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하고 다정하게 글쓰기를 건네는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제목만으로도 끌렸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출판사 어크로스의 사전서평단 공지를 스크랩해 두고서 한동안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흩어진 스케치 조각으로만 존재했던 글감을 지난 해 좋은 기회를 통해 멘토와 멘티의 도움을 받아 여러 챕터의 글을 완성한 경험이 있다. 그 뒤로 나의 ‘쓰기’는 잠시 멈춤 상태로 정체되고 말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했지만, 다시 들여다볼수록 부족함이 보이고, 그 다음 단계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다. 다시 쓰는 일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하면 글을 좀 더 잘 쓸 수 있을지 내적인 갈등이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던 참이었다. 사전서평단 모집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책 제목이 내내 어른거렸다. 며칠 후, 생애 처음으로 가제본 형태의 책, 정확히는 원고의 한 챕터 일부를 우편물이 도착했다.


# 쓴다는 것에 대한 ‘나로부터의’ 성찰

작가는 자신의 ‘쓰기’에 대해 성찰하는 것부터 책의 첫장과 머리말을 시작한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모두가 궁금한 질문일 것이다. 작가에게 쓰는 행위는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활자에 자신의(혹은 가상 인물의) 서사를 담고, 감정을 입히고, 작가만의 언어를 실어 독자에게 나르는 것일까.

“나는 입체적으로 존재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답했다. (...)
서사가 부재한 곳에 정보만 남아요. 나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써요.
하나의 정보로 존재가 납작해지지 않도록, 제가 자유롭기 위해서요.” (p.5)

어느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우리는 그러한 존재다. 저마다의 개성과 감정, 고유성을 갖고 있지만 사회에서의 우리 각자는 성별, 나이, 직업, 결혼 여부 등 기준 축을 중심으로 분류되고 정의되곤 한다. 때론 사회의 고정적인 관념이나 편견의 한 울타리 안에 갇혀 그 이상의 설명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책을 쓴 홍승은 작가는 “20여년을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온 나에게 오랜 편견을 벗겨내는 일은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때를 벗기는 일과 같았다. 글을 쓰고, 읽고, 다시 쓰며 내게 입혀진 말들을 벗었다. 사회와 사람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을 발견하면 밤을 새우며 파고들었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위로 받았다. 책에 내 경험을 셀로판지 대듯 겹치면서 편견에 왜곡되었던 내 경험과 감정을 재해석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일과와 교훈으로 가득찬 유년의 일기, 작은 일탈과 일기로 버텼던 사춘기를 지나, 현실 비판과 확신에 찬 주장의 글을 쓰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이후, 작가는 일상 속에서 ‘경험한 폭력을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진보적’ 언어로 해결보지 못한 문제가 쌓여 폭발하기 직전 페미니즘을 만나고 이전보다 훨씬 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쓰기에 집중한다. 첫 책 <<당신이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타인에겐 보이지 않는 일상의 폭력을 드러내는 페미니즘 에세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며 ‘나도 이제 말한다’에서 그치지 않고, 글쓰기 수업을 통해 독자의 감응을 주고 받는다. 개인 각자의 서사를 듣는 최종 수신자가 자신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두 번째 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를 집필했다.

# ‘함께 쓰기’

그림책 모임에 주기적으로 가는 것 외에 여전히 혼자 읽고, 혼자 쓰기에 익숙한 내게 작가가 지향하고 있는 집필공동체와 함께 쓰기는 새롭기도 하지만 어려운 지점이다.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던 시절, 타인의 글이나 작품에 대해 치기 어린 비판은 물론, 어느 책읽기 모임 중 합평에서의 섣부른 판단과 감정 교류를 통해 받은 드러나지 않는 상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도움이 된다고 나누는 말 중에는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의견 나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비평이 때론 서로에게 독으로 남겨지곤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함께 쓰고 논하는 집필 공동체의 힘을 강조한다. (물론 그 과정과 결과물들이 지금 이 책의 결을 살려주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글쓰기’ 수업에서 작가가 재정립한 ‘쓴다’는 동사의 의미가 남달리 다가왔는데, ‘타인의 글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에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에서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전공하지도, 배워본 적도 없지만 세 권의 출간 경험과 연재 경험을 기본으로 집필 노동자로서 글쓰기 안내서를 쓰면서 글쓰기에 겁내하는 동료 뿐 아니라 집필이라는 큰 목표를 앞두고 겁을 먹은 자신을 토닥이려고 글을 썼다고 한다.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 그 누구라도 쓰면 좋겠다는 바람과 글 쓰는 사람의 자격을 허물고 싶다는 마음 하나 만을 놓지 않고서 말이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나만 보는 글은 글쓰기가 늘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한 마음 근육이나 맷집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글을 다른 글쓰기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쓰기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쓰기에서 독자에게 읽히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꾸준히 쓸 수 있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따뜻한 지지와 진심어린 비평과 도움을 주고 받는 쓰기 공동체의 힘은 큰 가능성의 길일 것이다.

# 매혹적인 글쓰기의 진솔한 팁을 나눈 작가만의 레시피들.

내가 받은 가제본의 원고는 세 번째 챕터가 전부이지만, 전체적으로 큰 챕터와 상세 목차의 카피가 읽고 싶도록 자극을 주는, 꽤나 궁금한 글감으로 엮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부 -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쓰기, 2부 - 타인과 연결될 때 문장은 단단해진다, 3부 - 매혹적인 글쓰기를 위한 레시피 - 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3부에 집약된 목차들은 단순히 ‘글 잘 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에 담긴 목적과 의도를 염두할 때 글 속에 글쓴이의 생각을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한 작가만의 시선과 흔적이 느껴진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를 뽑아보자면 ‘고정감정’,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 ‘글 써지지 않을 때’ 이렇게 세 가지다.

/고정감정 의심하기/
작가는 합평 시간에 글쓴이의 강점을 찾고 고정감정을 의심하는 데 에너지를 쓴다고 한다. 글을 쓸 때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그저 흔한 감정으로 결론짓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게 된 연유를 깊이 사유하지 않고 쉽고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동정심이나 연민,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감정 등을 너무 당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당위적으로 써 내려가는 것 같은 상황들 말이다.

"글쓰기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맑은 길을 가로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뿌옇게 흐린 길을 더듬으며 내 위치와 감정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관성적으로 쉬운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잠시 제동을 걸어 일부러 길 잃기를 선택하는 게 쓰기의 과정이 아닐까. 내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거나 느낄 수 없는지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며 살피고, 첫 판단을 버리고 낯선 시선을 탐색해 가면서.(p.207)”

글을 쓰지 않으면, 그리고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밀한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마주친 문장이다. 쉬운 길은 없으니, 쉽게 가려 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더듬 더듬 짚어가며 고유한 감정의 결에 눈길을 주는 게 쓰는 자의 길 아닐까. 남들은 모를 수 밖에 없는, 의심하고 의식하지 않는다면 자신 조차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감정과 서사를 밝혀가는 일은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조금씩 구체화 될 것이다.

감정의 톤이 고르지 않고 들쑥날쑥한 날것의 초고를 써 두고 바로 고치기보다 차분히 시간을 두고 감정이 정제되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말씀을 내게 했던 동화 작가님 이야기가 내내 맴돌았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쉽게 드러내려 애쓰지 말고 허구로 떠오른 감정을 의심하고 의식하면서 차분히 나의 언어로 걸러진 감정을 다시 보는 일. 그것이 홍승은 작가가 말하는 쓰기의 실체일 것이다.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
‘글에 드러난 글쓴이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가 어떤지, 나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지 살피고 나누기. 공감하거나 감동하거나 새롭게 알게 된 상황이나 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나누기.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 문단, 사유 나누기.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전달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보충되면 좋을지 이야기하기’
(합평 방식에 대해, p.237~238)


앞서 나온 집필 공동체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작가는 “쓰는 이의 뼛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은 잘 읽고 듣는 공동체에 있다.”고 말하며 ‘잘 읽기’를 언급한다. 누구의 글을 읽을 것인지, 또 어떻게 읽을 것인지, 특히 합평 방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나누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경청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합평이 글쓰기에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에 대해 강조, 또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집필 공동체에서 나누는 합평 방식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내 감정,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내뱉는 비판이 아닌 진지함과 진정한 마음이 담겨져 서로의 합평을 존중한다는 원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이 도저히 써지지 않을 때/
“매일 쓰는 것도 좋지만, 하고 싶은 말이 올라올 때 쓰시는 것도 괜찮아요.”(편집자의 말)
“당장 쓰지 않더라도 외부와의 접점(영화, 책, 사람, 다른 작품 등)은 계속 유지하면 좋겠어. 그럼 나중에라도 쓰고 싶은 글이 생기지 않을까?” (집필노동자 동료의 말)
“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안 써질 때는 안 쓰는 수 밖에.”(홍승은 작가의 말) (p. 259~260)

“엄청나게 도움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욕심에 비해 빈약해 보이기만 하는 내 사유와 문장들, 그 괴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어깨에 힘을 팍 주다가도 이내 좌절하고 포기하게 된다. 무한 반복하는 좌절과 읽기와 쓰기의 굴레 속에서 한 번에 몰아치지 않고 차곡차곡 해나가는 힘을 기르고 싶다.” (p. 262)

1일 1글 쓰기를 작심한 적도 있고, 매주 글을 올리는 날을 정해 지속적으로 글을 쓰려 노력했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잠시 쉼표를 찍고 있는 상황인데, 작가 뿐 아니라 작가의 지인의 말이 왜 그리 든든한 위로와 응원으로 들렸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할까. 숨고르기와 충전이 필요할 때 주어진 만큼 비어진 시간을 즐기되, 세상과의 접점은 열어놓고 감각을 유지해 놓는 것. 내 식대로, 내 언어로 굳이 드러내자면 이런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특별히 애정하는 작가 목록은 덤이다. 글을 읽고 쓰는 루틴에서 작가로서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독자로서 독서를 탐미하는 팁도 처한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다. 다른 두 개의 챕터 속의 이야기도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글을 쓰기 전에 ‘쓰기’의 의미를 짚어보고, ‘글’ 속에서 자유롭고 투명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차분하고도 솔직하게, 흔들림 없는 자기 표현의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 남자가 잠든 밤. 기어코 이불 밖으로 기어나와 낮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요시타케 신스케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엄마 껌딱지 두 아들을 키우며 독박육아 참 서럽다고 했던 날이 언제던가. 한땐 치열하게 불만의 끝을 달리며 뾰족뾰족 일상의 연속이었는데. 작가의 일러스트 에세이 보며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보면 이젠 좀 여유가 생긴 걸까.

천재그림책작가답게 위트와 센스, 유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래도 참 열심히 육아에 참여한 열혈아빠 인정. 나 힘들다 버겁다 짜증만 냈지 사실 아빠가 외로운 건 잘 몰랐다. 아니, 알았더라도 거기까지 보듬어주기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던 일...


* 책 속에서 *

05 어른의 세계
어른이 되고, 또 아빠가 되고 나서 가장 놀라는 건,
주위 사람들의 생활이 상상 이상으로 제각각이라는 것.

사람 수만큼 평범한 일상이 있고, 현실이 있고, 이뤄지지 않은 희망이 있다. 그리고 당사자가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자기만의 깨달음과 기쁨도.

10 짐문제
어쩌다 휴일, 외출이 마냥 즐거운 아빠는 달랑 아기만 안고 나가려다 한 소리를 듣고 만다.
아내 "아직 하나도 준비 안 됐거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잖아?"
아빠의 '조금만'과 엄마의 '조금만'은 다르다.

14 꽁냥꽁냥하고 싶다
꽁냥꽁냥 놀고 있는 엄마와 아기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두 개의 눈동자.
가차 없이 거부당하고, 아빠의 외로운 밤은 계속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엄마가 지혜로운 거절법 레퍼토리를 늘리는 게 매우 중요할지도 모른다.

24 무엇보다 소중한 것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엄마 아빠의 인격을 붕괴시킬 뿐더러 모든 여유를 앗아간다.
그럴 땐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청소며 몸치장은 밤에 잘 자 주는 아기를 둔 엄마 아빠나 하는 거다.

26 재조정
가정은 평안한 곳. 피로를 풀고 자신을 회복하는 곳. 아빠들은 그런 환상을 품고 있다.

육아란 그런 아빠들의 환상이 한 번은 처절하게 깨지고,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27 용서하게 하는 힘
아기의 얼굴은 역시 사랑스럽다. 모든 걸 용서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기 때 사진을 목에 걸고 다니는 날'을 만든다면, 그날만은 모두 조금은 착한 마음이 되지 않을까.

38 시야
엄마의 시야에 아빠와 아기가 세트로 들어가면, 엄마는 아빠를 '육아맨'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더 크게 느끼지 않을까. 아빠는 되도록 엄마의 시야에 들어가는 위치를 잡도록 명심하자.

44 인생의 정점
내 주위 신동들이 하나같이 훗날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이며, 내 경험에 비춰 봐도 천천히 발전하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무리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인생. 그 눈높이에서 배우는 다정함과 유연함은 좋은 인생을 보내는 데 아주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45 고마움
육아에서 가장 무서운 건 돈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아닌 '고마움'의 결여다.

52 곁다리 같은...
육아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보조자, 곁다리 같은 느낌.
아빠가 된다는 건, 아빠가 아니고는 알지 못하는 특유의 '행복해서 더 외로움'을 안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55 아장아장 초보 아빠
'아빠로서의 완성'이란 게 있을까?
아장아장 걸어야만 보이는 것, 그걸 즐기는 게 어른이고 아빠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외롭고 쓸쓸한 풍경의 잔상이 아른거린다. 불빛이 켜진 도시 속에, 말할 수 없는 아린 상처를 감추고 돌아갈 곳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한 인간의 뒷모습이 보인다. 소설가가 끌어안고 눈길을 주던 무수히 많은 풍경의 조각들이, 작가 자신과 가족과 친구와 이름 모를 노인과, 사랑하는 그 어떤 것들, 그리고 활자 속의 또 다른 작가들의 뿌리에서 자라난 이야기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이 책을 읽고 남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밖에 답을 할 수가 없다. 요약된 단 하나의 문장이기보다는 저마다의 숨결이 담긴 풍경화의 이미지다.

 

“길고 긴 독서 끝에 남는 건 거대한 하나의 이미지다.”

(불가능한 아름다움, 294페이지)

 

무릎에 올라앉은 딸아이에게 아빠는 책을 만드는 거라고, 아빠의 살붙이들과 보낸 어린 시절과 고향과 고향 사람들이 담겼노라고 이야기 해주었다던 작가의 말에서, 늙어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겐 살갑지 못했던 외동아들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불혹이란 나이에 딸이 태어나던 날 손바닥으로 두 개의 의지가 지나갔다고 고하는 대목에서 작가 역시 남자에서 아버지로 제 자신도 새로 태어났을 거라고 헤아려본다. 온 마음을 다해 딸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을 떠올리면 작가 또한 딸바보가 아닐 리 없고, 딸도 마찬가지로 아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랑스러운 아이일테니 언젠가 아빠의 이야기를 읽어주리라는 희망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말을 건네고 싶다. 나름의 언어와 생각으로 아빠의 말을, 활자로 남긴 글을 읽어줄 피붙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지.

 

[1부, 절망을 말하다]를 채우는 글들에서 낯설면서도 낯익은, 이해할 듯 하다가도 아직은 어려운 풍경들을 본다. 각각의 주제별로 단편 단편 이어지는 옴니버스 형태로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하나의 장면, 하나의 기억, 하나의 인물들이 고스란히 롱테이크로 기록하듯 꼼꼼하고 섬세하게 빛을 발한다.

 

어린 시절 나는 한 마리 소를 사랑했다고 첫 글을 떼는 산문집의 시작은 독자를 한달음에 작가의 고향으로 이동시키며 작가의 시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 어떤 그림보다 더 치밀하고 빈틈없이 한 마리 소를 그려내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소에 대해 느끼는 애증과 배신과 존경과 애틋함의 감정선을 다양한 음폭을 내며 글자로 쏟아낸다. 소설이라는 걸 쓸테냐고 묻는 아버지에게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제기랄, 소설은 이미 저 소가 써버린걸요.” 이렇게라도 글에서 밝힌 건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소가, 그리고 자신의 사람들이,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체의 이야기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자신은 주워 담는 것뿐에 불과하다는 것. 그저 여전히 소설가를 꿈꾸는 소설가가 토해내는 끝없는 자기 성찰의 결과의 본질이다.


손가락을 잃고 나서 논을 팔고 트럭 행상으로 십여년을 보낸 뒤, 조경일을 돕다 추락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러한 위태로운 순간마다 가슴이 벌렁벌렁거려 저 멀리서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린 어머니를 보며 작가는 불안에 떨며 절망하는 인간을 본다.

 

고모의 부음을 전해 듣고 고향에 내려가 가족들이 초상을 치르는 장면을 마주한 작가는 분주한 가운데 정적이고 고요한 풍경을 읽어 내려가면서도, 인물에 대한 눈길과 마음 씀씀이가 각별하다. 외동아들로 자라 작가는 안방에 앉아 염을 하는 고모부와 눈물을 삼키는 셋째형의 퉁퉁 부어버린 눈을 보고,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고모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백년 동안의 고독」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난 이 대목에서 향년 102세로 영면하신 할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아니 고의로 떠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날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거였다. 서울은 축축하고 기나긴 여름 장마였고, 고창 시골집은 뜨거운 뙤약볕에 땅도 하늘도 이글이글 달아오르는 무더위 속 한가운데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따뜻하고 고요했던 이별의 장면. 곡기를 끊으신 지 꽤 여러 날이 지나고, 오랫동안 깊게 깊은 잠을 자듯 누워있는 할머니 곁엔 막내 고모와 아빠가 있었다. 할머니는 방에서 기나긴 잠을 주무시고, 거실에선 온 식구들이 모여 밥을 지어 먹고 과일을 까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앞마당에선 내 아이가 꺄르르 웃어가며 빨간대야에서 물놀이에 여념없던. 세 개의 그림이 마치 영화 속 롱테이크, 느린 화면으로 지나가던 그 날......

 

[2부, 문학은 네가 선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에서는 눈덮인 산사와 경주의 폐사지, 끝여름과 가을무렵의 터키 이스탄불 여행지와 감옥에서의 백일에 대한 단상을 담은 글들이 펼쳐진다. 집을 벗어난 세상 밖으로의 여행과 철저히 고립된 세계로의 여행은 너무도 철저히 다른 성질, 다른 질감의 공간에서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은 있는 그대로의 수수한 정경을 쓰다듬는다. 풍경은 풍경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고유의 온기를 담아내며 교감하는 느낌이랄까.

 

눈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 지상의 결을 따라 쌓입니다. 솟으면 솟은 대로 꺼지면 꺼진 대로 더러운 곳이나 정갈한 곳이나 가리지 않고 쌓입니다.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번 내리면 그곳이 수행처이기 때문입니다.

(겨울 봉건사, 98페이지 중에서)

 

내가 걷는 쪽은 산그늘에 푹 담겼으나 빈터를 가로질러 맞은편 산자락 아래부터는 햇살이 그늘보다 두텁게 펼쳐졌다. (...) 오른편 산등성이를 넘어온 햇살이 반대편 계곡으로 흘러내리며 잠에서 깨어나 우중우중 선 소나무들을 씻기는 중이었다.

(경주 남산 폐사지, 102-103페이지 중에서)

 

내게 여행이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자리에 잠시 주저앉아 높이가 다른 세상을 일별하는 것과 비슷하다. 익숙한 세계가 순식간에 낯설어지고 낯선 세계가 하염없이 밀려들어와 뜻밖의 사건처럼 내 안에 자리잡고 나와 함께 거주하게 된다. (...)

하루가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증발하기를 되풀이했다. (...)

이스탄불의 어느 거리 어느 골목에 있더라도 과거와 현재가 깍지를 낀 듯한 기분이 들었고 역사를 과거에 대한 서사쯤으로 치부하는 관습이 그곳에서는 어리석은 짓으로 여겨졌다.

(이스탄불에서 마음을 놓치다, 111-112페이지 중에서)

 

며칠 뒤에 우리 방은 산산조각이 났다. 백일전방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가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홀로 남은 나는 비로소 그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허투루 흘러간 게 아니었음을, 나도 모르게 그들의 체취에 길들었음을, 이해될 듯 말 듯 한 아련한 교감으로 그날들을 보냈음을, 외롭고 높고 쓸쓸한 곳에서 부대끼며 그이들과 지낸 시간이 다시는 재현되지 못할 과거가 되었음을,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느끼는 데에는 백 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백 일이면 충분해, 131-132페이지 중에서)

 

[3부, 수많은 밤들의 이야기]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작가가 고뇌한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작은 방으로 밤이 쏟아져 들어오면 비로소 열리는 또 다른 세계에서 작가는 자신의 내면과 동시에 세계와 대면하며 글쓰기 또한 독서도 그러한 행위라고 써 내려간다. 그런데 실상은 독서가 괴로운 행위였다고 고백한다. 눈길을 주기 시작하면 읽지 않을 수 없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니까. 그래서일까. 책 속의 대출기록부를 들여다보며 책의 내력을 엿보는 일도, 타인의 독서 취향을 견주어 보는 것도 작가의 시선에 들어온 풍경에 닿는 눈길의 씀씀이가 헤아려진다.

 

도서관의 주춧돌처럼 오랜 세월 반쯤은 땅에 묻힌 채 반쯤은 지상에 드러낸 채 낡아가면서 단단해지는 독서의 시간들이 어서 오기를. 내가 남겨두고 가야 할 책들과 조금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나는 은퇴하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은퇴하는 소설가, 147페이지 중에서)

 

책은 더러워지기 위해 순결하게 태어났다.…… 작가도 그런 존재다. 사람의 손을 타지 못한 채 낡아가는 책이란 얼마나 비장한가. 그러니까 빈칸이 많은 대출기록부를 가진 책은 찾아주는 이 없는 방에 소설을 쓴답시고 틀어박힌 지금의 나와 닮았다. (대출기록부, 149페이지 중에서)

 

소설가가 된 이후로는 도서관에서 한국소설 코서가를 피하게 되었다지만, 어느 날엔가 자신의 책을 꺼내어 가슴에 품었다가 다시 서가에 내려둔 걸 보면 작가도 사람이구나 싶어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익명으로 남아야 할 독자를 위해, 독자와 만나기 위해 존재하는 책에 대한 예의였을까. 소셜미디어상의 ‘좋아요’ 숫자만으로도 호감도와 취향을 빛의 속도로 알아차릴 수 있는 시대이긴 하지만, 아마도 작가는 그러한 피상적인 관계의 소통에는 눈길을 주진 않을 듯하다. 험한 손길이 닿은 책이더라도 은행잎 책갈피 하나에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시집을 꽂고 다니기에 바바리코트를 좋아하는 감성 문학도임이 분명하니까.

 

 

[4부, 슬픔과 고통으로 구겨진 사람]편에 모아진 글들은 참으로 진중하게 모든 걸 어루만지고 있는 글귀들이 많아 가장 밑줄이 많이 그어진 페이지들이다. 마음에 담고 싶은 문장 중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문장을 꼽자면 작가의 부모님이 과거에 살았던 셋방집을 찾아가는 장면 속에 있다. 그들은 순전히 기억이라는 단서에 의지해 찾아간 곳에 몇 안 되는 단서를 기억하는 어른들의 기억을 빌려 가고자 했던 과거의 장소에 도착한다.

 

노부인은 다시 찾아오겠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로 찾아온 사람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고 마당으로 내려앉은 한줌 햇살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

가난하고 고된 시간이라 할지라도 사랑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장엄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든 실제로 기억하는 건 사람과 사랑뿐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기억의 크기, 241페이지)

 

너무나 선명하게 영화 같은 장면이라 이야기도 이미지의 잔상도 오래 남는다. 왜 그토록 특별히 마음 깊이 그 풍경이 머물렀던 것일까. 과거의 장소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추억으로 되새김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을텐데. 그곳이 정말로 존재해서 다시금 찾아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친다. 나의 유년시절은 오로지 기억의 지도에서만 꺼내볼 수 있는, 이미지만 남은 풍경의 조각에 불과하다. 재개발되어서 완전 새로운 동네가 되어버린 곳, 초입에 들어서면 화려한 쇼핑몰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고, 저 멀리 병풍처럼 산 머리가 펼쳐지긴 하지만 그 밑으로는 아파트 건물로 빽빽한 회색 숲이 가득한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젠 다시 찾아갈 수 없는, 이미 새로운 땅 위에 묻혀버린 과거의 장소에 나도 작가처럼 찾아갈 수 있었다면 어른이 된 지금 마주하는 풍경이 기억과 꼭 같을리라는 보장은 없다. 작가의 말처럼, 내가 기억하는 건 결국엔 나의 사람과 그 시절 내게 다가온 각기 다른 색채의 사랑일 것이다. 정말로 궁금해하는 건 그 때 당시를 추억할 수 있는 그 공간이 아닌, 내게 의미있던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Good Morning & Sweet Dream
Various Artists 노래 / 워너뮤직(WEA)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앨범 자켓이 끌린다.
맛있는, 신선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뉴에이지 음악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스톰프 뮤직의
또 하나의 컴필 음반이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우수하고
수록된 곡들도 하나같이 주옥같다.
평소 잘 알고 있던 곡도 있고, 그렇지 않은 뉴페이스의 음악들도 보인다.
음악으로 섭취하는 하루의 비타민.
이 음반 한 장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준 (ByJun) - Love Sketch
바이준 (ByJun) 연주 / 스톰프뮤직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바이준?
이름은 낯설지만 음악은 그리 낯설지 않다.
온라인 음악 시장의 강세.. 그 바람을 타고
싱글 디지털 앨범만 발표했던 뉴페이스다.

한편의 편안한 시처럼... 한편의 편안한 동화같은 음반이다.
풋풋하고 솔직 담백한 감성 코드를 잘 살려낸 피아노 연주곡이
편안하다. 맘 좋은 털털한 친구랑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뉴페이스 답지 않은 내공은 이미 곡 제목에서도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