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교 1학년일 때, 서울대 미 학과 학생이었던 김지하 선생은 방학중에 목포에 내려와 자기 모교의문예반 후배들을 이끌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했다. 나도 그 연극을 구경했지만,그때는 지하라는 필명은 물론 김영일이라는 본명도 알지 못했다. 내가 그 연극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감명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거기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은 알았으며, 우리가 일상 쓰는 언어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놀랐다. 그 연극은 내가 대학으로진학할 때 학과를 선택하는 데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