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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45호 2017.여름 - 사오싱 Ⅲ Shaoxing Ⅲ
아시아 편집부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보통 책을 읽을 때, 어떤 내용이냐에 관심이 최우선이고 그것이 한국작가가 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자동적인 구분 외에 ㅡ 물론 작가에 대한 정보를 더 알게 된다거나 내용상 특정 지역의 역사나 문화가 배경이 된다면 해당 문학이 어느 지역 소속(?)인지 인지하게 되겠지만ㅡ 그것이 유럽의 것인지 아시아의 것인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외국소설이라면 미국,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처럼 자주 더 쉽게 접해지는 문학에 길들여지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작은 영화나 제3세계 국가의 영화가 싫어서가 아니라, 대규모 배급사가 배급하는 영화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고 선택권이 그로 인해 제한받기 때문에 헐리우드 영화를 더 많이 보게되고, 선호하는 영화나 감독 또는 배우도 헐리우드의 것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각설하고. 이 책에 손이 갔던 것은 두 가지때문이었다. 하나는 고은 작가와 김형수 작가의 대담을 소개한 '고은 깊은 곳IV', 다른 하나는 박형서 작가의 작법을 넘겨다볼 수 있는 '나는 어떻게 쓰는가'.
예전에 읽은 김형수 작가의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에서 고은 시인과의 대화가 언급된 부분을 기억한다. 김형수 작가는, 문학은 존재의 저 뒤쪽 어디에 있는 것을 명명하는 것이고 작가는 무슨 가치를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세계의 무엇을 명명하는 자라며, 고은 시인이 “이름에는 저녁 석자 밑에 입 구자가 있다. 이름은 (중략) 어두울 때 명백히 존재하는 것이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의 명명에 의해서 의미를 되찾는다" 라고 하는 부분을 인용했었다. 삶과 문학(예술)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들의 삶과 작품에서 자신들의 답을 그대로 보여주는 두 작가에게 경외심이 들었었다.
해서 <계간 아시아>에서 두 분의 대담을 담았다고 하니 반가웠고 기대가 컸다. 아쉽게도 이번 여름호에는 두 분의 대담 중 마지막 일부만 소개되어 있다. 두 분의 대담은 지난 2016년 봄호(통권 제40호)에서부터 시작해 해를 넘기고 이번호에서 마무리되는데, 이번 호에서는 주로 고은 시인의 국제활동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 해외교류의 시작점부터 시인의 국제문학계에서의 높은 위상, 모국어가 언어의 장벽을 넘는다는 것에 대해서까지. 읽다보니 대담 끄트머리에 김형수 작가가 덧붙인 말대로 두분의 대담집이 단행본으로 묶여나와서 전체 내용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실려있는 모든 글이 그러하지만, 고은 시인의 시 몇편이 영어로 번역돼 실려있는데 이 또한 흥미로웠다. 계간 아시아에 담긴 글을 읽으며 문학에서의 번역이라는 것에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글을 잘 쓰는 법에대한 글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이번 호에는 박형서 작가가 본인의 글쓰기 비법을 공개했다. 작가에 따르면 서사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흥미와 낯설게 하기, 뒤섞기가 주요 전략이란다. 박형서 작가는 단편 하나를 완성할 때 보통 50일이 걸리는데 구상을 촘촘히 하는 데에만 30일을 쓰고 막상 집필은 2-3일을, 이후 잠시 손을 뗐다가 15일을 퇴고에 집중한다니, 집필을 저 정도에 마칠 수 있다는 건 무시무시한 디테일의 사전작업이 있다는 걸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 어떤 방법으로 멋진 글을 쓴다고 내가 그 방법을 쓸 때 바로 좋은 글을 보장받는 건 아니지만, 그런 방법들이 좋은 글을 만들어낼 때는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 초심자들은 달인을 만나 한마디라도 얻으려고 전국을 떠도는 것이겠지. 계간 아시아는 이번 호 뿐만 아니라 매 호 비슷한 구성을 갖고 있어서 이전 호를 찾아 보면 여러 작가들의 저마다의 글쓰기 방식을 -굳이 먼 길 나서지 않아도- 한자리에서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이 외에도 김인숙 작가의 중국여행기, 미얀마 작가와 터키 작가의 단편소설과 한국과 필리핀의 시들, 그리고 전문 비평가들의 서평 등이 실려있는데, 단행본이 아닌 이런 문학 잡지의 매력이라면, 처음에 선택은 내가 기존에 관심있던 작가나 호기심이 생기는 챕터 한편 때문이었지만, 먼저 이 흥미로운 부분을 얼른 맛본 뒤에 남는 다른 페이지들을 편하게 설렁설렁 훑어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이 그러하듯이. 명소들을 보기위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별책부록처럼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알려지지 않은 비경처럼 말이다.
계간 아시아 역시 기존의 내 선호에 어필하는 챕터를 읽어보려 펴들지만, 알지 못했던 아시아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다른 작업도 궁금해서 찾아보고 싶게 된다.
**이 글은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작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