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李瀷1681~1763년)
본관은 여주(驪州),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입니다. 1706년 9월 둘째 형인섬계(剡溪) 이잠(李潛, 1660~1706년)이 장희빈을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옥사한 뒤, 과거에 응할 뜻을 버리고 평생 안산 첨성리(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성포동)에 칩거한 채 학문을 닦았습니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되 경직된 주자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실학의 새로운 가치를 세운 그의 학문은 18세기 남인 학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그는 토지를 바탕으로 정치•경제•사회 제 영역에서의 현실 개혁을 꿈꾸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이병휴(李秉休), 이맹휴(李盟休), 이중환(李重煥), 이가환(李家煥) 등 일문의 자손들과 윤동규(尹東奎), 신후담(愼後聃), 안정복(安鼎福), 권철신(權哲身) 등 여러 문인(文人)에게로 이어져 정약용(丁若鏞)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의 학문에 눌려 문학은 큰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성호선생문집(星湖先生文集)」과 「성호사설(星湖僿設)」에 실린 많은 글은 그의 문학적 성취 또한 낮지 않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익의 문학은 도문일치를 지향하고 육경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다소 고리타분한 느낌이 있습니다.다만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문학, 즉 우리의 것과 우리의 사고와 우리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고 세교(世敎)에 도움이 되는 현실 참여의 문학을 갈구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특히 당대 사회의 모순과 현실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고 예리하게 성찰하여 올바로 비판하고자 했던 노력은 이후 후배 실력파 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도학과 문장이 근고(近古)의 유종(儒宗)이 된다고 말한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평가는 학과 문을 고루 갖춘 그의 성취에 잘 어울린다 할 만합니다. 이익은 학식이 .넓고 깊었던 만큼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주목할 만한 책으로는 「성호사설」, 「성호선생문집」, 「곽우록(藿憂錄)」, 「맹자」「논어」「중용」「대학」「소학」「근사록」 등의 질서(疾書), 「사칠신편(四七新編)」, 「이선생예설(李先生禮說)」 등이 있습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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