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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새가 되시던 날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육필시집
서홍관 지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4월
평점 :
서홍관 시인의 시 선집 <아버지 새가 되시던 날>이 나왔다.
이 시집의 표제가 된 시를 읽은 후 독자의 마음 속에 남는 것은 “이제야 술법을 익히셨는지 /눈 내린 소나무 위로 새가 되어 / 하늘로 날아오르시니” 아버지가 날아올라간 공간이다. 이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은 “어떤 도사를 만나/일본 헌병이 잡으러 오면 새가 되어 도망치는/ 술법을 익히던 중에”와 연결되어 부각된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질곡에서 도망치는 술법을 익히지만 규슈로 끌려갔던 아버지이지만 이제는 정말 새가 되어 날아가신 것이다. 이 공간은 역사도 타자도 개입할 수 없는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유아론적인 심취나 초월적인 비약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앞 연의 현실적인 묘사와의 연관 때문이며 심지어 따스하게조차 느껴지는 것은 아버지가 좋아하던 금산사라는 공간 그리고 눈 내리는 소나무의 이미지 등이 얽혀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시인의 따스한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 따스함은 우리가 혈육에 대해 느끼는 그리움이나 애틋함을 너머서서 인간 혹은 인간임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준다. 억압적 역사적 현실 속에서 살아도 결국은 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공간을 획득할 수 있다는 신뢰.
이 공간이 바로크 음악처럼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것은 짤막한 시 <레퀴엠>에서이다.
죽음의 사자가 찾아오는
저녁 무렵.
저 서늘한 음악.
아내도 아이들도 다 나간 뒤,
나 혼자서 듣는
평안한 소리.
시인만의 공간에 울려 퍼지는 것은 죽음의 송가이다. 이 음악이 서늘한 것은 죽음 앞에서 누구나 대면해야 하는 실존적인 고독 때문이다. 이 실존적 고독의 이입은 아내도 아이들도 없는 나 혼자만이 있는 공간이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이를 평안하다고 하고 독자가 서늘한 음악에서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아내와 아이라는 관계망 속에 있는 개별자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는 혼자만의 실존적 고독은 가족이라는 관계망과 긴장이라기 보다는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죽음 그리고 고독과 연관된 분위기임에도 시인은 “평안한”이라고 하고 독자는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시인이 사회적 관계망 너머 아니 오히려 언어너머의 지점으로 떠나가지만 곧 다시 돌아올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기다림이 그 밑에 깔려 있어서가 아닐까?
개별자로서의 시인이 갖고 싶은 아니 이미 도달한 공간이 따스한 텅 빈 공간임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작품은 <꿈>이다.
나에게도 꿈이 하나 있지
논두렁 개울가에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도
잊어 먹고
개울 위로 떠가는
지푸라기만 바라보는
열다섯 살
소년이 되어보는.
열다섯 살 소년 시절의 한 시점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추억하는 순간처럼 비자발적 기억의 순간이다. 이것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꿈속에서 처럼 내가 타자화되어 나타나는 기억이다. 이 기억의 순간에 저 멀리 흐릿하게 밥 먹으라는 고함소리가 있고 시인의 마음은 또렷하게 흘러가는 지푸라기에 집중되어 있다. 일상 속에 있으나 일상을 벗어난 마음이 따스해지는 텅빈 향유의 순간이기도 하다. 다시 소년으로 돌아가는것은 퇴행이 아니라 역행이며, 새로운 되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맑은 마음의 새로운 사람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