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지 않는다 - 도쿄대 병원 응급실 책임교수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원리
야하기 나오키 지음, 유가영 옮김 / 천문장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일종의 선입견이 있는데, 죽음에 대한 책을 문학가가 썼을 때와 철학자, 과학자, 의사가 썼을 때 대략 그려지는 결론이 있다. 특히 현직 의사가 죽음에 대한 글을 쓸 때 다른 선택을 하게 되면 논란이 일게 마련이어서, 시골 어느 이름 모를 의사도 아니고‘도쿄대학 응급실의 책임교수’라는 타이틀을 단 저자가 쓴 책이면, 아주 온건하고 덜 독선적이며 철학적인 느낌을 가미하여 쓴다고 해도 요로 다케시의 <죽음의 벽> 정도와 비슷한 내용이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은 죽지 않는다’라고 제목은 제법 센세이셔널하게 붙였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산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는 한 그가 죽어도 끝이 아니다, 라는 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웬걸. 등장하는 단어들이 심상치 않다. 빙의(정확히 이 단어를 쓰고 있지는 않으나), 임사체험을 비롯한 유체이탈, 기공 같은 대체의학, 신과 종교와 섭리, 전생의 기억과 사후세계(또는 내세)에서 온 마중현상, 영매를 통한 죽은 자와의 영적 소통. 그리고 무엇보다 이 단어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인정하는 임상사례나 본인의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그런 류의 이야기나 체험들을 증언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에 대한 소견을 물을 때, 한 결 같이 의사들은 ‘정신착란이라거나 심신미약 상태에서 경험한 환각’이라고 하거나 ‘아직 과학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입막음 해 버리니까. 그러니 이런 와중에 저자의 태도는 참 낯설고 특이하게 느껴졌고 한편으로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의사라고 해도 전공과목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의 고백에서도 드러나지만, 완치율이 높은 다른 과목과 달리, 응급실에서는 비록 뛰어난 의사로서 최선의 능력과 노력을 다할지라도 의료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더 자주 직면하게 될 테니까. 그 속에서 환자든 의료진이든 사람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섭리’를 인정하게 되고, 결국 오늘 아파서 누워있기 전까지는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리던 환자도,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던 의사도, 그 앞에서 겸손과 겸허를 배우게 된다.

저자는, 자연과학과 형이상학의 역할과 대상범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규명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주의적 맹신을 우려한다. 과학주의적 독단을 버리고, 종교적 감성을 이해하고 경의와 공감을 고백한다. 그렇다고 또 영적 현상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다. 영적 현상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을 체험하거나 보고 들음으로써 우리가 깨닫게 되는 그것이 본질인 것이다.

저자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에 사람은 죽지 않는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 기본 믿음에서, 깨달은 본질을 말한다. 만물의 섭리 앞에서 우리는 겸허하고 허심탄회하게 세계를 마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현재에 만족할 줄 알고,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함을 가지는 것.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생로병사에 대해 수용하는 태도를 가질 것.

우리의 영혼이 현재의 육체가 죽어도 또 다른 차원에서 살아간다고 믿으면, 무리하게 이 세상에서의 생을 연명하기 위해 악다구니를 쓸 필요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규칙이라고 받아들인다면, 현재를 보다 충실하게 살되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이타를 행하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 혹은 그가 거쳐 왔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죽음 앞에 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자 위로인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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