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제임슨 라이브 이론
이언 뷰캐넌 지음, 민현주.조지훈 옮김 / 책세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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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로버츠의 <트랜스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곽상순 옮김, 앨피, 2007; 원서 2000)과 비교하자면, 들뢰즈 연구자인 뷰캐넌의 이 책이 훨씬 더 제임슨의 사상적 핵심을 전하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로 유익한 점이 많았다. 제임슨의 주저들이 아직도 번역되지 못한 게 많고 그의 사상이 여전히 어렵게 인식되는 현실에서 이런 번역서 하나라도 나온 게 그나마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번역이다. 버틀러, 데리다, 바르트 등 주로 프랑스 계보의 사상을 연구한 역자가 짐멜과 벤야민, 제임슨을 연구한 역자의 도움을 받아 공역한 듯한데, 오역이 적잖이 발견된다. 책 전체를 적당히 읽을 수준은 되지만 곳곳에 더러 심각한 오역도 있어서 책의 분량에 비해 독서 속도를 늦추고 원서 대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읽다가 이상해서 대조해보면 거의 오역 또는 번역 누락이거나 가독성 있는 문장을 만들지 못한 경우들이었다.

예컨대, 35쪽 2번째 줄에서는 "때문에" 다음에 "텍스트를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번역이 들어가야 하는데 통째로 누락되었다.

49쪽 중간 부분에서는 인용문 따옴표 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 혼란을 준다.

51쪽 마지막 부분에서는 "변증법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하버마스가 표현하듯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사변적인 사유다."라고 번역하면서 원문과 달리 제임슨의 표현에 하버마스를 섞어버리는데, 이 부분은 "변증법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하버마스의 표현으로는 미완의 기획)에 대한 사변적인 사유다." 정도로 정리되어야 한다.

106쪽에서는 '비평가들의 주목을'이라고 번역해야 할 부분을 '비판적 주목을'이라고 오역했다.

179쪽부터 등장하는 figurability는 '형상성'보다 '형상화 가능성'으로 번역해야 의미가 제대로 와 닿는다. 180쪽의 '형상'도 원어가 figure가 아닌 figuration이므로 '형상화'로 번역해야 한다.

186쪽 셋째 줄의 "토착민 대학살을 불러일으켰다"에서 "불러일으켰다"는 cause가 아닌 evoke의 번역이니 '연상시켰다'나 '환기시켰다'로 바꿔야 한다.

187쪽 중간 따옴표 안의 "비시각적 시스템"은 "nonvisual systemic"을 번역한 것인데, 앞뒤 연결 부분을 포함하여 <불행의 더 깊은 "보이지 않는 시스템적" 원인>으로 번역해야 한다.

189쪽 중간 인용문에서는 제임슨의 문장을 통째로 곡해하는데, 원문은 "제일세계 진보적인 사람들의 그런 감정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뜻이 아니라 "제일세계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만큼 시급한 과제는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번역문들에서도 "제일세계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다 빼야 한다.

193쪽 맨 밑에서 "접근을 가로막도록"은 "접근을 가로지르도록(cut across)"이 맞다. 그보다 몇 줄 위에서는 "게센 아이가 고향 행성인 겨울에 도착..."이 아니라 "게센 아이가 고향인 겨울 행성에 도착..."이 되어야 맞다.

209쪽에서는 "저는 항상 제 작업에서, 막연히 사회학적이고 대중문화적인 의미에서 제가 '문화 비평'이라고 부르는 것의 야망을 불신하는 점을 염려해왔습니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완벽한 오역이다. 이 문장은 "저는 항상 제 작업에서, 제가 '문화 비평'이라고 부르는 것의 총체적 야망을 막연히 사회학적이고 대중문화적인 의미에 가둬 그 신빙성을 떨어뜨릴까 염려해왔습니다."로 번역해야 한다.

212쪽 아래 부분에는 "그는 자신보다 신화 비평과 융 학파의 유사성에 신경 쓰고, 심지어 파시즘과 나치즘이 되살리려 한 고대의 충동을 파시스트적으로 긍정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로 되어 있는데,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곡해한 심각한 오역이다. 이 부분은 "그는 신화 비평이 융 학파와 유사하고, 심지어 파시즘과 나치즘이 되살리려 한 고대의 충동에 대한 일종의 파시스트적 긍정과도 유사함을 자신보다 더 예리하게 자각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로 고쳐야 한다.

결론은 원문 대조를 필수로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번역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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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사진에세이 3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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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의 많은 책을 접하며 그동안 주로 붉은색과 초록색 표지를 봐온 것 같은데, 이번의 노란색 표지는 신선하기도 하고 뭔가 더 애잔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표지 디자인에서 ''이라는 글자를 길게 끌어 길의 느낌을 표현한 게 맘에 든다. ''이라는 간명한 제목의 의미를 뭔가 더 단호하고 압축적으로 표현한 느낌이랄까.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두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2020년 오늘, 세계가 재난 상황이라 한다. 재난(disaster)의 어원은 '떨어지다'라는 뜻의 dis ''이라는 뜻의 astro가 합쳐진 '별이 떨어진 상태', '별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저 밤하늘의 별처럼 글썽이며 빛나던 나 자신과의 내적 연결이 끊어지고, 어둠 속 별의 지도와도 같던 성현과 스승과 시인과 탐험가와 수도자와 혁명가들이 떨어져 나간 세계. 그리하여 지구 중력권과 나 자신에게 갇혀버린 상태. 더는 나아갈 길이 없고 희망이 없는 처지가 재난이다."(12~3)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은 계획이 아니다. 먼저 세워야 할 것은 내 삶의 목적지다. '나 어떻게 살아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다. 내가 결코 놓지 말아야 할 나의 첫마음, 그 첫마음의 불빛은 내 생의 최종 목적지에 놓여 나를 비추고 있고, 내가 가야만 할 길을 가리키고 있다. 나머지는 다 '여정의 놀라움' '인연의 신비'에 맡겨두기로 하자. '계획의 틈새' '비움의 여백' 사이로 걸어올 나만의 다른 길을 위해."(15)

글을 읽지 않고 봐도 인상적인 사진들이 있다. 처음에 실린 <하늘까지 이어진 밭>은 가장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진이다. 68~69쪽의 <아이들의 나무돌이> 사진은 그 자체로 아주 아름다운 장면이다. 109쪽의 <내 그리운 '바그다드 카페'> 사진은 독자에게 직관적으로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리고 글과 함께 보면 더 좋은 사진들이 있다. 48 <길손을 위한 기도>, 77 <혼자 남은 할머니가>, 80 <저마다의 속도로>, 87 <나무의 아이>, 88<사랑의 무게>, 112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가 특히 그랬다. 이 외에도 꼽을 수 없이 많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예전 박노해 시인의 체 게바라의 두 갈래 길에 대한 짧은 시구절이 쓰인 엽서를 본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이라는 주제로 엮인 이번 책이 특히 깊이 와 닿았다. '인생이 길'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길 위에서 '다른 존재를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예전 책들보다 더 집약적으로 표현된 것 같다. 시인은 내가 아는 그답게 '목적'을 잊지 않는 래디컬한(근본을 헤아리는) 면모를 이 책에서도 보여주고 있었다. 큰 위로가 되었다. 길을 헤매는 많은 어린 양들에게 소중한 북극성처럼 빛나는 책이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인생의 갈래 길 앞에서 고민하는 맑은 눈빛의 소유자를 만난다면, 이 책을 추천하리라.' 그 눈빛의 소유자가 외국인이라도 좋다. 영어 번역이 훌륭하게 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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