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루엔자
존 더 그라프 외 지음, 박웅희 옮김 / 한숲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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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치 의식은 굉장히 진보적인 데 삶의 방식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정치 의식은 보수적인데 삶의 방식은 진보적인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정치 영역과는 달리 삶의 방식이라는 영역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많이 다르다. 하지만 입으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은 하는데 몸으로는 자본주의적 삶에 찌든 사람이 늘어나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어플루엔자』는 이런 세태를 돌아보게 만든다.『어플루엔자』는 미국 PBS TV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물신주의와 탐욕이라는 바이러스가 고독, 파산, 노동강도 악화, 환경 오염, 가족 해체라는 질병을 초래하는 현실을 분석한다.

어플루엔자(affluenza)는 풍요로움을 뜻하는 affluence와 균을 뜻하는 influenza의 합성어이며, '고통스럽고 전염성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병으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하는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등의 증상'을 수반한다. 한 사회 내부 혹은 나라간에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어플루엔자는 기승을 부린다. 사회 한 편에 그리고 세계 한 편에 먹고 입고 마실 것이 흘러 넘치지만, 다른 한 편에는 굶주리고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넘쳐난다. 계급, 소득, 연령, 교육, 종교에 상관없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사들이고, 아이들이 매우 물질 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오늘의 소비를 위해 우리의 내일을 희생하고 있다. 이른바 아메리카 드림,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신자유주의' 생활 방식의 결과다.

'한 사람이 매일 한나절을 그저 좋아서 숲을 거닌다면, 그는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위험이 있지만, 만약 투기업자로서 하루 종일 그 숲의 나무들을 베어 내어 대지를 때 이른 대머리로 만든다면, 그는 부지런하고 진취적인 시민으로 존경받는다.' 백년도 더 전에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한 말이다. 소로우의 탄식은 이제 전지구적(global) 탄식이 되었다. '돈이 좋아요'가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솔직한 고백이 된 지 오래다. 돈이 있으면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다. 돈에 걸신들린 사회 풍조 속에서 크고 화려하고 세련되고 편리하고 강한 것들이 작고 소박하고 촌스럽고 불편하고 약한 것들을 밀어내고 있다.

오죽하면 '부자 아빠는 유능하고, 가난한 아빠는 무능하다'는 종류의 책이 나돌아다닐까. 화학 조미료에다 소 젓 가루를 섞은 별난 이유식을 많이 팔려고 '우리 아기는 다르다'고 쇄뇌시키는 광고는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막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플루엔자라는 몹쓸 사회적 질병은 인간만 피곤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동식물과 지구도 피곤하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탐욕을 만족시키고자 소비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의 범위는 날로 넓어지는데 비례해서 동식물의 종류는 줄고 있다. 인간의 소비, 사실 미국식 소비를 맞추기 위해 인간은 물론 자연 환경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1912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 물론 그 향기를 맡을 시간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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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지배
마이클 클레어 지음, 김태유.허은녕 옮김 / 세종연구원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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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기를 쓰고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려 한다. 2차 대전 이후 전쟁을 가장 많이 치른 나라는 미국이다. 다른 나라를 가장 많이 침공한 나라도 미국이다.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오사마 빈 라덴은 CIA와 한패거리였고, 그의 가문은 부시 일가의 이권이 걸린 석유회사의 큰 투자자였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군이 쓰는 무기는 미국 CIA가 파키스탄 군정보국을 통해 지원한 것이 대부분이다. '무신론자' 소련과 싸우라고 기독교 국가 미국이 이슬람반군에게 엄청난 돈과 무기를 퍼부었던 것이다.

전쟁광이라고 공화당과 부시가 욕을 먹기는 하지만, 역사를 가만히 돌아보면 민주당이라고 별로 다르진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이 주도한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코소보 전쟁이라 불리는 발칸반도의 분쟁이 대표적이다. 대량학살이 저질러져도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한 짓이면 그냥 넘어가고, 비우호적인 정권이 한 짓이면 전쟁을 일으켰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치르는 전쟁이 대표적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외정책에서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1994년 6월 한반도 전쟁 위기는 부시의 공화당 정부가 아닌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 하에서 촉발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전쟁을 겪고 있거나, 전쟁 위기에 휩싸여 있거나, 정치 상황이 불안한 나라는 대부분 미국과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나라를 세 개 들면, 아프가니스탄이 그렇고, 이라크가 그렇고, 베네수엘라가 그렇다. 앞의 두 나라는 이해가 되는데 베네수엘라는 또 뭔가. 미국은 에너지 수입원을 다변화하려는 목적으로 베네수엘라로부터 엄청난 석유를 수입해 왔다. 만에 하나 중동에서의 석유 수입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한 전략이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미국 경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차베스처럼 미국으로서는 믿지 못할 이가 집권하는 것을 미국이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년 4월 차베스 축출 쿠데타에 미군부가 개입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은 왜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는가? 전쟁광이기 때문인가? 미국 지배층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벌이는 대외전쟁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필요한 통치 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전쟁은 조만간 부족 사태에 직면할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천연자원이 금세기 중반 무렵에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현재의 경제적 안보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석유, 가스 등 천연자원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미국의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것이 오늘날 전쟁 위기의 핵심이다.

이라크과 이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석유와 가스가 많이 나는 나라이자, 군주정이 대부분인 아랍권 나라들과는 달리 공화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우호적이지 않다. 부시는 이 두 나라를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몰았다. 그럼 북한은 왜 악의 축으로 몰렸을까? 한국전쟁이래 쌓여온 두 나라의 구원(舊怨)과 더불어 북한의 미사일 제조기술수출이 이란과 이라크의 국방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동의 자원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군사적인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이 많지 않은데, 북한이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걸프 만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해를 침해하는 행위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격퇴한다'는 원칙은 인권대통령으로 알려진 지미 카터에 의해 1980년 만들어졌다. 이란에서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수립될 무렵이었다. 이후 이 원칙은 공화당과 민주당에 상관없이 중동 정책의 핵심이 되어왔다. 중동 말고도 많은 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역시 자원 둘러싼 각축이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은 그 보고서다.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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