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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은 흐른다는 말, 참 당연하게 여겨 왔었다. '세월이 살같이 빠르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났다' 등의 그런 말들. 참 익숙했다. 그래서 아무 의심없이 '시간은 흐른다'를 진리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누군가 정했을 것이다. 하루는 스물 네 시간, 한 시간은 육십 분, 일분은 육십 초... 하루가 팔만육천사백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사실'로 여겨왔다.
선을 하나 그어놓고, a에서 b까지 라는 출발점과 도착점도 정해놓았다. 붙잡을 수도 없고 볼 수 조차 없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마음대로 길이로 표현되는 2차원적 '공간화'를 시켜서 그게 진리인 양 믿어왔다. a에서 b까지 라는 양 끝점이 존재하는 한, 현 위치에서 앞선지점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가 되는 것이고, 뒤에 있을 그 어느 지점은 '미래'가 되는 것이다.
박사는 80분동안만 기억할 수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 옷핀으로 메모를 양복에 고정시키고, 매일 아침 만나는 가정부에게도 '신발 치수가 몇 이지?'하는 동일한 질문을 반복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과거에 지나가 버린 무엇,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보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느끼는 이 모든 것들, '직감'...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허만하 시인의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라는 시집이 있다. 허만하 시인은 그 시집 전체를 통해서 생성과 소멸의 끊임없는 반복을 노래하고 있다. 생성, 그리고 소멸은 유한한 생명에의 허무 또한 담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처절한 니힐리즘으로 귀결하지 않는다. 그는 죽음으로 마치는 유한한 생명의 순환고리를 통해 무한히 이어지는 '생명'을 보았고, 그것이 쌓아온 '역사'를 읽는다.
박사가 말했던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으로 보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같이 시간에 쫓겨서 허둥지둥 살아간다.
째깍째깍 쉬지 않고 돌아가는 시계 바늘 뒤꽁무니를 쫓아, 과거에 하지 못한 일에 대해 자책하고, 이 순간에 후회하고 있으며, 미래에 대해 조바심내고, 알지 못하는 그 어느 시간에 해야 할 일을 계획 세우는 데 이 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모모는 회색인들에 대항해 '시간'을 찾으려고 하고,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역설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정말 소중한게 무엇인지, 무엇이 진리인지도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한채 그저 '살아가는 게 바빠서' 그렇게 '무언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 - 인간이 만들어 낸 하나의 인위적인 단위일 뿐이다.
어린 시절 아빠 차에 앉아서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면, 둥근 달이 우리집까지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어도 '시간이 흐른다'고 보는 건 그와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달이 따라오는 게 아니라 내가 움직인 것이었듯이,
시간이라는 것도 시간이 '흐른'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인 것이다.
데카르트는 cogito명제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정의내린 인간의 속성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 사유하고 있는 '현 존재'라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시간,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이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만들어낸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실상 80분의 기억만이 반복되는 박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유한하게 한정되어 있는 '유한선분'과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유한성분 속에서 그 본연의 속성인 '직선'을 본다.
직선이 안고 있는 그 고귀한 '무한성'을 본다.
"진짜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해."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