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시계공 1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네이버카페 '전투적 책읽기'의 전투적 독서 모임의 회원 한 분께서 올리신 글을 발췌해 온 것입니다.
(저는 서평이라기보다는, 눈먼 시계공을 다 읽어도 풀리지 않는 의문 점들이 있어
몇가지 질문을 추려 제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스토리텔링을 해보았는데, 본서를 읽은 후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카페에서는 체계적인 책읽기와 페이퍼작성, 토론 메이트 시스템을 구축하여 독서모임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독서모임 대원들은 같은 책을 읽고도 저처럼 스토리텔링을 하기도 하고,
요약을 하기도 하며 관계도, 마인드맵 등으로 도식화를 시키기도 합니다. 
저희 카페에 오시면 임계량 도서목록뿐만 아니라 책에 관한 많은 정보 및 스토리텔링 자료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함께 할수록 플러스가 되는 gathering plus 입니다.
<http://cafe.naver.com/gatheringplus>
++++++++++++++++++++++++++++++++++++++++++++++++++++++++++++++++++++++++++++

이 소설의 무대는 2049년. 지금으로부터 30년 뒤의 서울이 주 배경이다. 지금의 글로벌화가 극도로 진행되어 국가의 개념이 무너져 있고, ‘특별시’라는 행정단위가 등장한다. 지금의 신자유주의가 세계경제의 국경을 무력화 시키는 것을 뛰어 넘어 정치적 국가 개념도 이미 없어져 버리고 세계는 하나의 큰 덩어리, 그 안의 무수한 많은 도시, 그리고 거대한 ‘특별시’가 되어 있다.
과학의 엄청난 발전 속에 인간을 돕는 로봇들이 곳곳에 파고 들어 있다. 로봇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에게는 위험한 곳의 조사나 세밀한 기계 조작 등을 담당하던 기계덩어리 로봇이 아니다. 프로그래밍에 따라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거의, 아니 어쩌면 더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기자, 앵커, 애인, 아내 등등. 심지어 성관계 까지도 가능하다. 그뿐인가? 지금 인기 있는 K1 격투기도 ‘배틀원’이라는 로봇간의 격투기로 대체되어 있다.

자동 운전 조작으로 자동차 주행이 가능한 도로. 큰 사고로 몸을 심하게 다쳐도 인공 팔, 인공 근육 등으로 대체가능. 인공비와 인공눈 등에 의한 기후조절. 가상 세계를 통한 과거로의 기억여행. 머리에 장착해서 쾌감을 극대화 시키는 칲.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진 듯 보이는 미래의 세계. 하지만 그렇기에 어둠이 더 깊어 보이는 건 나만일까?

‘당신의 추억을 팝니다’란 광고를 보고 ‘미성여자고등학교 동네 한 바퀴’ 사이트를 애용하던 박열매는 가상세계에서 폭력을 장난스럽게 사용하며 즐기던 패거리들에게 2시간에 가까운 고통을 받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딸 노민선은 복수극을 펼치고, 그 뇌 중 하나를 글라슈트에게 이식하여 인간의 분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이 책은 나에게 너무나 힘겹게 다가왔다. 과학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잘하지도 못 했기 때문일까? 큰 줄거리 외, 어려운 용어나 설명, 과학적 근거나 방법, 뇌에 관한 설명 등이 너무나 어려웠다. 하지만, 너무나 가깝게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현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런 류의 영화를 – 아이로봇 – 보며 느꼈던 두려움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다. 너무나 무서웠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쾌락과 편안함 만을 위해, 과학과 자연을 사용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부작용. 이 책은 그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소설로써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소설만은 같지 않은 현실감에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동물에 비해 머리가 뛰어나고, 불과 장비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잃어가고 있다. 책 속의 노민선은 복수와 자신의 연구를 위한 잔인한 연쇄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그리고는 퍼그가 불쌍하다며 하염없이 운다. 죽은 아버지를 붙들고 또 하염없이 운다. 그 눈물의 진의는 무엇이었나? 노민선은 정말 은석범을 사랑한 걸까? 모든 것에 의문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만큼 그 현실성이 강했기 때문이다. 전문적 용어와 그에 따른 친절한 설명이 조금 지루하기도 했고 어렵고 머리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써진 이런 책이 참으로 신선하다.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너무나 현실적인 묘사와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써진 그 소설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 책 이후로 나는 개미를 얼마나 무서워 했는지 모른다. 또, 한 동안은 로빈 쿡의 의학을 바탕으로한 소설 ‘바이러스’, ‘브레인’ 등의 소설에 흠뻑 빠졌던 적도 있다. 의사이기도 한 작가가 쓴 소설을 읽으며, 강한 현실성과 인간의 잔인성에 소름 끼쳤던 기억이 있다. ‘눈먼 시계공’을 읽으며 느낀 감정도 그것들과 흡사하다.

우리는 정말 이런 세상을 꿈꾸며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 모두가 눈이 멀어있는 것 같은 느낌. 나만의 느낌일까?
은석범이 ‘눈보라마을’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 기다려도 가지 않으려 애쓰던 그 곳으로 향하는 그의 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을까?

[출처] 눈먼 시계공 / 2010, 06,12 / 노애희 (전투적 책읽기) |작성자 노애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저자는 절망적인 88만원 세대의 상황과 끔찍한 전망을 포장 없이 솔직하게 까발려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고 병 나게 했지만, 그래도 여러 해법들을 제시함으로써 약도 같이 주었다.  

추상적인 논의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20대 창업 지원금’장려 라든지, 농업 공무원 채용 등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준다. 게다가 이들 중 몇 개는 이미 국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바로 실시하면 된다거나, 이미 실시한 적이 있다는 등의 긍정적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실컷 대안을 제시해 놓고서 ‘우리나라 공무원 부패도가 생각보다 심각해서인지 장기적으로 안정화되지 못하고 사회적 반발에 부딪혀서 실패하게 되었다.’라든지, (사교육을 경감시키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앞에서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만 경감시키더라도’ 일자리 나누기 방식은 잘 돌아갈 수 있다든지, ‘이정도 방안은 이미 여러 경로로 제시되었는데,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에 가깝다’는 식의 제안은 조금은 무책임해 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저자가 제시한 대부분의 내용은 국가(정부나 지자체)차원에서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인데, 정부가 어떤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듦으로써 세대간 연대 의식을 고양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뿐인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고? 그런데 옆에서 다른 죄수가 열심히 토플책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왜 10대 들이 지식 1세대가 되기를 기대하는가. 88만원 세대도 지식 1세대가 될 수 있고, 그 것은 X세대, 386세대, 유신세대 모두 마찬가지다. 난 짱돌 대신 책을 집어 들고, 다안성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승자가 되기 위함도 아니고, 적자가 되기 위함도 아니다. 동일한 경험은 없어도 동일한 감동으로 세대 간 연대를 이끌어 내는 협력자가 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을 주는 그림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함정임.박형섭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저는 서평이라기보다는 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는 주인공이 '행복을 주는 그림들'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설형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해보았습니다.

(http://cafe.naver.com/gatheringplus 에 오시면 ‘독서스토리텔링’ 게시판에서 멋진 그림과 함께 더욱 생생하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네이버카페 '전투적인 책읽기'에서 체계적인 책읽기와 페이퍼작성, 토론 메이트 시스템을 구축하여 독서모임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독서모임 대원들은 같은 책을 읽고도 저처럼 스토리텔링을 하기도 하고,

요약을 하기도 하며 관계도, 마인드맵 등으로 도식화를 시키기도 합니다.

저희 카페에 오시면 임계량 도서목록뿐만 아니라 책에 관한 많은 정보 및 스토리텔링 자료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함께 할수록 플러스가 되는 gathering plus 입니다.


++++++++++++++++++++++++++++++++++++++++++++++++++++++++++++


한 달 전부터 수면제를 구입했다. 하루에 한 알씩. 몇 달 째 이어지고 있는 오래된 연인과의 권태도 너무나 괴롭지만 함부로 끝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남친에게 자살 하겠다 으름장까지 놓아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나의 변덕스러움에 그도 점점 지쳐가는 듯하다. 하루에 한 알씩 사 모을수록 마음은 더욱 굳어졌고, 결국 한달 동안 나에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행복하지 않은 이런 삶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수면제 30알을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찾아올 사람은 없었지만 혹시나 남친일까 하는 마음에 현관으로 갔다.


“누구세요? 길도씨?”


“박은희씨 계시나요? gathering plus에서 주최한 『행복 전시회』에 초대되셨습니다.”


초대권을 받아 열어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고 장소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림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행복전시회’라고 지었을까 싶어, 나의 조용한 의식(儀式)은 하루 미루기로 하고 전시회장으로 이끌렸다.


전시회에 도착하니 전시장은 커다란 원형건물이었다. ‘행복의 일생’이라는 문으로 들어서자 왼쪽부터 빙 둘러 관람하도록 되어있었다. <아침-행복의 탄생관>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뒤에서 어떤 여자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박은희씨? 전 이 곳의 책임자 정진영이라고 해요. 저희 『행복 전시회』의 관람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희 전시관은 크게 5개의 관으로 나누어져 있고, 원형 건물이라 왼쪽부터 쭉 한 바퀴 도시면 됩니다. 아, 각 전시관들은 어떤 특별한 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곳에서 행복을 좀 더 가까이 만나볼 수 있으실 거 에요.^^ 각 전시관의 바깥쪽 벽면으로 작품이 둘러져 있고 안쪽 벽면으로 그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답니다. 그럼 행복한 관람되세요.”


<아침-행복의 탄생館>


제1관인 <아침-행복의 탄생관>에 들어서니 고흐, 클림트 등 너무나 유명한 화가들의 유명한 작품이 걸려 있어서 반갑기는 했지만 절대 작품을 보면서 행복해지는 정도는 아니었다. ‘뭔가를 기대한 내가 바보지. 행복은 역시 나하고 어울리지 않아.’ 이처럼 급 실망함과 동시에 그냥 갈까 싶었는데 안쪽 벽면에 있는 방이 궁금해졌다. 안에 뭐가 있는 지만 보고 갈 요량으로 철재 손잡이를 슬그머니 돌렸다. 방은 어두웠지만 가운데 벽에 작품 하나가 낮게 걸려있었고 자그마한 조명 네 개가 작품의 모서리에서 작품을 향해 비추고 있었다. 그림 앞에는 의자 하나가 마련되어 있기에 살며시 가서 앉았다.


그 작품의 이름은 <티볼리의 작은 폭포>였다. 그림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앉아서 보니 좀 더 여유가 생겨 천천히 감상하고 있었는데, 그림 밑에 한 줄의 질문이 눈에 띄었다. ‘숨은 행복이 보이는가?’ 숨은 행복이 보이냐고? 이곳에 행복이 있다고? 그냥 일상의 한 단면을 포착했을 뿐인 것 같은데. 그림을 조금 더 구석구석 뜯어보았다. 푸른 하늘과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들, 저 뒤로 폭포가 보이고 오래된 성벽위로 빨래를 널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들과 아래에서 시커먼 동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과 그 외 많은 사람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왜 ‘숨은 행복’이라고 했을까?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행복한데 보기엔 너무 안 행복해 보여서? 그 행복이 너무 작아 눈에 잘 안 띄어서?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숨어 있다가 언제라도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건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만, 답은 내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행복의 충만館>


들어왔던 문으로 다시 나가려고 보니, 바로 옆에 <점심-행복의 충만관>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 문득 다음 관에는 어떤 그림이 있을지 궁금해져서 마저 다 보고 나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밖으로 나오자 아침관에서와 같이 바깥쪽 벽면으로 작품이 쭉 걸려있었다. 이번에는 작품 하나하나 조금씩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프랑스의 첫 국경일을 맞이한 <몽토르게이 거리>의 모습은 행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였다. ‘이 안에 당신이 보이는가?’라는 질문을 읽고 내가 저 곳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자 얼마 안가 몸에 소름이 돋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과 감격의 눈물, 그것은 또 하나의 행복이었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었다.


샤갈이 그린 <농부의 삶>이라는 그림은 몽환적이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읽고 그림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말에게 풀을 먹이면서 행복해하는 농부의 모습 위로 따뜻한 집 안에 모여 앉아 얘기하는 남자들, 흔들거리며 가는 4륜마차, 춤추는 부부의 모습이 농부와 말을 감싸고 있었다.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가? 나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집은 물론 차도 있고, 애인도 있는데?


<푸른 바탕 위의 인물>은 보자마자 기분이 이상했다. 얼굴은 활짝 웃고 있는데 팔 다리가 없었다. 질문을 보니 ‘당신도 충분히 행복의 지능을 계발하였는가?’였다. 행복의 지능? 너무나 어색한 단어였다. 행복이 지적 능력이란 말인가? 지적 능력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계발할 수 있는 것인데, 행복이라 함은 관계된 감정이고 우연한 기회가 아니었던가? 팔 다리가 없어 나보다도 훨씬 불행해야 할 이 사람이 웃고 있다면, 나도 노력하여 행복의 지능을 계발한다면 얼마든지 웃을 수 있는 것인가?


이제 마지막 작품을 보러 방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밖에 있는 작품들과 방 안에 있는 작품들은 뭐가 다른 거지? 더 비싸기라도 한가?


이번에도 천천히 의자로 가서 앉았다. <갑판 위에서>라는 제목의 프리드리히 작품이었다. 황혼의 따뜻한 빛에 젖어 젊은 두 남녀는 갑판 위에 앉아 멀리 보이는 도시를 함께 응시하고 있었다. 얼굴 표정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두 손 꼭 잡은 뒷모습만 보아도 그림 속의 커플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너무나 부러웠다. 예전엔 나도 충만한 사랑을 느끼며 행복했었는데.. 아, 나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지금은? 길도씨와 헤어진 것도 아닌데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눈물이 날 것 같아 더 이상 그 그림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질문도 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버렸다.




<저녁-행복의 황혼館>


<저녁-행복의 황혼관>으로 들어섰다. 처음 마주한 그림은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이었다. 나란히 있는 세 커플 각기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무슨 상황인지 쉽게 보이지가 않았다. ‘행복이 사라져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보고, 즐거웠던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의 끝나갈 무렵이라는 것을 유추했다. 첫 번째 커플의 여자는 아쉬움에 발을 못 떼고, 두 번째 커플은 그들의 짧은 행복이 끝나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세 번째 커플의 남자는 그 사실을 외면, 거부하는 듯 보인다. 꺼져가는 행복 앞에서 내가 생각한 자살이라는 방법은 가장 우스워 보이는 세 번째 남자의 태도가 아닌가?


<에나와 베르트하이머>라는 두 자매를 그린 작품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두 자매의 아름다운 자태와 평온한 미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수록 어딘가 모르게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행복이 주는 미묘한 고통이 두려운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행복이 고통을 주는가? 그러다 문득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창 사랑에 빠져 이 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행복이 두렵고 슬펐던 적이 있었다. 그 행복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행복조차 외면하려 했던 내가 생각났다. 두 자매는 내게, 행복이 사라지는 고통을 외면한다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종 전까지와는 달리 너무나 어두운 분위기에 흠칫했다. 조명이 어두워졌나 싶었지만 그 것은 순전히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였다. 다가가 의자에 앉으니, 내 앞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흔들의자에 마주 앉아 있었다.


너무나 이상했다. ‘행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고통이라기 보단 우울에 가깝고, 절망이라기보단 허무에 가까운 눈빛. 슬픔의 오랜 지속으로 아예 무감각 해져버린 그런 표정.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당신도 슬픔의 유혹에 굴복했는가?’ 그림 속의 여자가 나에게 묻는 것만 같았다. 아니 이 여자는 나의 모습 같았다. 나는 슬픔에 굴복한 것인가? 슬픔의 유혹에 넘어간 것인가? 이에 저항하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밤-사라진 행복館>


<밤-사라진 행복관>으로 들어섰다. 다음 그림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온몸이 <붉은 인물>이 정신 없는 배경을 두고 가만히 서있었다. 스탈린 정권의 억압 아래 괴로움 속에서 살아온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니 조금씩 이해가 됐다. 피투성이가 된 듯한 여인의 모습은 강력한 고통의 느낌을 주지만 그와 동시에 그에 맞서려는 굳건한 의지 또한 느껴진다. 주변의 일그러지고 왜곡된 이미지는 절망적 상황을 한층 강화시켜준다. ‘불행 속에서 주저앉을 것인가?’ 이 붉은 여인이, 앞서 붉은 치마를 입고 흔들의자에 앉아 울고 있던 여인이 우뚝 선 모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코에센의 눈 내리는 거리>에서 두 여인이 걸어가고 있다. 표정 없는 여인들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차갑고 암울하다. ‘괴로움에 길 잃어 방황하고 있진 않은가?’ 이 여인들이 혹한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길 잃고 방황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추위와 어둠 속에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방에는 그 유명한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이 있다. 그는 시련 앞에 마주 서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넘어, 그것과 맞서 싸운다. ‘행복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야곱은 자신의 가족들을 강 너머로 건너게 도와주고 혼자 남아 천사(불행)에 맞서 싸운다. 엉덩이뼈가 부러졌는데도 굴하지 않고 천사에게 복을 요구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까지 얻는다. 나는 행복을 얻기 위해 무엇을 했지? 조금이라도 상처 입을까 잔뜩 몸 사려가며 수많은 기회들을 지나쳐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 그랬다. 엉덩이 뼈 부러지는 것이 두려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포기했던 거다. 내 스스로가 항상 행복을 흘려보냈던 거였다. 평소 잘 울지 않는 나인데 자꾸만 울컥하여 눈물이 핑 돈다. 마지막 <새벽-행복의 귀환관>으로 들어섰다.



<새벽-행복의 귀환館>


<팔라바 바닷가>에 한 남자가 서있다. 그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힘이 넘친다. ‘왜 되찾은 행복은 막 탄생하는 행복보다 더 강하고 매혹적인가?’ 아, 이 남자는 한동안 절망과 불행 속에 있다가 행복을 되찾았구나. 나도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가 너무 감사한 줄 모르고 사니까 행복이 일부러 멀어졌던 것은 아닐까? 되돌아 왔을 때 보다 환영 받고 싶어서.


<은으로 만든 물컵>과 사과 세 개가 놓여져 있다. 이건 평범한 정물화잖아? 사과 세 개로도 행복 하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질문을 보았다. ‘명상과 행복, 둘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처음엔 질문이 잘못 붙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림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꼭 명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명상과 행복은 어떤 관계지? 명상을 하면 행복해지는 건가? 아니, 이 두 관계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아닌 것 같다. 명상은 과거를 돌아보는 반성도 아니고,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도 아니다. 현재를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현재에 있기 때문에 명상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드디어 마지막 방이다. <돌아온 탕아>가 무릎 꿇고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이야기 또한 유명하여 잘 알고 있었지만 그림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상속받은 재산을 챙겨 멀리 도망갔다 모두 탕진하고 돌아왔으나, 그의 아버지는 벌을 내리고 비난하기는커녕 반가움에 제일 먼저 달려 나간다. 어쩜 저렇게 너그러운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아들의 죄를 어떻게 저리도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이 순간, 두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난 누군가를 용서해본 적이 없다. 용서를 구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분명 아버지가 더 행복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탕아가 부럽다. 나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딱히 무엇을 용서받고 싶은 지, 누구에게 용서받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회개하고 싶다. 모든 것을 용서받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마구 쏟아져서 제어할 수가 없다. 내가 왜 이러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갑자기 문자가 왔다. 매너모드를 해놓지 않아 문자소리가 텅 빈 방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은희씨, 전시회 잘 보고 있어? 오늘 하루 은희씨를 위해 빌렸어. 작품 선정도 내가 했고 말야. 어때? 근사하지? 천천히 보고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행복이 돌아왔다. 아니, 투명망토를 뒤집어쓰고 내 곁에 항상 숨어있던 놈이 드디어 망토를 벗어 던지고 내 앞에 자신을 다시 드러냈다. 다시는 널 모른 채 하지 않을게. 고마워 곁에 있어줘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전투적 독서 모임의 임계량 도서목록 중 하나인 '천개의 공감'을 읽고 요약한 내용입니다.

     

<자기 알기

 

+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싶다면(15p), 정신분석에 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알면 도움이 된다. 단 그 지식이 치료를 하는데 방어기제로 작용하지는 않도록 한다. 또한 의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가장 잘 감지할 수 있는 사람, 스스로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자신뿐이다.

+ 연장자나 권위적인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한다면(37p), 당신은 그들에게서 부모의 이미지(동시에 자신의 내면에도 억압되어 있는 기질)을 보고, 부모에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불편한 감정들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치유의 핵심은 직면하기’. 상사의 모습이 곧 부모의 모습이며 또한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부모와 대화를 통해 억압된 분노를 꺼내 온몸으로 느껴본다.

+ 늘 이해할 수 없는 죄의식에 시달린다면(65p), 당신이 생각하는 자기 이미지자아 이상(자기가 되고자 하는, 자기에 대한 이상적인 개념)’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어 있는 자아 이상을 끌어내려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 남편이 전에 만났던 여자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면(72p), 당신의 남편은 강제로 박탈당한 지난 날의 사랑을 미화하고 결정화시켜 환상의 영역에 편입시키고, 그 세계에서 혼자 꿈 꿀 때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내면의 허구 세계로 스스로 침잠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생애 초기에 형성된 허구적 내면세계는 중년기로 접어들면서 대체로 자각되고 정리되지만, 남편이 현실세계에서 만족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준다면 그 시기를 좀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 양면적인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낀다면(58p),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양가감정)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그것은 긍정한다. 내면에 억압해둔 어둡고 위험한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밝고 건강한 의식 속으로 받아들이면(양가감정을 통합하면), 자아가 강해짐은 물론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된다.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존엄하고 사랑 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게 되면, 그때 진정한 마음의 치료가 이루어 진다.

+ 작은 일에도 너무 큰 상처를 받는다면(23p), 그것은 당신이 타인에게 지나친 기대와 의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상처를 받을 일도, 타인을 비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 엄마의 상처를 돌봐드리고 싶다고 느낀다면(51p), 그 또한 엄마처럼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엄마를 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지금 그대로의 엄마를 인정하고 엄마와 관계 맺는 자신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 자신감이 없고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한다면(30p), 그것은 자아가 약하다는 반증이다. 유년시절에 박탈당한 애착의 감정을 부모 혹은 대신할 수 있는 존재 통해 자아를 강화시켜야 한다.

+ 겉으로는 부족한 점이 없는데도 행복하지 않아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면(79p), 꿈 일기를 씀으로써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고, ‘독서·역할 모델의 설정·종교를 통해 동일시 과정을 지나면 현실의 참자기를 바로잡을 수 있다.

<가족 관계>

 

+ 아버지로서 큰아이와 관계를 맺는 데 갈등을  느낀다면(97p), 당신은 큰아들에게 자기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버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고,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는 버릇을 여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훌륭하게 영위한다면 그로써 충분하다.

+ 딸에게 유독 폭력적인 엄마라면(89p), 당신이 성장과정에서 해소하지 못한 엄마에 대한 감정이 억눌려 있는 건 아닌지, 당신의 부족한 점을 딸에게서 발견함으로써 폭력의 충동이 이는 건 아닌지 살펴본다.

+ 언니의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거나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104p), 이는 당신이 언니에게 부모 이미지를 투사하면서 심리적·정서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더 큰 힘을 쥐고 있고 내가 그에게 휘둘리는 부수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 애정이 결여되고 폭력이 난무하는 역기능 가정 속에서 고통을 느낀다면(111p), 이는 당신이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기대를 접고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사랑하는 연인과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125p), 당신이 연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삶의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삶의 주체성을 갖지 못하면 자신이 약하다고 느끼게 된다. 약자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무시당한다고 느끼고 상처를 받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살피고 배려하기를 바랄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스스로에게 해줌으로써 주도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이끌어가야 한다.

+ 남편이 집에서 가사분담은커녕 소파에 누워 TV만 본다면(131p), 무계획적이고 게으르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만성 우울증이 아닌 지 의심해보고 사랑을 통해 남편의 억압된 내면의 분노를 돌봐준다.

+ 배우자에게 중독 증세가 있다면(138p), 배우자를 탓할 것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결핍된 숨겨진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대체로 관심과 사랑의 결핍으로, 따로 시간을 내어 함께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 오랜 별거 생활로 인한 아내와의 갈등으로 이혼을 고려 중이라면(144p), 우선 아내는 지배하고 통제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성의 성은 정서적인 신뢰와 애착이 충분히 형성된 후에야 상대를 향해 열리기 때문에 아내와의 꾸준한 대화를 통한 동등한 관계로서의 친밀감을 형성한다.

+ 전 남편 혹은 애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아 괴롭다면(151p), 이는 오히려 정상적인 애도과정으로 당연히 거치게 되는 자연스런 감정임을 안다. 분노, 부정,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는 애착을 박탈당한 사람이 겪는 감정의 단계로, 이별의 고통은 회피할 게 아니라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과 사랑>

 

+ 의심과 집착, 질투 등의 감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망친다면(163p), 그 감정은 생애 초기에 체험한 왜곡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할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모든 감정을 상대에게 쏟아 붓거나, 외면하고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을 찾아 위안 받으려 하지 말고 지그시 느끼다 보면 내면의 감정들이 점차 완화된다.

+ 쿨한 연인관계를 맺고 싶다면(167p), 당신은 사랑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사랑의 황홀기를 지나 현실적인 갈등기가 왔을 때 이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아가 강해지고, 이후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이끌 수 있다.

+ 이성과 아예 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관계에 집착한다면(173p), 사랑에 대한 확신, 즉 대상 항상성이 내면에 확고하게 형성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확신이 없기에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고 집착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남성에게 감정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나쁜 남자/여자에게 끌리고 벗어날 수 없다면(188p), 당신은 사랑한다면 상대방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환상을 가진 사람이다. 나쁜 상대방을 바꾸려는 태도는 버리고 그런 이들을 불러들이는 자신의 기질을 개선해야 한다. 피학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이 아니다.

+ 사랑할 때 잔인하고 파괴적으로 행동한다면(195p), 3~4세 무렵에 심한 좌절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발달 단계에서 3~4세 무렵은 아이가 엄마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게 많아지면서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심하게 가학적 성향을 드러내는 시기다. 성장기 동안 어머니를 향해 표출되지 못했던 분노와 공격성이 연인을 향해 표출된 것이다. 어머니와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당신의 내면에 잠재된 분노를 다스리고, 화가 날 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이별의 후유증이 너무 오래간다면(202p), 그것은 당신이 이별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이별을 통보 받는다고 해도 단지 하나의 관계가 끝났을 뿐이며, 당신은 여전히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이별에 서툴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209p), 우선 이별을 통보할 때는 상대방을 만나 얼굴을 보면서 이별의 뜻을 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상대방의 자기애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 성욕이 없거나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한다면(215p),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자신만의 성의식을 정립해야 한다. 성욕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이를 깊이 억압해두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니 마음의 치유를 통해 자연스럽게 회복시켜야 한다.

+ 남편이 여자 서비스를 받아서 충격을 받았다면(229p), 그 배신감은 당신이 만들어 놓은 순수한 환상속 남편에 대한 것이다. 현실 속 남자의 성욕은 여자의 그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관계 맺기>

 

+ 화를 내거나 참는 일이 불편하다면(253p), 우선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 동시에 내면의 억압된 분노를 자기에게 표현하고, 타인에게 표현하고, 현실에서 표현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261p), 당신은 만성 우울증 상태일 확률이 높다.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욕망은 사실 타인에 대한 살해 욕망의 뒷면이다. 분노의 진정한 대상이 누구인지 찾아보고 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의식의 표면 위로 분노를 꺼내어 다스린다. 동시에 자신의 그러한 상태를 인식하고, 친구를 만나거나 운동을 하여 마음을 의도적으로 밝고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긴장되어 있다면(277p), 유아기의 불안감이 적절히 보살펴지고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을 느낄 때마다 그것은 아기 때 만들어진 감정일 뿐 아니라 아기 때 만들어진 환상이나 착오이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느끼는 미숙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인이 된 당신은 스스로를 달래며,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한 아기를 돌봐야 한다.

+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다면(284p), 그러한 생각은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는 시기심과 나르시시즘이 결합된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최고란 없다. 좀 더 무거운 책임감이 요구될 뿐이다.

+ 나르시시즘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면(291p), 그 것은 유아기 때 형성된 나르시시즘이 깨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세상에 맞추는 일은 세상에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을 의미한다.

+ 상사가 치사하고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장생활이 유난히 힘들다면(297p), 직장 상사의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당신은 수직적 위계관계와 비감정적이고 직접적인 의사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이를 고쳐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이러한 갈등은 대개 여자들이 많이 겪게 되는데, 이는 성장 단계 중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남아와 여아가 아버지를 상대로 겪는 태도의 차이(남아는 복종, 여아는 유혹)로 인해 남자가 여자보다 수직 구조에 더욱 익숙하기 때문이다.

+ 내적·외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하다면(304p), 과거와 현재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어떤 일에 도전하여 성취감을 맛보는 과정은 내적 자신감을 고양시켜주고, 외적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하거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는 방법도 있다. 

+ 아니오란 말을 잘 하지 못한다면(310p), 당신이 거절했을 때 상대방도 당신을 거절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승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부당한 요구에 중립적인 표현으로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는 것이 좋다.

+ 직장 내에서 왕따를 당해 괴롭다면(317p), 우선 당신을 왕따시키는 그 무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들이 무리를 짓는 심리적 이유는 나약함이다. 왕따를 당하는 사람보다 왕따를 시키는 사람들이 심리적 취약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나약함을 이해하고 나면 그들의 행위에 대해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그들이 조성하는 소외감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중년의 나이에 삶의 목표와 활기를 잃었다면(325p), 당신은 먼저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하여야 한다. 중년이라 함은 사춘기에 형성된 정체성은 더 이상 현실에서 적용할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 형성된 정체성에 맞추어 삶의 목표 또한 진정한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도록 수정해야 한다. 물질적 기부나 장기 기증과 같이 공동체에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환원하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있으면 삶을 즐겁고 단출하게 영위하게 되며, 타인에게 몹쓸 짓을 하거나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게 된다

 

 현재 네이버카페 '전투적인 책읽기'에서 체계적인 책읽기와 페이퍼작성, 토론 메이트 시스템을 구축하여 독서모임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독서모임 대원들은 같은 책을 읽고도 저처럼 요약을 하기도 하고, 스토리텔링을 하기도 하며 관계도, 마인드맵 등으로 도식화를 시키기도 합니다.  

http://cafe.naver.com/gatheringplus 에 오시면 임계량 도서목록 뿐만 아니라 책에 관한 많은 정보 및 스토리텔링 자료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함께 할수록 플러스가 되는 gathering plus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여운 미니화분♡공기정화식물♡웰빙인테리어♡ 23종 택 1♡

평점 :
절판


5월4일에 주문했는데 오늘수령예정이네요..너무 심한거 아닌가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고객센터 2010-05-1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업체에서 직접 배송하는 기프트샵제품인데요. 당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선물 주문으로 주문량이 폭주하면서 부득이하게 출고가 지연되었다고 합니다.
대신 사과 말씀드립니다. 이후 상품평이 아닌 이용하시면서 불편하신 점은 1:1 고객상담을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