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실이 - 김은미 에세이집
김은미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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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반려견을 아느냐

고백하자면 나는 애완동물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더 나아가 방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사는 사람들이 못마땅해 보였다. 애완동물은 나에게 그저 시큰둥한 존재였다. 그런 나와는 달리 그녀는 ‘요크셔테리어’인 ‘꼬실이’를 배 아파 낳은 아들로 여겼다. 아들이란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말도 안 돼!’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꼬실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두어 번 그녀는 꼬실이를 안고 내 사무실을 찾아왔었다. 그때도 난 늙고 병들어 털이 숭숭 빠진 꼬실이의 추레한 모습을 흘리듯 바라볼 뿐 어떤 가엾은 마음도 없었다.

 
꼬실이가 18년 삶을 마감하고 떠나자, 어느 날 그녀는 꼬실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겠다며 사무실로 원고를 가져왔다. 책 제목도 「꼬실이」로 붙였다. 원고를 처음 받아 그 안의 자료사진을 편집하기 시작할 때 나는 좀 거슬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력을 잃어 희부옇게 변해버린 눈, 생기 없이 가늘게 떠는 듯한 작은 몸뚱이의 사진들에게 영 정이 안 갔다. (미리 말하자면, 원고를 다 읽고서야 사진 속 꼬실이가 앙증스럽게 들어왔다.)
하지만 원고를 읽어갈수록 내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어릴 적 시골에서 함께 살았던 개들이 떠올랐다. 어떤 개는 철없는 나에게 맞아 서럽게 울기도 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지못미’한 백구의 기억이 새삼 아팠다. 

 

집에서 기르던 하얀 진돗개를 닮은 백구가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아마 누군가 끌고 간 모양이었다. 우리는 이미 백구가 죽었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런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토방에서 ‘웅웅’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는 ‘백구다!’라고 소리치며 방문을 열어젖혔다. 흙 범벅이 된 백구가 꼬리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집을 나간 지 꼭 석 달 만이었다. 백구를 끌어안고 여기저기 살펴보니 목에는 상처가 깊었다. 석 달 동안 작히나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을까. 묶인 목을 빼내려고 심한 발버둥을 치다가 깊어진 상처 같았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백구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 몇몇이 찾아와, 한 번 나간 개는 또 나가게 되어 있다며 아예 잡아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 더 나가면 영영 잃게 된다는 말만 설득을 얻어갈 뿐,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어린 내 의견은 철저히 무시 되었다. 보릿고개 같은 시절, 가끔 헛것을 보기도 한 그들은 아마 몹시 허기져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늙으면 이 삭막한 도시를 떠나 고향에서 살 예정이다. 아니 여건만 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도시를 떠나고 싶다. 내가 다시 마당 넓은 고향집에서 살게 되면 어린 시절 백구를 닮은 하얀 개 한 마리와 여생을 보낼 생각이다. 백구를 지켜주지 못한 속죄를 하며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볼 것이다.

그녀의 「꼬실이」는 3부가 시작되면서부터 책의 진정한 의미가 확연히 드러난다. 마치 이때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뇌리를 스치곤 한다. 영락없이 죽음을 앞둔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그만큼 그녀는 꼬실이를 진정한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한 것이다. 꼬실이의 죽음으로 끝나는 그 원고를 다 읽고 난 후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몰려와 한동안 나는 멍한 상태였다. 사랑하는 형이 떠난 그때의 뒤끝처럼 가슴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휘돌아 다녔다.

원고를 나에게 넘겨놓고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책 「꼬실이」가 나왔을 때, 그녀는 표지를 어루만지며 한동안 소리 없이 흐느꼈다. 사실 내가 감동한 부분은 ‘사람과 동물의 티 없이 맑은 교감’이기도 하였으나, 그보다는 18년이나 살아서 ‘늙고 병들어 볼품없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스스로 생명을 내려놓은 날까지, 마음 아파하고 애태우며 보살펴 준 그녀 김은미가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할 줄 아는 그녀였다.

나는 이 책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니 ‘엔젤스톤’이니 하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내게 창피한 일이지만 ‘반려동물’이라는 어휘도 처음 알았던 것이다. 또한 반려견이라는 말을 처음 써 보았다.


낯선 사람과 자신의 반려견이 함께 물에 빠지면 반려견을 먼저 구한다는 사람에게 ‘미쳤다.’라고 비아냥거리던 내가 이제는 반려견에게 해주는 ‘재산 상속’도 이해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혼이 맑을 것이다. 또한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악한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하다. 생명과 신체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요즘 몹시 허전해 한다. 왜 아니 그럴까. 어릴 때, 마당에서 기르던 개도 함께 살다가 사라지면 온 집이 텅 빈 듯하지 않던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먼저 이름 부르고, 대문을 들어서면 뛰어와 와락 안길 것 같고, 빈 개집만 봐도 가슴이 허전해 못 견뎠는데, 하물며 18년 세월이라면 그녀의 가슴이 온전할 리 있을까.


그래서 그녀를 위로하고자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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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꽃 피는 언덕 - 엠아이지 시집총서 10
강서영 지음 / 엠아이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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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깨끗한 이미지를 풍기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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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여보시게 돈 좀 빌려주시게
김창동 지음 / 엠아이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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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여보시게 돈 좀 빌려주시게』라는 한 편의 산문시를 읽고
눈물을 주루룩 흘린 주부를 보았다.
이 얼마나 답답한 세상을 우리는 걸어가는가.
사랑과 돈 그리고 기댈 곳 없는 정치로 인해 정신적 공황에 빠진 우리는
이 산문집을 통해 오래 전 소진된 잡초의 근성을 회복해갈 것이다.
저승사자의 그림자처럼
한 달이면 꼬박 세 번씩 카드 결제일이 다가와
내 숨통을 조여놓을 때, 『여보게 여보시게 돈 좀 빌려주시게』는
잘린 몸통에서 아카시아 새순처럼 나타난 산문집이다.
때로는 하늘도 땅도 아닌 곳에 겸손한 욕을 퍼부으며
오장육부에 박힌 질곡의 암덩이를 게워내자.
그리고 이제는
아침 출근길에도 술 취한 퇴근길처럼 허허거리자,
서로의 앙상한 등을 쓸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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