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보(鄭寅普, 1893년 ~ 1950년)
자는 경업(經業), 호는 담원(薝園)-위당(爲堂),본관은 동래(東萊)입니다. 난곡 이건방을 스승으로 스승으로 모시고 강화학파의 적통을 이었습니다.젊은 시절 한때 중국의 상해(上海)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참여했고,귀국하여 <동아일보>, <시대일보>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동아일보>에 「조선고서해제(朝鮮古書解題)」를 연재하여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연희전문학교 문과 교수로 있으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자 초대 감찰위원장(監察委員長)을 지냈습니다.
한문으로 쓴 시문집으로 고본(藁本, 저자가 정리한 원고본)인 담원문록「薝園文錄」이 1967년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영인되었고, 같은 곳에서 국문•한문 제작을 모두 수합하여 「담원 정인보 전집」을 간행했습니다.
20세기에도 한문을 구사한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정인보는 사실상 한문학의 마지막 대가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젊은 나이부터 문장으로 유명하여 20대 초반인 그를 두고 동년배인 춘원(春園) 이광수(李光 洙)는 "문명(文明)을 흠모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담원문록」에 실린 신문에는 강화학파 선배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한말 우국지사의 전기, 조선시대 중요 저작에 대한 서발(序拔), 당시 사학계의 큰 쟁점이었던 고구려 광개토비의 해석 등과 더불어 문학적 향취가 짙은 자기들이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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