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 294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들

 

또 겨울.

나무들이 몸을 말린다.

한여름 내내 나뭇잎에서 쏟아낸 푸른 분비물이

누렇게 되도록 말린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햇빛을 빨아먹던 팽팽한 잎이

갑자기 쭈글쭈글해지도록 말린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반짝거리던 잎이

과자 봉지처럼 바삭바삭 구겨지도록 말린다.

아스팔트 위를구르는 잎에서

양철 조각 갈라지는 소리가 나도록 말린다.

가지마다 커다란 파도를 만들며 출렁거리던

무거운 바람도 말린다.

한여름 광합성으로 부지런히 키운 높다란 물통을

기둥째 말린다.

두꺼운 나무껍질 쩍쩍 갈라지도록 말린다.

한겨울 독한 추위가 또 몸속에 들어와 살도록

그 매운 맛에 단내가 나도록

말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