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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수경 지음 / 엘도브 / 2024년 5월
평점 :
지당한 얘기, 특히 종교적 당위에 입각한 글을 읽은 다음, ‘공감’보다는 ‘공허감’을 더 크게 느낄 때가 있다. 이상과 현실, 교리와 실천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다. ‘좋은 말씀, 옳은 얘기인 줄은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어떻게 공자님 맹자님처럼 살겠어요’ 하는 반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 한편 마음 한 구석이 저리는 것도 사실이다. ‘남 탓’ ‘세상 탓’으로 자기방어에 급급한 애처로운 나 자신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도’는, 불교라는 종교를 떠나 ‘삶의 보편 원리’로서 기도다. 수경 스님이 말하는 기도는 ‘알뜰한 삶, 정성스런 삶’ 그 자체다. 그리고 그 기도의 성취는 ‘좋은 삶의 결과로서 복과 덕’이다. “우리의 삶과 목숨을 알뜰히 여기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복덕구족’의 삶입니다.”(68쪽)
수경 스님의 기도 이야기는 현실의 지평에 뿌리 내리고 있다. 고원한 이상 추구 같은 ‘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재활용하고, 종이컵 안 쓰는 것이 ‘방생’이라는 인식 정도는 하고 살자”고 말한다. 스님에게 기도는 이런 삶이다. 허투루 삶을 소진하지 않는 것이다.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한반도 대운화 백지화를 위한 오체투지’를 하며,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여린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한때 선(禪)의 세계를 깊이 동경했다. ‘목불을 태우고(丹霞燒佛)’,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殺佛殺祖)’는 선사들의 파격과 호방에 매료됐다. 선종 사서와 선사 어록을 탐닉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빠져들었던 것은 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신화와 전설로 떠도는 형해화된 선이었다. ‘단하소불’과 ‘살불살조’는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문 소식이었는데, 나는 ‘성상 파괴’라는 새로운 성(聖)을 떠받들었던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계로서 선의 세계에서 꿈인 줄도 모르고 꿈을 꾼 꼴이다.
이 책을 읽고 얻은 과외의 소득은 ‘간화선’에 대한 나의 오해를 풀었다는 점이다. ‘과외의 소득’이라고 말하기에는 얻은 바가 너무 크다. 오랫동안 나는 ‘화두’ 자체에 깨달음이라는 것이 내재돼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한편 1,700 공안의 근원인 수많은 오도 기연, 이를테면 스승과의 문답 가운데 ‘언하에 깨달았다’거나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화두에 대한 앞의 생각과 상반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오도 기연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한 순간이 일, 전무후무 유일무이한 하나의 사태일진대 그것이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깨달음에 대한 하나의 준거로서 참조 사항일 뿐 아닌가. 깨달음이라는 것이 복제가 가능한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한들 기껏해야 ‘깨달음에 대한 이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런 나의 생각은 모두 오해였다. 이 책을 읽고 그것을 알게 되었다. 길지 않은 한 문장이었다. “화두는 의단 독로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 동안 나는 화두를 목적으로 혼동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수경 스님은 참선 수행에 대해 깊이 거론하지는 않았다.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참선과 염불과 간경이 모두 지혜의 완성이라는 한 목적의 다른 수단”이라는 언급에 딸려 나온 정도다. 하지만 그 울림은 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그 동안 나는 어디에서도, 평생을 바친 수좌의 살림살이를 이토록 진솔하게 내보인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선(禪)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은 웅장하고 신비롭고 고원한 얘기로 가득했다. 여기에 ‘10년 장좌불와’, ‘용맹정진’, ‘무문관’ 같은 처절한 수행담이 곁들여진다. 내가 할 수는 일은 경이와 감탄 그리고 좌절이었다.
이 책을 통해 선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세계는 여전히 높고 멀다. 설령 맹목적이라 할지라도 화두 일념에 매진하는 수행 그 자체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선에 대한 나의 오해는 내 스스로 안개를 뿌리고 구름을 만들어 그 안에 선을 가두고 신비화, 절대화 시켰다는 사실이다. 탐내어 들어갈 수 있는 ‘선의 세계’는 없다. 구하여 얻을 수 있는 ‘도’는 없다. 이 또한 속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선에 대해서 나는 영원히 모를 것 같다.
간화선에 대한 나의 오해를 불식시킨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소득으로 과분하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과외의 소득이다. 이 책의 본령은 ‘기도’다. “기도를 통해 ‘업’의 문제를 성찰하고, 기도로써 업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이야말로 정녕 창조적 삶”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스님은 “만사가 기도여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태도로서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꿈인 양 아득하다. 앞으로의 삶은 더 아득하다. 할 수 있는 일, 아니 해야 할 일은 기도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