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장혜영 지음 / 우드스톡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굴튀김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글이 바삭한 튀김옷과 부드러운 굴의 감촉, 과 같은 '물리적인 욕구'를 독자들의 마음속에 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 굴튀김이 먹고 싶어 죽겠다'라고 외치게 만들고,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장혜영 작가님의 『어른이 되면』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굴튀김 생각이 났다. 『어른이 되면』은 독자에게 '아, 인간은 어쩌면 다시 한 번 믿어 볼 만한 존재일 수도 있겠구나'(아니, 그 흠 많고 탈 많은 인간을?)라는 참을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한다. 그 감정은, 굴튀김처럼 물리적이다. 생생하고 바삭하다. 읽는 이의 살갗을 파고들고, 가슴을 친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 건 무척 오랜만이라서 나도 놀랐다.


중증 발달장애를 갖고 있고, 18년간 경기도의 시설에서 살다 돌아온 동생 혜정님과 '400일간의 일상'을 함께하며 기록해 둔 혜영님의 이 자전적인 책은, 물론 가볍지만도 흥겹지만도 않다. 특히 책의 전반부 동생과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작가의 시선은 그야말로 차별과 혐오, 고통에 대한 공감각적인 보고서라고 할 만했다. <이질감>, <경멸과 무시>, <처리>, <증거>, <무표정한 얼굴>, <사물>, <신고>, <그저 '몸'으로 취급받는 삶>... 그저 몇 개의 단어들만 뽑았을 뿐인데, 인간이 인간을 마주칠 때 품게 되는 가장 아프고 슬픈 풍경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책의 중반부턴, 바로 이 책의 베이스가 된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이야기, 작년 이후 '시설 밖의 삶'이 이어진다. 자매님들의 일본 여행, 이사와 '혜정님만의 방', 노들 야학, 음악 과외와 공연, 공무원과의 부딪침, 친구들과의 우정과 투닥거림 등등... 작가님은 영상을 찍는 감독이시니 문장은 평이할 수도 있겠지, 생각했던 건 오판이었다. 글'도' 정말 잘 쓰신다. 넘나 팔방미인이어서 부럽고 샘이 날 만큼... (인생은 언제나 불공평.)


지금 2018년의 생각많은둘째언니, 혜영님이 매체를 넘나들며 가장 절실하고 뾰족하게 건드리고 있는 '어떤 지점'이 있다. 그 지점들을 여기 모두 적기엔 무리이겠지만... 내가 그랬듯 이 책을 읽는다면 다른 분들도 분명히 둘째언니 혜영님, 과 막내 혜정님, 과 그들의 친구 분들, 에게 반할 수밖에 없으리라 확신한다. 가끔은... 그냥 이 세상에 나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먹먹해지는 책이 있다. 『어른이 되면』이 바로 그런 책이다.


작가님은 자신의 길고 험했던 여정을 통하여 '돌봄'과 '관계'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어른이 되면』의 가장 멋진 점은, 그런 돌봄과 관계의 과정들이 '장혜영'이라는 한 사람의 살갗을 깊숙하게 거친 후에 '고독하게' 완성되었다는 점에 있다. 인간이 인간을 더 아름답게 돌보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우리 중 누군가는 고독하게 자신의 말을, 자신의 결여를, 그리고 상처를 다듬어야 한다. 오랜 시간 감내했던 외로움과 아픔이 '오직 그만이 지닌 아름다움'으로 포개지는 신비로운 순간이 있다. 그것은 '책'과 '글'이라는 매체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굴튀김으로 돌아온다면... 자신의 잡문집에서 <굴튀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하루키, 는 과연 장씨 자매님들의 책을 추천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좋은 글, 좋은 책에 담긴 본질은 깊은 곳에서 통하고 있는 것일지도. 아무튼 이 책은 더 널리 읽혔으면 하고, 읽혀나갈 것이다. 나도 장씨 자매님들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강추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나는 어깨 언저리에서 어렴풋하게 굴튀김의 조용한 격려를 느낀다. 그것은 결코 신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굴튀김은 일종의 소중한 개인적 반영이니까.


그리고 숲속 저 깊은 곳에서는 누군가가 싸우고 있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나는 혜정이와 함께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혜정이의 장애가 그 자체로 부정적이지 않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인생을 살아갈 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장애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약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약점이 반드시 불행한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약하다는 것을 단순히 취약한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약하다는 것은 그저 연약하다는 뜻일지 모른다. 연약하다는 것은 삶을 이어나가는 데에 섬세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떤 계절에 어떤 지역에서만 아주 잠시 피어나는 꽃들처럼 말이다. 연약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세상을 늘 섬세하게 바라보는 연습이다. (95페이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지 않는 세상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친절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그들은 가끔 만나는 장애인들에게 마음을 다해 친절을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대개 그 친절은 과장되고 부자연스럽다. 친절을 위한 친절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하지만 정작 왜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에게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지 이유를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불쌍해서‘라고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눈치로 안다. (164페이지)

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다만 그저 아주 어릴 때부터 혜정이가 내 곁에 있었기에 이 세상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나는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과 함께 지내는 법을 전문가에게 특별히 배운 적이 없다. 그저 혜정이와 함께 성장하면서 우리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알게 되었고 일상의 순간순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의사소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지내왔을 뿐이다. 함께 지내는 접점이 많아지는 것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폭이 넓어질 수 있다. (18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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