가로수를 들이 받는 가벼운 충돌사고가 생기고 말았다.
가벼운 사고였지만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눈을 떠보니 보이는 건 깨어나 부모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몸이었다.
자신이 죽은 것인가 당황과 공포가 함께 찾아왔지만, 자신을 '선령'이라 소개한 남자가 말했다.
"완전히 죽은 건 아니야. 지금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었을 뿐이니까."
한수리는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었다.
공부는 기본에 문화적인 측면까지 놓치지 않고 다 잘 해내는 아이였다.
은류는 소위 말하는 'YES 맨'이었다.
그 덕분에 주위의 평판도 좋았고 친구들도 많았다.
이런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몸이 그들의 영혼을 거부했다.
이제 7일 안에 다시 몸을 찾아들어가지 못하면,
두 사람의 영혼은 선령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영혼 없이 살아요!"
"생각보다 많아. 영혼 없이 사는 사람들. 너도 곧잘 말하잖아. 영혼 없는 인사, 영혼 1도 없네, 영혼이 가출했네. 뭐 그뿐인가? 영혼이 콩이나 과일이야? 뭐만 하면 영혼을 갈아 넣었대. 그렇게 쉽게 갈아 넣을 수 있는 거, 차라리 없이 살면 좀 어때?"
- 나나 중에서
영혼이 빠져나왔지만, 육체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명상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학교 가서 친구들과 수다도 떨었다.
똑같이 육체를 잃었지만,
수리와 류의 반응은 매우 달랐다.
수리는 자신의 육체에 딱 붙어 다니며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려고 애를 썼다.
그에 반해 류는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영혼이 없이 살면 더 편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들이 주인공들에게는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영혼'은 결국 '나'를 의미하는 것 같다.
주위의 시선에, 환경에 맞춰 살아가다가 결국 '나'를 잃어버리고
나의 상처를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나'를 잃어버리는 이야기.
결국은 그런 '나'를 제대로 마주 보고 찾아가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책은 소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 안에 여운을 길게 남기는 대사들이 참 많았다.
두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가 남의 상처는 잘 들여다보지만 자신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점과
남을 통해 나의 상처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연출도 참 좋았다.
요즘 아이들은 참 바쁘다.
계속해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틀에 자신들을 맞추기 위해 애쓴다.
그렇기에 자신의 영혼을 단단하게 만들어 나가기 시작해야 하는 시기를 놓치고 마는 것 같다.
사실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요즘 사람들이 더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통찰력 있는 문장들과 질문들이 들어 있는 책이기에
이 소설은 청소년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끔 정말 영혼이 필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도 모른 채로,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쳇바퀴 굴러가듯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러다 정말 영혼('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어요. 죽은 것도, 산 것도, 다친 것도 아니에요. 영혼만 이탈했잖아요."
보랏빛 시선이 말끄러미 내 눈을 응시했다.
"너 다쳤어. 아주 많이."
"육체는 멀쩡하게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너 지금 아무한테도 안 보이지? 그래도 이렇게 얘기하고 잠든 동생한테 찾아오고 하잖아. 사실 너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 상처도 마찬가지야. 부러지고 깨지고 다 벗겨졌는데도......"
".........."
"전혀 안 보일 때가 있어."
- 나나 중에서
나는 지금껏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까?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 믿었는데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열여덟 한수리가 누구인지, 무엇이 그 아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지 말이다.
- 나나 중에서
"다들 해도 해도 너무 하는군.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애들이 이번 생은 망했다고? 이러니 사람들이 비 갠 날 우산처럼 자신의 영혼을 손쉽게 잃어버리는 것 아니겠어?"
- 나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