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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버스 키스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요시다 아키미(Yoshida Akimi)는 <바나나 피쉬(Banana Fish)>라는 대작으로 한때, 저를 매료시켰던 작가입니다. 시원시원한 그림체 하며, 꽉 짜여진 스토리 하며, 심지어 영화라는 매력적인 매체마저 뛰어넘을 듯 보이던 최고의 연출력등으로 대체 왜 우리가 만화에 열광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저는 열열히 소리높혀 외쳣던 것이였겠지요.아키미의 <러버스 키스>는 또한 그녀가 다룰수 있는 스토리의 영역이 한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나나 피쉬의 그 우울함과, 진지함과, 비애감, 그리고 역동감과 웅장함등을 떼어 놓고도, 그녀는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는지를 바로 이 러버스 키스에서 확인시켜 줍니다.
이 작품은 여섯명의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 성별로 나누자니, 남자 셋, 여자 셋인 것이 마치 한 시대를 풍미한 시트콤이 떠오릅니다만, 그정도의 단순무식지랄스런 드라마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복잡한 인간관계가 이 작품의 저변에 깔려 있답니다. 사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작품의 1화만을 읽고 나서도, 대략적인 이들의 관계망이 머릿속에 그려지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첫 챕터의 표지그림부터 심상치 않은것이 혹 동성애 만화는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갖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요, 이 만화에선 동성애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미소년들의 오만가지 사랑행각을 그리는 야오이라던가, 오로지 동성애만을 그 핵심으로 잡는 이반 전도사들의 선전 선동용 동성애 만화들과는 조금 거리를 둡니다. 이것은 (진부한 표현이지만)다만, 사랑하고 있는 소년, 소녀들을 그리고 있을 뿐이예요.
이 만화는 크게 세가지의 챕터를 가집니다. 하나는 boy meets girl. 또 하나는 boy meets boy,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girl meets girl. 그리고 이 세가지 만남은 서로 교묘하게 관계맺고 엇갈리면서 전체의 스토리라인을 이끌어 나갑니다. 이쯤되면, 아하..하고 무릎을 내리치실테지만, 다시한번 강조하건데, 요시다 아키미는 남자셋 여자셋의 드라마 작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발설하지 않으렵니다. 이러다간, 씩스센스를 보려고 기다리는 영화관 대기실안에서 큰소리로 '부르스 윌리스는 귀신이다!!!'라고 소리치는 꼴이 될테니까요.-.-;;;
요시다 아키미가 위대한 것은 자칫 달콤한 러브어페어로 끝나버리기 쉬운 대부분의 순정 학원물과 달리, 단 두권뿐인 이 짧은 스토리안에, 사랑이라는 정체 모를 것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물론, 동성애 문제, 유아 성폭력 문제, 근친 상간의 문제등을 침착하게 묻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물음들은 인생의 한 시기를 심하게 앓고 지나보내야 하는 청소년들의 성장기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숙고와, 애정어린 시선에서 나올 수 있었을 것이겠지요.
문득, 잊혀졌던 청소년기의 기억을 회상해 봅니다. 영화 <친구>가 주는 폼만재면 그만인 노스텔지어를 떠올리라는게 아니예요. 아키미는, 진실로 우리의 성장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삶을 이끌어가기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실존적 결단을 내려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예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 또한 그렇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여기, 러버스 키스의 소년소녀들은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통스런 결단을 해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을 믿고, 자신의 사랑에 키스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